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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오늘 2024년 대한민국 교회의 부활절은 절박하고 간절한 성도들의 소원으로 가득하다. 지는 4년동안 무서운 질병을 겪으며 우리들의 환경이 바뀌었고, 우선 교회로 모여들던 신자들 절반 가까이가 주변을 떠돌고만 있다. 더구나 해방 후 남북이 분단은 지속되고 정세는 불안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마저 흔들거리고 있다.오늘 주 예수 부활의 날, 내일은 예수 부활을 따르는 예수의 동행자들의 부활인데 조용히 지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4.03.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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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교과서적 자유민주주의 실현국가가 2백여 개 지구상의 나라들 중 노르웨이, 대만, 독일, 아이슬란드, 영국, 일본, 한국과 호주 등이다. 얼마간의 결함을 가진 국가들이 그 다음을 잇는데 남아공,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인도 등 그들 안에 미국이 들어 있을 정도이고 그 나머지는 민주와 권위주의 혼합국가들과 권위주의 국가들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었다.기분이 괜찮았다. 1등 국가들 체제를 가진 대한민국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미국 같은 나라보다 높은 1등급 국가 9개국 중 대한민국이 자리하고 있다.열심히 헤쳐나가자. 586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4.02.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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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새로운 해석이 신약이고 또 ‘예수’라면 오늘의 교회는 새 종교 또는 제3개혁을 필요로 하는 21세기 이후의 개혁의 씨앗이다. ‘들소리’ 창업 초, “들소리 제3개혁의 진원지이고 싶다” 했으나 50여 년 세월을 경험해 오면서 ‘들소리’만 제3개혁의 진원지가 되어서는 진정한 개혁 세상을 만들어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집단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개혁과 반개혁이 형성되었으나 21세기 이후는 모든 개인들이 집단성 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머리 띠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식의 운동으로는 새 종교를 역사의 현장으로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4.01.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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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가 사회적 쟁점에서 비켜 서 있는듯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섭섭함에서 오는 착각일까?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국내정치현장이 조금씩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삭막하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한 번만 생각을 고쳐서 살펴보면 인간은 모두 약자일 뿐이지, 80년대 대책이 없을 때 이리저리 쫓기던 아이들, 나 몰라라 했던 때를 회상해 본다. 하긴 시대의 흐름은 단번에 깨달음이 주어지는 것 아니다. 반복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견해 가는 것도 고마울 따름이다. 새해는 총선거도 있으니 교회들도 여와 야당 눈치 보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12.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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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인 책임은 신구 기독교에 있다.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교는 유대-이스라엘과 이슬람-팔레스타인이 엉겨 붙어서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요즘도 할 말이 없는가?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죄책이 있는가, 아니면 현 사태를 잘 모르는 바보나 멍청이들인가? 왜 신구 기독교는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현지인들이 죽고, 또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입을 틀어막는가?가자지역 하마스가 이슬람 종파의 한 세력이고, 이스라엘 또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원수들이라는 그 판단에 근거해서 기독교로서는 미운 자식들끼리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10.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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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도 사마리아처럼 망하리라는 주의 말씀을 듣고 달려왔다. 유다왕국의 왕위 계승권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이사야는 밤늦은 시간 성전으로 뛰어 들어갔다.드넓은 성전 안에는 스랍들이 가득 모여들어 노래하고 춤춘다. 각각 날개를 여섯 개 씩을 가졌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라고, 또 두 양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겨우 여섯 중 날개 둘로 창공처럼 드넓은 성전 공간을 날면서 하나님께 두드리는 영광의 노래를 부른다.이사야는 두 날개로 얼굴, 또 두 날개는 자기 발을 감추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쳤다. 아하, 저게 바로 신앙이구나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09.0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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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그리스도교가 세계사의 획을 그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오랜 세월 기다려 온 동방의 빛 이는 인도의 한 시인의 읊조림 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보다 더 일찍부터 메시아 예수의 복음이 동북아의 중심 도시 당나라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에 공식 선교단으로 무려 21명의 정예 선교팀이었다. 팀장은 페르시아 주교 알로펜이었다.당시 아시아와 동복아의 세력 균형으로 볼 때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에 그리스도교 영향이 얼마간 있었음을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공감하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다.한국교회는
