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예수로, 사람으로 오셨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 완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와서 사람노릇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철학이론이나 종교의 설교로 가능한 일이 아니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느 만큼 채워가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 보이는 정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 그 사람은 나다. 내게서만 참되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을 만난 또 그 사람은 최종적으로 그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2.20 16:12
-
어리석어 주 예수께 늘 혼쭐이 났던 바리사이들 생각이 난다. 예수님은 그래도 믿을 놈들은 바리새파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 가닥 간절함이 있었다. 결론을 앞당긴다면 그래도 유대 예루살렘의 바리새파들 중에서 예수가 나왔고, 그 부모는 물론 제자들이 나왔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오늘의 국가나 교회의 위기에 있어서도 나라를 바로세우고, 교회 모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가능성 집단이 정통파 바리사이 같은 신자들인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한국교회에는 다수 분포되어 있다.어찌 보면 기복신앙에 취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2.06 16:00
-
느닷없이 등장한 자칭 촛불혁명 세력들에게 정치사회를 이끌어갈 주도권을 내주고, 그래도 소수 세력일 뿐인 집권당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야당들과 순진한 기독교인들은 친절한 정부노릇을 하려고 애쓰는 것에만 혼을 빼앗기고 자기 할일을 못하고 있다.정치와 사회현상의 변화에 민감해야 할 극한의 폭력집단인 북한권력과 분단기 민족의 정서 때문에 남남갈등, 유사갈등이 겹치는 한국판 정치현상이 마키아밸리가 등장해도 쉽지 않을 형편이 되어 있다.그래도 나라의 형태가 모호해지거나 아차, 중국 공산당 과정의 홍위병 홍역기 같은 전염성 열병을 우리가 뒤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2.06 16:00
-
지난 2000년대 초기, 평양에 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있었다. 순안공항에서부터 숙소인 양각 호텔까지 차창 너머로 북한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시내를 다닐 수 있을 때 평양역 인근에서 주민들과 대화하고, 안내인들이나 군경들과 마주할 때도 가능한 한 더 많이 접촉하려고 노력했다. 그때 사설자는 방문단 신분을 ‘기자’로 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라는 의문에 기독교 언론사 기자신분임을 말해주며 웃어넘길 수도 있었다.그때 칠골교회 예배 시에 기도 중에도 사진 촬영을 이유로 좌석을 이동하면서 북쪽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2.06 15:59
-
헨리 8세의 개혁과 로마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개혁 과정에서 잉글랜드의 1607년 청교도들 몇 명이 조금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갔다가 언어문화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뉴잉글랜드(미국)행을 결단,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떠났던 날, 그리고 보스턴 플리머드 항에 도착했던 날은 이미 겨울의 초에 접어드는 11월이었다.그해가 가기 전, 1620년이 저무는 시간에 농사를 지은 것으로 그들은 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신앙의 자유 하나만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했던 그들의 용기를 떠올려본다.오직 신앙의 자유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신대륙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22 11:45
-
지난 11월 10일자와 21일자 조선일보를 읽었다. 작위성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물론 교회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루 이야기”로 볼 때 모처럼 잔잔한 감동이었다.교회는 자기 환경 주변을 바라볼 때 교회의 실력과 상관없이 할일이 많이 있다. 이는 “지역교회”의 교회 조건에서를 말한다. 교회는 무조건 “지역교회의 성격”을 기본으로 한다. 제사 종교 시대에는 편의에 따라서 “성전”이나 “신전 또는 신당”을 특정시역에 설치했으나 신약시대 곧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의 교회는 반드시 “지역교회”만이 성전이다. 하나님이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22 11:44
-
