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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이 적어도 10년간 교회성장을 기대하며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면, 통계적으로 2000년 즈음이 교회건축이 가능한 마지막 때였다.현실에 눈을 뜨고 진실을 마주하자. 이제야말로 목사들은 예수의 삶을 따르는 성직자로서 교회성장이 아닌 교회의 본질에 매진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교인들을 설득하고, 그렇게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 진정한 교회의 가능성은 위기의 시대가 주는 역설이다.필자가 속한 교단의 통계를 소개한다(숫자를 밝히는 대신 변동 폭만 제시). 이 통계는 한국교회 전체의 통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0년은 교단
칼럼
김명현
2024.04.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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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닥쳤을 때, 그 두려움을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정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겁에 질려 유령이라고소리 지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즉시’ 말한다.“두려워하지 말아라.”(27)우리의 소리 지름에 예수는 즉시 나타난다.두려움의 해결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불러 가라고 한 예수다.그리스도인이 되면 예수 때문에 오는 두 가지 두려움이 있다. 하나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 어두움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며, 또 하나는 예수의 명령을 따를 때 마주치는 현실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예수
칼럼
양승록 기자
2024.04.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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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갖게 되는 첫 번째 두려움은 어둠이 예수의 실재를 가릴 때 일어난다. 반면, 두 번째 두려움은 현실 속에서 예수를 따르고자 할 때 일어난다.그리스도인은 어둠과 현실 앞에서 이중의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은 결국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움 속에 빠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실재함을 드러낼 것이며, 의심 가운데 손을 내밀 때마다 우리를 붙잡아 줄 것이다.그리스도인이 갖게 되는 첫 번째 두려움은 어둠이 예수의 실재를 가릴 때 일어난다. 반면, 두 번째
칼럼
김명현
2024.03.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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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갖는 불확실성은 예수라는 존재를 희미하게 가리면서 우리를 두렵게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런 두려움을 탓하며 제자의 길에서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두운 현실과 맞닥뜨려 애쓰고 있을 때 예수는, 우리의 요청이 있기도 전에, ‘즉시’ 우리 곁에 실재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오병이어’ 사건(마태 14:13-21)을 통해, 무리들을 마을로 돌려보내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도록 하자는 제자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로 타인에 대한 ‘연대의 정’(compassion)으로 바꾸어 놓았다.그런
칼럼
김명현
2024.02.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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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너머의 기적은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이다. 반대로 일상에는 기적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을 무척 어렵게 여기면서 실제로 거의 하지 않는다. 빵과 물고기만으로도 충분한(?) 기적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도 함께 사는 것은 못한다. …예수는 다정이를 위해 우리를 공동체로 불렀다. 공동체의 관심과 지원이 다정이를 가정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게 한다.필자가 목회를 시작할 무렵, 선배 목사들은 이런 경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쌀독에 쌀 한 톨 남아 있지 않게 되어 ‘내일은 굶어야 하나!’ 하고 있을
칼럼
김명현
2024.01.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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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복수)라고 말한다. 부자나 부자교회가 할 일이 따로 있고, 가난한 자나 가난한 교회가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교회는 타인에 대한 ‘연대의 정’이 가능하지만 가난한 교회는 불가능한가? 예수의 연대의 정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community)를 향한 요청이다. 잃어버린 연대의 정 우리사회에서 ‘동정’(同情)은 금기어다. 빠른 근대화의 과정에서 동정의 대상은 비난의 대상과 동일시된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가출청소년들은 의지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인식을 가진 기
칼럼
김명현
2023.12.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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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유를 내려놓는 것이 타인과 연대하기 위한 첫 번째 행동이다.’(compassion)자신들의 배를 채울 음식이 타인의 배를 채울 것으로 바뀐다. ‘소유가 나눔으로 바뀐다.’ 이것이 연대의 정과 기적 사이에 있었던 과정이다. 기적에 참여하는 제자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병이어’ 이야기는 예수가 기적(빵과 물고기 늘리기)을 일으킨 것으로 이해된다. 덧붙여 제자들에게 믿음과 그에 따른 능력을 가르치려고 그렇게 했다고 해석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은 예수와 그가 행한 놀라운 능력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어떤
칼럼
김명현
2023.12.0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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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물고기의 기적에 앞서, 따라온 사람들에게는 이미 기적이 있었다. …예수의 연대의 정은 기적을 일으키는 유일한 동인이다.연대의 정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기적은 다름 아닌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이자 행동이다.기독교의 이타적 사랑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자녀를 죄로 가득 찬 인간에게 보냈다. 신이 스스로 인간이 된 것이다. 이것은 가장 크고 완전한 이타적 사랑을 드러낸다.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칼럼
김명현
2023.11.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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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르다도 ‘주어진 것들’을 거부하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습관에 매몰되어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데 실패하면서 과거로 되돌아 가버린 것이다.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분명 ‘좋은 것’을 선택했다면 빼앗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선택을 포기하고 되돌아간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되돌아갈 때, 겉으로는 예수를 배반하면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예수께 충성한다면서 되돌아간다. 이들을 통해 예수는 신격화되며 그를 감싸는 건물은 점점
칼럼
김명현
2023.11.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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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인간다운 세상을 꿈꾼다면, 시작은 언제나 간단하다. 시작의 시점은 ‘지금’이며, 시작의 출발은 바로 ‘나’인 것이다.연대와 공존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길은 네 가지가 있다. 지금 당장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 평화를 위한 일에 기부하는 것, 평화를 위한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거나 참여하는 것이 그것이다.이스라엘 남서쪽 해안을 따라 좁고 길게 자리 잡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의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다. 오래된 억압에 따른 분노로 폭발된 무력도발은 곧바로 복수를 불러일으
칼럼
양승록 기자