22세기 대안
양승록 기자
2023.07.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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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바랄 것이 없다. 오직 나 자신을 향한 몸부림이요 절규만 남아 있다. “들소리”는 나 자신을 가다듬고 마무리를 향한 눈물겨운 호소다. 정말이다. 나의 이 말에 수식어는 없다. 오직 나 자신을 하나님의 발 앞에 놓고 하나씩 또 하나씩 점검해 가는 일이 있을 뿐이다.다섯 살에 그분의 부르심을 감지했다. 일곱 살에 길을 나서려다가 잠시 망설이는데 아홉살에 6.25가 터지고, 곧 이어서 황해도 해주에서 친구가 왔다. 이름은 박흥일.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는 서울로 가고, 나는 고등학교 1학연 초에 서울에 왔다.그날부터, 15살 그날부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06.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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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교회, 신자와 교회의 관계를 잘 모르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신자나 목사들이 참으로 많다. 교회당 이름 앞에 접두사를 쓰지 말라. 형용구를 사용치 말아야 한다고 많이 지적해 보았지만 듣지 않는다. 교회 이름 앞에는 ‘지역명’만 사용해야 한다. 아닌 경우는 기념교회나 교회 기관 이름 앞에 형용구를 적을 뿐이다.오늘은 교회 이름 시비가 아니라 교회의 존엄에 관하여 몇 마디를 하고 싶다. 함부로 교회당 간판을 걸었다가 쉽게 철수하는 등 그 기복이 너무 심하다. 코로나19 이후 정밀조사를 해보면 교회 통계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한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05.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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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활절이 올 때면 부활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궁금하다. 성경의 요구는 분명히 예수를 믿는 자들의 부활신앙인데 부활의 주인공들인 신자들이 안보인다. ‘나는 부할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예수 친히 말씀하셨다.이 말씀이 요한복음 11장 25절 이하의 기록으로 오늘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켜주고 있다.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생명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오해하는 것이다.생명체를 소유개념으로 본다든지, 욕망으로 계산하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04.0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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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절정의 시간이다. 사순절 행사의 마지막 극치의 시간이다. 어렵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자는 자비로운 마음도 좋으나 우리들의 자비심이나 선행의 막바지에는 죽음까지 기다리는 자들의 요구도 있다.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잘못된 길에서 인류를 바로 이끄시려할 때 하나님의 길을 가로막는 제사장 무리들과 로마제국까지 동원된 세력과 원치 않는 갈등을 겪었다. 나는 길, 진리, 또 생명이라 하셨는데 예수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 유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한사코 그 길을 가로막는다. 저들과 예수는 충돌,
22세기 대안
조효근/본지 발행인
2023.03.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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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렵고 자칫 편견과 오해에 휘 말릴 수도 있으나 한마디 해본다. 대구 이슬람 사원 공사장 주변에서 벌어진 “삼겹살 시비”에 교회가 조심스럽게 중재에 나서면 좋겠다. 정치판에 좌우 소동이 시민을 불안하게 하는 때에 대구의 이슬람 사원 신축 현장의 민원이 확대되어 가면서 이는 특정 종교의 문제이고, 이슬람 종파의 성격은 기독교가 잘 알고 있으니까 조심스런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기독교는 초창기부터 박해 속에서 살아남은 종교다. “카타콤 3백년”이라 할 만큼 로마제국의 혹독하고 집요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3.02.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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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코로나 시기에 배운 것, 교회는 웅크리고 굴속에서만 살지 말고 세상 속으로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함을 명심하게 되었다. 땅 끝까지라고 하신 말씀을 잊고 근본주의적(절대주의적) 신앙 속에서 웅크리고만 살던 교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경고다. 더 이상 나만 살기에 몰두하지 말고 온 세상이 나의 교구다 했던 18세기 영국의 요한 웨슬리처럼 우리는 크게 용트림을 한 번 해야 한다. 겨우 신자 몇 천 명 굴속 같은 예배당에 불러 모아 놓고 그 속에서 왕 노릇 해봐야 별거 아니다.한국교회는 문명사 측면에서 볼 때 아직도 “부족사회” 수준이다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12.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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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문명의 첨단 지역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당시 그는 문명 저 너머에서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다. 아브람아, 아브라함아, 한 번은 귀로 듣고 또 한 번은 마음으로 듣기를 번갈아서 그가 화답할 때까지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를 부르셨다.