한국교회는 위기와 성숙의 두 기회를 한꺼번에 맞이했다. 위기는 이승만 정부의 혜택 같은 날들은 더 이상 없다는 현실이다. 또 하나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을 때 당시 충현교회 장로이기도 했던 대통령이 작심하고 한국교회를 손보려 한다는 여론이 교계에 있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 없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작심은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교계 주변에서는 수군수군했었다. 또, 이 정보가 당사자에게서 나왔다는 증거가 없기는 했으나 그때 그 시절의 교계를 보는 사회와 정가의 분위기는 당할지도 모른다는 얼마간의 두려움이 있었다.요즘, 시대변화에 따라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22 11:44
-
목회와는 별도로 직업을 가지라. 솔직하게 말하면 16세기 초기 개혁자들은 성·속의 이분법 중세기독교 구조를 탈피하는 개혁이 일차목표였다. 루터뿐 아니라 대다수의 개혁자들은 성직자와 평신도 이분법까지 깨뜨리는 종교개혁을 목표했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핵심에 의하면 목사직은 성직이 아니다. 목사가 교회 안에서 성직자로 군림하고 피지배 대상으로 평신도를 따로 구성한다면 이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아니다.16세기 개혁의 맹주인 마르틴 루터는 그의 만인제사설에서 밝힌 바대로 성직자가 중세기 봉건 영주 계층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15 16:16
-
999명 이상 모이는 교회들은 교회 구성원 재조정하자. 사실은 선진국이면 3백 명 정도씩 교회정원을 분할해야 한다.교회는 하나님의 세상 구원을 위한 군대다. 합참본부에 가서 물어보라. 군 조직을 어떻게 하고, 부대 배치, 전투부대와 훈련부대, 또 예비부대는 어떻게 어느 곳에 배치하는가를 배울 필요가 있다.물론 기념교회나 신병훈련소 기초훈련병 수준의 신자 교육시설은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일정한 수준의 실력이 만들어지면 개개인의 능력이나 적성에 따라서 배치를 해야 한다. 10년, 20년, 30년 신자생활 하는 사람들이 한 교회당에 모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15 16:15
-
한국교회가 조선·동아 등 대형 일간지에 컬러 광고를 즐긴다. 한 번에 3천만 원 또는 1,2천만 원씩 하는 선전광고에 맛을 들였다. 교계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 부지하는 주간지 사설에 이 같은 글을 쓰고 있자니 자존심 상하는 것은 물론 낯 뜨겁기가 한량없지만, 그래도 여보시오. 일간지 그 비싼 신문광고 한 번이면 가난한 신자의 피보다 더 뜨거운 헌금 몇 명이 모으면 1천만 원, 2,3천만 원이 되는 줄 아시는가?우리 같은 교계 신문사 광고비 몇 십만 원이면 해결되는 일, 나머지는 그 헌금들이 모여 교계와 한국교회를 더욱 유익하고 명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15 16:15
-
중원과 몽골 초원의 세력들로부터 지난 1천여 년 동안, 큰 전쟁과 작은 전투까지 포함하면 대략 1천 번쯤 된다는 역사학계의 전언이 있다. 우리 한반도 조선은 중국, 몽골, 왜구, 일제기까지 포함하면 매년마다 한 번씩 쫓겨 다니고, 움츠리고, 음모와 고발을 시키는 대로 하면서 목숨을 부지한 기간이 1953년 7월 27일 휴전까지 계산하면 1천여 년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대로 휴전선 경계와 북한 핵무기까지 견제해야 하는 버거움이 있으나 잘 견뎌내고 있다.해방기 이후, 약간 모자란 실력 때문에 통일을 못하고 분단기를 살아오면서 좀 더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08 15:18
-
채마밭 상추는 오늘 심어 두세 주 지나면 밥상에 오르고, 과일나무 십년 길러서 열매를 딴다. 사람은 백년 배우면 천년 재목이 될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전해온다.무엇을 말하는가? 배움, 하나님과 예수님, 교회의 역사와 전승을 배우고 다듬고 길러내는 데 시간과 열정, 물질과 인내가 많이 필요하다.한국교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짧은 역사(로마 기독교에 비해서)를 지켜오면서 기초기반을 닦는 데 많은 정성과 시간을 바쳤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교회와 한국인 모두에게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을 교회가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현재,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08 15:18
-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에게서 출발한 교회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전체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확실한 신뢰와 고백을 말한다. 끝없는 분파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서는 안 된다. 어찌 오직 하나의 종교, 유일 종교라면서 속물적인 분파현상을 즐기는 듯이 방치하고만 있는가?전국 각지에 위치한 교회들 모두가 예수님을 중심하여 “하나”로서의 결집력을 보여야 한다. 최소한 신자교육과 사회봉사에 있어서만은 한국교회의 힘을 똘똘 뭉쳐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1.08 15:17
-
그 험악한 교황권 폭력과 착취의 시대에 목숨 걸고 인간 한계를 극복해낸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의 헌신에 한량없는 마음으로 경의와 찬하를 보냅니다. 그러나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개혁의 마무리 과정 또한 험난한 고난과 죽음까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16세기 후예들이 오늘 명심하고 실현에 옮겨야 할 개혁과제는 세 가지가 우선 급합니다. 첫째, 만인제사의 신학 수립과 실천신앙.‘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느니라’(롬 10:10) 한 말씀을 눈여겨보세요. 이신칭의(롬 1:17)의 해석이 아닐까요.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0.26 14:40