2023.11.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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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는 세상 속에서 점점 영향력을 잃고 있다. 영향력을 말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세속화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라는 고결한 가치를 버리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교회의 세속화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세속화의 원인과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적어도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깨달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는 희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어디든지 따라가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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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
2023.10.0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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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주인을 없앤 것이 아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규정할 뿐이다. 주인은 곧 시민이다. 주제넘은 종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는다면, 주인은 그들이 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주인과 종이라는 말은 낯설다. 어떤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도 고용한 노동자를 종처럼 대할 수는 없다. 노동자는 경영자의 부당한 지시나 대우에 대해서 법의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는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조직이든지 고용인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공무
칼럼
김명현
2023.09.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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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예언자들의 예언을 실제 일어난 일로 체험했다. 예언자들의 활동과 기적이 하나의 예시인 것과는 달리, 메시아를 통해 실현된 하나님 나라는 그때로부터 영원히 실재해야 한다. 한편 그 나라가 영원한 것이라면, 그 나라에 참여한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메시아 예수와 더불어 영원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부활을 향한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통해 영원한 나라에 참여 한다.이것이 당신의 신앙고백이라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당신은 어떤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가? 아니, 어떤 사람이라야
칼럼
김명현
2023.09.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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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물리친 후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온 예수는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서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찾아 읽었다(누가복음 4장).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18-19). 그리고 회중들을 향해 말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21)
칼럼
김명현
2023.09.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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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가 이미 자행된 범죄를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공동체가 깨어져서 환대가 없는 사회가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는 법이 아닌 우리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가정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면서 환대를 실천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많아지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문제는 ‘나부터’가 아니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오병이어! 누가복음(9:10-17)에서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환대’welcome에서 시작된다.(참고로 마태복음에서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연민의 정’compassion에서 출발한다.)사
칼럼
김명현
2023.08.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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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적 가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시민’들이 사회를 향해 말할 때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 신뢰가 갈 것이며,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볼 용기를 얻을 것이다.학교는 공동체다. 학교마저 공동체성을 잃는다면 그런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학교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마주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될 뿐이다. 제도로서의 학교는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학교는 단순한 제도 이상이다. 학교는 스승과 제자로 이루
칼럼
김명현
2023.08.1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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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부 목사들과 교인들은 진리인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 악마와 죄인의 순환구조에 갇혀버렸다. 권력에 맛들린 종교인들은 극단주의자가 되어 악마나 죄인의 편에 서서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면서 죄인으로 낙인찍거나 악마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그리스도인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편 가름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의 힘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악마가 되었던 자는 인간으로 변하면서 시민을 섬기게 될 것이며, 죄인으로 몰렸던 상대 역시 시민을 섬기기 위한 준비에 매진할 것이다. 정복자들에게 권력이란 빼앗아 차지
칼럼
김명현
2023.07.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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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야 할 비밀이 없다면 존재의 동력도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등불처럼 드러내는 젊은 교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비밀을 듣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에 빠지기 쉽다. 하나는 우리만이 특별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이다. 또 하나는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간직하고 자신들만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폐쇄적 경향이다. 예수가 비밀이라고 말하는 순간, 제자들 역시 이런 선민의식과 결사의식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주님께서 드디어 우리에게만 하늘나라의
칼럼
양승록 기자
2023.07.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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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라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농부가 밭에 나가 씨를 뿌리면 처음에는 일부의 손실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풍성한 결실을 이룬다는 것쯤이야 다 알 수 있다. 전도와 관련된 한국교회의 과거 부흥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결론은 너무나 확고부동해서 교인이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그런데 오늘날 전도에 관한 한 이 말씀은 결코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의 설명은
칼럼
김명현
2023.06.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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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2명이 혼자 있는 사무실을 기웃거리더니 들어왔다. 교회 밖에 있는 사무실이어서 교회라는 표시는 없었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한 눈에도 필자가 목사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를 설명하면서 발행한 신문을 주고 갔다. 자신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필자에게 건넨 말인데, 자신들의 신앙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전도를 하면서 정통교회인 척 위장할 법한데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들은 정통교회와 다른 점을 드러내어 부각시키는
칼럼
양승록 기자
2023.06.23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