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시험산 위에 서서…

 출애굽 히브리가 가나안 입성에 성공한 첫번째 도시가 여리고이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백성들은 지도자의 뜻을 받들어 여리고 성을 칼 한 번 쓰지 않고 공략하였다.
 여리고, 요단 건너 요르단 지경인 느보산에서 바라볼 수 있었는데 여리고에서 느보산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는다. 여리고 하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오고 가실 때 잠시 쉬시다 가기도 한 곳이다.
 금번 여행중 거의 대부분 기간동안 머물던 이스르엘 길목인 벳샨에서 예루살렘을 오고 갈 때면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여리고 입구임을 확인하면서도 쉽게 들어갈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길을 열었다. 여리고 길목에는 도적떼가 많았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여미터 지점이고 여리고는 해저(해발 마이너스) 250여 미터이다. 차를 타고 달리면 예루살렘 외곽에 들어서면서부터 차는 시동을 꺼도 달릴만큼 내리막길이었다.
 여리고 입구, 이스라엘 군 검문소(Cheak point)가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일행은 여리고 방문을 요구했다. 한 사람은 기자요, 또 한 사람은 역사학 교수라고 밝혔다. 신분증을 확인하다가 상급자를 찾아가는 등 두어번 확인하더니 한 쪽에서 잠시 기다리게 한다. 방문차량들이 많다. 주로 건설차량, 보급품 차량 등 팔레스타인들의 입출입 절차 확인이었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자, 차를 앞으로 끌고가서 대형 챠랑들 사이에 섰더니 당장 원위치로 가라고 명령이다. 잠시 지체했더니 그들은 기관단총을 매만진다. 이 총기가 무섭지 않으냐는 시위 같았다. 우리는 차를 뒤로 물렸다. 그 사이에도 길 앞 옆으로 오고 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행색을 보면서 손을 흔들며 `너희들 친구가 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간신히 여리고 성내로 진입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북동쪽 30km 사해 북쪽 10km 지점에 있다. 여리고 입구에서는 사해의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대개 아는 바대로 여리고는 기원전 7천여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으며, 특히 엘리사의 샘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은 여리고 온 들판을 적셔주어 푸르른 초원을 이루며 이스라엘 국민이 먹고도 남을 과일과 채소의 산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금도 엘리사의 샘에 가보면 푸르른 물이 지하에서 펑펑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여리고를 찾아가는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곳곳마다에서 이스라엘 군의 검문을 수십차례 받다보면 짜증도 나고 이렇게 해야만 하는 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그래 저렇게 해서라도 적대행위자들로 부터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는 그들의 마음에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필자는 10여년 전 미국 뉴욕의 유엔 건물 회의장에 들어가려다가 검문자가 허리띠를 풀어달라고 해서 이를 거부하다가 퇴장을 당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이스라엘 검문에는 많이 익숙해 있다.
 여리고 산지 중 예수께서 시험 당하신 산으로 전해진 이른바 시험산 중턱에 올라 전체 지형을 살폈다. 예수님 시대 이전의 여리고는 현재의 도심보다 북서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언덕 위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서에 나오는 삭개오나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를 만나고자 했던 위치는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듯 하다. 큰 도로변에는 지금도 삭개오가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큰 나무가 있고,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구원 받았던 그 장소는 대강의 위치를 확인 할 뿐이다.
 여리고 방문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삭개오를 만나고 싶고,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만나고 싶었다. 그들 두 인물은 매우 순수하고 또 순진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를 꼭 만나고 싶다는 그 간절함이나 한량없는 정성을 오늘의 혼탁한 사회속의 기독교 사람들이 배우고 본받아야 할 신앙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메시아의 족보에 오른 떨떠름한 네 여인 중 `기생'신분의 라합이 지녔던 당찬 신앙도 후대에 귀감이 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없는 내용이다.
 산 언덕 저 쪽의 유대교 회당이 있는곳, 베두인들이 양떼를 모는 곳으로 갔다. 하스모니안 시대의 궁궐터, 헤롯대왕의 별궁 터를 만난다. 귀중한 역사의 터인데도 베두인이 모는 양 떼들이 똥, 오줌 싸면서 노니는 것을 보면서 팔레스타인도 유적지 관리에 있어서는 협조해야 한다고 아무나 붙잡고 한마디 해 주었다.
 일찍이 베냐민 지파(수 18:11∼12)의 땅이었던 여리고는 남왕조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한 뒤(BC 586년)에는 도시 기능이 저하된 곳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정신이 깊이 간직되어 있는 여리고가 자유로운 지역이 되었으면 하고, 여리고 지역을 차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평화롭게 살아 주었으면 한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