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72건) 제목보기제목+내용
[기획연재] [기획연재(31)] 1946년 함석헌의 울어 산 해
197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김대중·이휘호 여사 등과 함께.옥중에서의 필기도구, 중요한 주제 담는 진귀한 그릇스파이 노릇하라는 요구 죽어도 못할 일… 월남행소련 군정하의 첫 감옥살이이제 이후 함석헌이 더 이상 북에 머문다는 것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직전 이사장 문대골   2012-08-22
[기획연재] [기획연재(30)] 결코 제 맘대로 살 수 없는 사람
1960년 말 한 지방교회 순회집회 중.거름통 메고 들은 해방소식함석헌을 사용해가시는 그의 하나님은 함석헌과의 약속에서였거나 혹은 일방적으로였거나, 하나, 분명한 것은 함석헌으로 하여금 결코 제 맘, 제 계획대로 살 수 없게 하셨다는 것이었다.“네 맘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2-07-25
[기획연재] [기획연재(29)] “풀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영원을 내다보기로'…”
장준하 선생 추모의 밤에 함석헌 선생.하늘이 듣지않는 함석헌의 꿈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동경고등사범을 마치고 자신의 모교인 오산고보에 역사교사로 부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함석헌에게는 10년 세월 일구월심(日久月深), 비원의 꿈이 있었다.
생명교회 원로목사,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2-07-02
[기획연재] [기획연재(28)] 함석헌과 최진삼, 바보들의 만남
퀘이커 서울모임 회원들과 함께(1970년 초).하나가 된 두 바보가히 최진삼의 결혼식은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것이었다. 연회(宴會)를 뺀 식순에 의해 걸린 시간만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장장 다섯시간 동안 계속 되었으니.한다하는 이들의 주례사,
생명교회 원로목사,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2-05-23
[기획연재] [기획연재(27)] '이 땅에서의 일'을 끝낸 사람
한평생 함석헌 선생과 함께 한 최진삼 장로(왼쪽에서 세번째).세상일을 다 벗고평양대동 경찰서에 수감된지 두어달쯤 될 때부터 함석헌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리 눈물을 쏟는 때가 많아졌다. 그렇게 흘리는 눈물의 이유를 딱히 그 자신도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2-05-10
[기획연재] [기획연재(26)] 유영모의 '어둠'과 함석헌의 고난(苦難)
스승 유영모와 함께 한 함석헌 선생. 사진 왼쪽은 당시 서울농대 유달영 교수.유영모의 '어둠'유영모(柳永模)는 함석헌이 그의 나이 70이 넘어서까지 무릎을 꿇고 대하는 유일한 스승이었다.“내가 언제까지 선생님의 제자노릇을 해야 하는건지…”하며 답답해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2-03-28
[기획연재] [기획연재(25)] 함석헌과 송산(松山)
〈씨알의 소리〉 편집장 박선균(오른쪽), 백청수(왼쪽) 님과 함께 한 함석헌 선생.송산(松山)학원역사의 제물로 운명지어진 '함석헌의 나라'가 열려오기 시작한다. 함석헌이 이제 '평양의 송산'을 향해 오산을 아예 떠나게 되는데, 필자가 송산(松山)을 '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2-02-22
[기획연재] [기획연재(24)] 김태훈 군과 함석헌 '자신의 나라'
함석헌 선생의 건강을 염려하는 제자들(왼쪽부터 서영훈, 최진삼, 이태영 변호사 외 여러분들).김태훈과 함석헌, 그리고 송산 농산학원송산고등농사학원을 경영하던 김두혁이 동경농대의 진학을 위해 떠나게 되면서 송산학원을 인수해 경영할 인물을 찾고 있다는 소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2-01-20
[기획연재] [기획연재(23)] 함석헌의 절대사관, '고난'(苦難)
1975년 한 〈씨알 모임〉에서 씨알을 말하는 함석헌 선생.성지(聖地) 용골들녘오산학교를 사임하고, 오산학교에서 용골(龍滑)로 넘어가는 언덕기슭에 자리한 함석헌의 농장은 그가 시대를 넘어, 종교계(界)를 넘어 그 자신의 하나님 '역사와 참'을 만난 곳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12-21
[기획연재] [기획연재(22)] 아, 뒷줄을 끊어버린 사람!
