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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함석헌 평생의 화두(話頭)- “민중이란 무엇이냐?”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는 이미 누누이 언급해온 것처럼 실로 엄청난 파고를 일으켰다. 한순간만이 아니었다. 1961년 7월호 사상계에 그 글이 발표된 후 그가 그 육을 벗고 유명을 달리하는 1989년 2월 4일까지 함석헌이 일으킨 파고는
문대골   2014-06-11
[기획연재] 함석헌과 장준하의 4·19와 5·16 (4)
장준하, 중정(中情)에 연행되다함석헌의 글 ‘5·16을 어떻게 볼까’를 참 무거운 마음으로 7월호에 실어 내어보낸 장준하는 밤새 불안했고, 다음날은 군정으로부터의 폐간령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전 사원들을 요정 ‘대하’에 불러 모아 해산주(解散酒)를 ‘
문대   2014-06-11
[기획연재] [기획연재(49)] 함석헌과 장준하의 4·19와 5·16 (2)
“전 민중이 노했고, 일어났고, 이겼고, 기뻐했는데 그것이 혁명이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혁명은 어떤 것이냐? …우리도 자유를 사랑하고 정의를 위해 분개할 줄 알고,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림인 것을 증명하게 하여 전날
문대골 목사   2014-02-21
[기획연재] [기획연재(48)] 함석헌과 장준하의 4·19와 5·16 (1)
“3·1운동의 기억도, 해방 직후의 기억도 다 잊지 않고 가지고 있는데, 오늘도 그 지나간 때들과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시원한 운동이 없느냐? 두말할 것 없이 6·25 이후에 가 했던 사명을 수행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함석헌이 들은 영음(靈音),
문대골 목사   2014-01-23
[기획연재] [기획연재(47)] 함석헌과 사상계, 그리고 필화(筆禍)사건 그 이면의 이야기
1955년 사상계와 1956년의 함석헌1956년 1월 함석헌의 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발표한 이후 1960년대 사상계의 눈부신 확장과 함석헌의 글은 실로 묘한 랑데뷰(rendez-vous)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함석헌이 사
들소리신문   2013-12-20
[기획연재] [기획연재(46)]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풀어 밝힌다
고난(苦難)의 역사, 고난의 사람1958년 사상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로 연행, 구속된 함석헌은 20일 간의 수감끝에 풀려나오게 되는데, 함석헌은 이때 자신의 존재와 한국의 운명을 둘이 아닌 하나로 깊이 인식하게 된다. 이전 북에
문대골   2013-12-05
[기획연재] [기획연재(45)] 함석헌이 쌓아 올리는 저항의 토성(抵抗土城)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하는 사람 계창호(桂昌鎬)1958년 8월, 사상계는 함석헌의 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발표했다.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명격문(名激文)이 사상계를 통해 발표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서 계창호(桂昌
문대골   2013-10-24
[기획연재] [기획연재(44)] “할 말이 있다”
한국기독교는 ‘한국기독교의 세기적, 세계적 성장’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대형화(大形化)를 교회성장의 바로미터로 철저히 오해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함석헌은 예언적 격탄(激彈)을 마다하지 않는다.“내부에 생명이 이어 솟는 때에, 종교는 성전의 필요를
문대골 목사   2013-09-26
[기획연재] [기획연재(43)]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기고한 다음 해 (1957년) 천안 씨알농장에서 농사 지으실 때 모습.함석헌 ‘글판’ 사상계1955년 12월 송년호 13,000부를 발행한 사상계는 이제 한국 민주언론의 교두보(橋頭堡)로 타의 시비를 불허할 만
편집부   2013-08-21
[기획연재] [기획연재(42)] <思想界>의 장준하와 함석헌 ③
1955~56년 초창기 사상계를 이끌었던 장준하 사단. 왼쪽부터 김준엽, 장준하, 안병욱(앞), 김성한(뒤), 양응모, 김호전 제씨들.이승만 대통령의 ‘한글간소화안’에 대해 장준하, “정치가 문화 지배 말라”이승만 정권과의 싸움 통해 “사상계는 장준하
생명교회 원로 목사/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3-07-24
[기획연재] [기획연재(41)] <思想界>의 장준하와 함석헌 ②
