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71건) 제목보기제목+내용
[기획연재] 아이슬레벤으로 낙향하는 루터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예배당에 내걸었던 95개 조항의 항의문 사건 후, 루터는 비텐베르크 맹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황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며 영욕의 날들을 보냈으나 드디어 비텐베르크를 떠난다.1546년 1월이다. 무려 30여 년 동안 유럽
조효근   2017-12-06
[기획연재] 역사, 어찌 공과 과 없을까?
제목만 보면 요즘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 시비인가, 할 수 있겠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공(功)과 과(過)의 문제를 거론하는 내용이다. 며칠 전까지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느라고 떠들
조효근   2017-11-22
[기획연재] 루터의 초기선언처럼 살고 있는가?
16세기 기독교 개혁의 총아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단순 통과의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16세기 기독교의 후예들인 모든 프로테스탄트 형 교회들은 바로 지금부터야, 하면서 새 시대를 향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1517
조효근   2017-11-15
[기획연재] 교회와 정치는 동반자 관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기에 하나님(예수) 중심의 세상의 질서(화평)를 잡아야 했으나 예수는 세상에 오셔서 정치적 행위를 일체 사양했다(열심당과의 거리). 이로 말미암아 가까이는 가룟 유다의 혼선을 가져오기도 했었다.바울은 “위
조효근   2017-11-08
[기획연재] 기획 / 종교개혁 500주년 -루터의 고뇌, 후예들의 각오는?
교황권 부정의 기반 위에 ‘만인제사’는 ‘이신칭의’를 정당화해 주고, 16세기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었다. 그러나 혁명적 용단으로 출발(1517년)했던 종교개혁은 1525년에 이르러 좌절과 실의의 늪으로 프로데테스운동을 몰아넣었다. 그것은 농민반란
조효근   2017-10-18
[기획연재] 개혁 멈추면 복음을 제한하게 된다
루터 개혁의 아쉬운 부분-오늘 우리의 책임, 본질로 다가가 해법 제시해야 미래가 보인다 복음의 완전이 이뤄진 예수 메시아의 길에 “일과성 개혁” 행위가 더 이상 진전 없이 멈추게 되면 그 개혁행위는 “복음의 장애 또는 복음의 제한”이라는 불행스&zwn
조효근   2017-06-14
[기획연재] 종교개혁은 현재진행형이다
16세기,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내걸었던 95개 조항을 내용별로 살펴보아도 그것들은 로마 가톨릭 윤리 경고용이었다. 다시 말하면 마르틴 루터는 그가 요구한 95개 조항 건의문은 가톨릭 내부 조정용으로 만족했지 1천여
조효근   2017-05-31
[기획연재] 이 사람!! 보헤미아의 얀 후스
1415년 7월 6일, 콘츠탄츠 공의회 대 재판정, 보헤미아(체코) 교회 지도자요 프라하대학 학장인 얀 후스(Jan hus, 1370?~1415) 로마 가톨릭 검찰관과 사교(사제)들에 의해 “이단자”로 확정되고, 즉시 화형 집행 상황에 돌입했다.교회는
편집부 기자   2017-02-01
[기획연재] “제자훈련 통해 자생력 갖추자 꽃 피고 열매 맺히더라”
평일 오후시간, 도봉구 도봉로 106길에 위치한 창동교회(김상렬 목사)는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교회 마당 옆 카페에서는 어른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고, 그 바로 옆에는 키즈 카페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있었다.그곳을 지나 1층 교회 현관
양승록 기자   2016-07-14
[기획연재] “주일설교, 성경본문에 입각해 사회적 이슈 전하라”
성경 본문의 복음으로 시작해 ‘하라, 하지마라’ 일색의 율법으로 끝나는 맹점에서 탈피하라학생들과 계속하는 설교 난상토론-각자 자신의 것을 꺼내놓고 토론과 발표하면 훨씬 풍부해져방학 때 ‘설교클리닉’ 큰 호응, 재학생·졸업생 참여-올 8월 22~24일
양승록 기자   2016-06-22
[기획연재] 바푸(Bapu=father) 함석헌의 삶-(61·끝)
“ 이제까지의 역사는 기득권에 의해 오도된 역사였다. 이제는 씨이 역사의 주(主)로, 그 역사를 이루어가게 될 것이다. 역사의 주역인 씨, 씨로 이루어져갈 역사, 1989년 2월 4일 새벽 5시 25분. 어떤 이들은 이날, 이시를 함석헌이 죽은 날로
문대골 목사   2015-03-25
[기획연재] 〈씨의 소리〉는 그렇게 살았다!