뒤늦게 천체 저 너머, 달과 별세계를 뛰어넘은 곳 저 멀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이로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아람계 여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는다. 이들은 이스라엘 족장시대, 유대교 시대를 지나서는 메시아 직계자손이라 하여 예수를 통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11.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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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5주년. 이제는 미루어 왔던 교회의 생활과 사회의 개혁이다. 면죄부나 교황권 박탈, 솔라 스크립처(Sola Scripture, 오직 성경으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로),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으로)을 목이 터지도록 외치면서 수많은 순교자와 희생을 냈던 지나온 500년. 그 가운데서도 사회개혁은 교리나 헌잡개혁 뒤로 미뤘다.그러나 재세례파 저항과 농민반란 운동에 겁을 먹은 유럽교회들이 몸을 사리면서 사회개혁은 지지부진하여 오늘까지 미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현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22.10.2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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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했으나 이제는 죽음이 보인다. 죽음이 눈에 보인다하니까 입방정 떨지 말라는 친구들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 죽음이란 생명을 더욱 값지게 하기 위한 마지막 배움의 과정이다.나는 누가복음 2장,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의 영광의 날을 기다리는 시므온과 안나를 믿음의 초부터 눈여겨보고 있다. 대단한 인물들이다. 그 어수선한 예루살렘, 잘난 인물들로 가득찬 거룩한 성전 주변에 100년 인생을 다 바쳐서 메시아의 날을 기다리는 두 남녀 늙은이들….“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09.2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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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일이다. 양쪽 어깨에 품고자 하는 상대는 유대교와 이슬람이다. 어렵지만 쉬운 일일 수도 있다. 어렵다 하면 결코 상종이 쉽지 않고 쉬워야 한다면 혈육을 거부할 수 없는 피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혈육은 무슨, 4천여 년 전 아브라함의 동일 자손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인류 문명사에서 혈육 아닌 대상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게 된다.그러나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까지를 세 종교, 또 세 종파로 분류할 수 있는데 변명하기 어려운 것은 세 종파 모두 유일신 종교라는 점이다.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라 유일신 신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22.06.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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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교회를 보니까 교회도 때로는 망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대충 아는 대로 러시아는 키이우(키예프) 시대 콘스탄티노플의 정통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AD 850년경, 이후 모스크바 공국(후기 러시아)가 기독교를 본격화하게 된 때는 그때로부터 2-3백여 년 후, 제법 큰소리치는 러시아 정교(Orthodox) 형식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에게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이 망했다. 그때 황망 중에 로마제국 상징인 쌍독수리상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걸 주어들은 러시아가 오늘부터 러시아가 제3로마제국과 교회시대를 열겠다 하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05.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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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대한민국 거덜나는가 싶어서 지난 5년 동안 맘을 졸이며 지냈으나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로 살아남았다. 그것도, 겨우 0.73 %이니까 정신을 차리고, 어떤 경우에도 우쭐거리지 말아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내가 잘나서 살아남은 아님을 명심하고 또 겸허한 마음으로 이제는 제발 이웃끼리 편 가르기 그만하자. 좌면 어떻고 우파면 어떤가 본디 좌파는 하층부 노동자의 편익을 위해서이고 우파는 상층부인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상호역학이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면 좌우 투쟁은 균형 맞추기뿐이다.서로 대한만국 울타리 안에서 그만 싸우자.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본지 발행인
2022.04.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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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숫자는 빙산의 일각. 무조건 20대 대통령 선거는 57% 야당 승리로 예상자료가 나타났었다. 작은 표차이로 패배했다 하지 말고, 또 승점이 아슬아슬 했다고 현기증 난다 하지도 말자. 인고의 지난 5년, 그리고 탄핵과정까지면 6년 가까운 세월이 너무 길었다. 때로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 심할 때는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극심한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까지다. 그만 싸우자. 편 가르기 계속하다가는 함께 망하는 수가 있다. 싸움 또는 편 가르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대한민국의 21세기 초 중반의 위상을 가늠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03.16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