-
저잣거리에 가면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 김정은의 핵무기 폭력 앞에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이 무슨 소린가? 생전에 들어본 일이 없는 말, 여보시오! 장난소리도 그렇지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야 됩니까라고 얼버무리기도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어찌 여기까지 왔는가? 그럼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가? 자유 자본주의 시대를 값지게 살아서 유럽처럼 선진형 사회를 만들었으면 좌파세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으며, 70년 독재 권력자 앞에서 5천만 자유 대한의 사람들이 빈말이라도 천둥벌거숭이 세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0.18 11:47
-
들을 귀 없고 눈 먼 목사들에게 붙들려서 우맹의 생활하기가 이제는 싫다. 지금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서 우두커니 우리들을 지켜보시는 예수가 보이는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예수를 예수로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이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왜, 그 음성이 들리지 않고 우리 곁에 계시는 그분이 보이지 않을까? 이는 섬기고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내게 준비되어 있지 않고, 그분과 함께 나누어 먹기보다는 나 혼자서 독식하고 싶어서일 것이다.요즘 한국 정치판에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역사를 100년쯤 후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0.18 11:47
-
유럽은 1517년에 중세기 낡은 종교의 틀을 벗어나려고 종교 혁명을 시도했는데 21세기 다수의 한국교회는 중세기적인 형식을 즐기고 있으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다. 근래에 들어서 두드러진 풍조는 천당보내기 식 교회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사회적 기여도가 낮아졌고, 정부의 복지정책이 오히려 교회가 주는 안위를 앞서가고 있으니 면목이 없고 부끄럽기까지 하다.천당보내기 종교가 기독교의 본분이 아니다. 천당은 예수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자격으로 인간으로 오신 이상 천당이라는 중세 이전적 종교지상주
사설
편집부 기자
2017.10.18 11:46
-
총회가 계속되는 지난 22일 “WEA와 교류 단절” 헌의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 단절안이 부결된 것이다. 중요한 사안으로 구별해 신학적으로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결이라기보다는 보류였다.논의 과정에서 WEA는 복음전도와 선교라는 명목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비롯 다양한 교파, 가톨릭과의 대화와 연대를 추구하는 단체로 기독교 참된 진리를 변질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외형적으로는 복음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그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때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허용하고
사설
편집부 기자
2017.09.27 10:52
-
대한민국의 북한문제가 전 세계인의 불편한 현안으로 등장하니까 자유 민주체제를 지켜가는 대한민국 구성원인 우리도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진다. 북한 핵이 머리 위에서 귀신불처럼 위협해서만이 아니라 동반부끄러움이다.이는 “우리 민족끼리”를 앞세우는 음흉한 북한식 노림수에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크지 않은 영토를 남북으로 나누어 지키는 입장이고, 우리의 옛 터 고조선 땅에서 같이 살면서 서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는 생각을 하니까 부끄러운 것이다.남북한 관계가 1945년 8월 14일까지는 동족의 가슴으로 서로 간 희로애락을 허물없이 나
사설
편집부 기자
2017.09.27 10:52
-
교회는 조직체이다. 모두 개개인이 구원의 완성을 위한 “단독자”가 된 후 교회의 개체 구성원인 “신자”는 교회, 곧 “하늘나라”의 본체를 향해 들어갈 길을 서두른다. 자기 본향은 하나님과의 일체를 이루는 그 품속인데, 이는 우리가 말하는 “천국” 바로 그 모습인 것이다.그래서 교회의 분파현상은 그 교회(신자, 단독자)가 자기 본분을 아직 다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종족의 무리를 떠나서 길을 잃거나 다른 욕망에 취하려 들다가는 또 다른 강자(사단)의 밥이 되어버린다.교회는 하나다. 전체(하나님) 속에서 하나, 또 하나의 조직체여야 한다
사설
편집부 기자
2017.09.27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