# 1972년 4월호 이야기1972년 4월호 발행엔 장준하, 박선균, 문대골, 박상희가 다 동원되었지만 주역은 단연 업무부의 박상희 양이었다. 박상희 양은 1971년,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衛戍令)이 발동하면서 군부세력에의 저항이 빌미가 되어 한신대
문대골   2015-02-12
[기획연재] 〈씨알의 소리〉와 ‛성서·동양학회’ (5)
편집장박선균의 또 다른 이름이 ‘씨알의 소리 편집장’이었다. 함석헌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반세기가 흘렀고, 박선균이 를 떠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의 오랜 독자들은 씨의 소리 편집장 하면 영락없이 박선균을 떠올린다. 한동안 박선균이 를 떠
문대골 목사   2015-01-21
[기획연재] <씨알의 소리>와 ‘성서·동양학회聖書·東洋學會’ (4)
박정희와 그의 수족들을 제외한 정치, 종교, 법조, 교육, 문단 등 전 분야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박정희 정권을 향해 저항의 일자진(一字陳)을 쳤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이 갈수록 가중되어 가는데도 제야의 민주세력은 흔들림 없이 저항해 나갔다.>> 함
문대골 목사   2014-12-19
[기획연재] <씨알의 소리>와 ‘성서·동양학회聖書·東洋學會’ (3)
성서·동양학회 20여 년간 함석헌의 역사관, 종교관은 그 수위를 놀랍도록 더해갔다. 유달리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나는 생각”을 얻어내고 그 새로 남, 새로 얻은 생각으로 고전을 풀어 다시 새 생각을 일
문대골 목사   2014-12-01
[기획연재] <씨알의 소리>와 ‘성서·동양학회聖書·東洋學會’ (2)
“로 내 생의 동그라미를 마치겠다” 하던 함석헌도 약간의 예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큰 일감을 탈취당한 후 한동안 멍하고 있는 사이 역사는 함석헌을 위한 새 종교사(宗敎史)의 불씨를 일으키고 있었다. 소위 성서·동양학회(聖書·東洋學會)의 발기, 창립이
문대골 목사   2014-10-23
[기획연재] <씨알의 소리>와 “성서·동양학회(聖書東洋學会)”(1)
# 함석헌에게 주어진 두 큰 일감70년대에 들어서며 함석헌에겐 두 가지 큰 일감이 주어진다. 하나는 함석한 자신이 일생의 일감이라고 고백한 월간〈씨알의 소리〉창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함석헌 자신과는 상관없이 외곽(?)에서 출범한 ‘성서·동양학회’(聖
문대골 목사   2014-09-26
[기획연재] 함석헌은 박정희의 10·26을 예언했는가? - “내가 그의 끝을 보기 쉽지…” (씨알의 소리 편집장 박선균)
“참 정치가는 백성들로 하여금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일깨워 가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정치한다는 자들 중에 민(民)으로 하여금 죽음을 가지고 겁먹게 하는 자들이 있다. 역사는(하늘은) 이런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한국의 예언자1961년 5월
문대골 목사   2014-08-20
[기획연재] 박정희 칼에 맞선 함석헌의 붓
함석헌에게 있어 간디는 그렇게 ‘기대어온 언덕’이었음에도 함석헌은 그 약속의 땅 인도를 목전에 두고 또 하나의 약속의 땅을 찾아 되돌어와야 했다. 미국의 초청으로 고국을 떠날 때 함석헌은 약 3년여의 ‘나그네살이’(해외여행)를 계획하고 출국했었지만 그
문대골 목사   2014-07-03
[기획연재] 함석헌 평생의 화두(話頭)- “민중이란 무엇이냐?”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는 이미 누누이 언급해온 것처럼 실로 엄청난 파고를 일으켰다. 한순간만이 아니었다. 1961년 7월호 사상계에 그 글이 발표된 후 그가 그 육을 벗고 유명을 달리하는 1989년 2월 4일까지 함석헌이 일으킨 파고는
문대골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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