박정희 독재 투쟁 시절 장준하와 함께.# 서영훈-고형곤-박마리아-이승만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만은 장준하와 생(生)을 함께 하리라 했던 서영훈이었는데, 일이 잘못돼도 너무 잘못돼 버린 것이다.장준하의 인물됨에 깊이 감동한 바 있는 서영훈은 장준하가 하는
생명교회 원로 목사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3-07-01
[기획연재] [기획연재(40)] <思想界>의 장준하와 함석헌 ①
함석헌 선생(오른쪽)과 장준하.〈재야의 빛 장준하〉를 쓴 전기작가 박경수는 함석헌을 일러 ‘그 생애에 만난 또 하나의 귀인’이라 했지만 장준하 역시 함석헌이 만난 ‘또 하나의’(?) 귀인이었다. 함석헌을 만나기 전 장준하는 이미 있었고, 그의 주위에
생명교회 원로 목사/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3-05-22
[기획연재] [기획연재(39)] ‘맨 사람’ 함석헌의 ‘맨 글’, ‘맨 말’
팔순 축하모임에서 강연하는 함석헌 선생.고은, 신경림 등 당대 시인들이 예찬… “꾸밀수록 어줍잖고, 칠할 수록 탁해지고 추해지는, 그래서 본래의 모습 그대로일 수 밖 1961년 저 유명한 사상계(思想界) 지상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 를 발표
생명교회 원로 목사/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3-05-02
[기획연재] [기획연재(38)] 함석헌이 말하는 대속론(代贖論) ③
장준하 선생 추모의 밤에 함석헌 선생.“대속(代贖)이라!둘도 없는 네 인격에 대신을 뉘 하느냐?”“예수는 예수요너는 너요,멎음 없는 역사의 흐름 흐르는 언덕저쪽엔 그가 서고 이쪽엔 네가 서고”“심장의 육비에 새긴 기록을,영혼의 미간에 박힌 죄악의 허물
생명교회 원로 목사/ 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3-04-02
[기획연재] [기획연재(37)] 함석헌이 말하는 대속론(代贖論) ②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평생을 함께한 신앙과 삶의 동지였던 성산 장기려 선생(왼쪽 두번째)과 함석헌 선생(왼쪽 세번째).함석헌은 모든 체제, 모든 논리에 일단 ‘아니’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퀘션(question)의 사람으로 살았다. 그는
생명교회 원로 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3-02-26
[기획연재] [기획연재(36)] 함석헌의 대속사상(代贖思想)
생각하는 사람 함석헌.“나는 역사적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함석헌은 그의 가슴에 한 '생의 과제'를 품고 있었다. 진리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과제만큼이나 그를 힘들게 하는 논리가 하나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3-01-30
[기획연재] [기획연재(35)]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
월남 직후 이호빈 목사 등과 함께(앞줄 가운데 함석헌 선생).6·25의 참화와 함석헌의 평화주의6·25의 참화는 함석헌에겐 더할 수 없는 하늘의 선물로 왔다. 그의 역사관·종교관, 특히 국가관을 확 뒤바꾸어 놓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3-01-03
[기획연재] [기획연재(34)] 말씀이 되어 말씀으로 온 사람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평생을 함께한 신앙과 삶의 동지였던 성산 장기려 선생(왼쪽 두번째)과 함석헌 선생(왼쪽 세번째).1948년 YMCA 시민강좌, 민중 앞에 선 첫 발민중 속에서 자신 재발견 “지식이 죄일줄이야”무교회의 일요 예배1947년 3월 17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2-11-21
[기획연재] [기획연재(33)] 함석헌이 말한 '아 주 쉴 곳'은?
1980년대 함석헌 선생과 필자(함석헌 선생의 서재에서).'아주 쉴 곳' 바닥(민중), 바닥살이함석헌이 여섯번째의 30일 감옥살이를 끝내고 나오는 날, 보안서장으로부터 백영엽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 한주일에 한번씩 은밀히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백영
생명교회 원로목사 / 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2-10-29
[기획연재] [기획연재(32)] 남(南)으로 기운 한반도의 저울추(錘)
유영모 선생 60년 기념모임(사진 첫째줄 왼쪽 첫번째 함석헌 선생).미국 제국주의자들도, 일본 제국주의자들도함석헌에게 있어 국가 권력은 예외없이 악(惡)이었다. 그래서 함석헌은 어느 경우에도 국민일 수가 없었다. 그가 사랑한 것, 사랑하는 것은 국가가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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