도봉동 소재 자택에서의 함석헌 선생.함석헌에게는 이미 농사와 교육과 신앙을 하나로 묶은 공동체를 통해서망해버린 나라를 살려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고, 자신의 '사명(mission)'이었다고 까지 단언한다죽기로 사는 사람뒷줄을 끊어버린 사람!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1-11-23
[기획연재] [기획연재(21)] “지금 뒷줄을 끊어놓고 앞만 살피고 있습니다”
한·일회담 저지를 위한 모임에서 함석헌 선생(사진 왼쪽부터 예춘오, 문동환, 박형규, 계훈제 선생 등과)그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표지의 노트를 받아든 김태훈은 받아들고 나서는 어쩔줄을 몰랐다. 감히 그 노트를 자신이 한번보여 달라고 했고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11-02
[기획연재] [기획연재(20)] 홀로 지켜내는 조선혼(朝鮮魂)
펜실바니아 펜들힐 퀘이커 수련원에서의 함석헌 선생(사진 오른쪽).함석헌이 '선한 목자'를 하늘에 서원했을 때부터 그의 생의 주제였던 고난(苦難)이 그의 살 속에 혼 속에 깊이 서리기 시작했다. 함석헌의 일생엔 두 가지 주제가 있었다. '참'과 '고난'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09-22
[기획연재] [기획연재(19)] 하늘 향해 서원한 “선한 목자”
제자들과 함께(박정희 군부 통치시대).무국적의 떠돌이자신을 구타해놓고 도망쳤다가 이튿날 '선생님'을 다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울며 용서를 구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이유, 어떤 경우의 폭력도 범죄'라며 엄히 꾸짖은 함석헌은 학생들이 돌아간 후에 도 울고
생명교회 원로,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08-24
[기획연재] [기획연재(18)] “함석헌, 오산에 제단(祭壇)을 쌓다
1936년도 오산학교 1학년 갑조반 담임이었던 함석헌 선생과 학생들.내촌에게서 세례를 받고함석헌은 동경고사를 졸업하고 3일째 되던 3월 17일(1928), 내촌(內村)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당시의 교회법 때문에 영원히 '교회의 사람'이 될수가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1-07-20
[기획연재] [기획연재(17)] 김교신 → 내촌 → 성서조선(聖書朝鮮)
〈말씀 모임〉에서 함석헌 선생.아버지 전도 일념으로 성경 소리내 읽어… 장로돼자신 안에서 찾고 또 찾고, 내촌 통해 새신앙 얻어함석헌은 아홉살에 교회 학습을 받았다. 12살이라야 받을 수 있는 학습을 9살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나이에 걸맞지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1-06-29
[기획연재] [기획연재(16)] 사회주의 조선이냐? 성서조선이냐?
3·1운동 55주 기념강연회 함석헌 선생 강연 모습.함석헌, 동경고등사범에 진학하다그 무서운 관동대지진을 겪은 함석헌은 다음해 1924년 동경고등사범 문과에 합격하게 된다. “한해를 준비해 가지고 명년에는 꼭 어디나 입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05-25
[기획연재] [기획연재 ⑮] 만고(萬古)의 적 '국가주의(國家主義)' 그리고 '나'
민주수호협의회의 성명서를 검토하고 있는 함석헌 선생.1923년 9월 1일,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 관동대지진은 다시 있어서는 안될 비극이요 재앙이었지만 함석헌에게 있어서만은 그것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은혜의 선물이었다. 오직 인류의 미래를 위한 `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04-20
[기획연재] [기획연재 ⑭] “뜻”의 청년 함석헌 '國家主義'를 꿰뚫다
장준하 선생 추모의 밤에 함석헌 선생.'역사의 사람'이면서 희한하리만큼 `생의 수평선'을 기리는 함석헌에게 있어 1923년 일본의 관동 대지진은 하늘이 베푼 오롯한 은혜였다. 적어도 함석헌에게는 말이다. 죽을 때까지 참을 이루기 위해 거짓과, 의를 구
생명교회 원로/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03-28
[기획연재] [기획연재 ⑬] 동경유학과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동경고등사범학교 재학 당시의 함석헌 선생(뒷줄 우측의 첫번째).그러나 이미 '자유'와 '스스로 함'의 의미를 체험한 함석헌에겐 동경 유학이라는게 결코 편할 수가 없었다. 학문의 욕구는 마치 불길같다 해도 이제부터 함석헌이 도야(陶冶)하게 될 그 학문이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회 이사장 문대골 목사   2011-02-23
[기획연재] [기획연재 ⑫] 함석헌(咸錫憲), “나”를 문제삼는 사람
안반덕 농장에 오르셔서(강원도 고성군 간석면 소천리 소재).나는 누구인가? 묻는 함석헌오산을 떠나는 유영모는 “내가 이번에 오산에 다시 왔던 것은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였던가보이…” 했던 그의 제자 함석헌에게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선
생명교회 원로목사 /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문대골   201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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