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단기 선교 사역을 기획한다는 말에 주위의 몇 분들은 기독교가 역사와 문화의 틀이 되어있는 기독교 나라에 무슨 선교냐고 회의를 나타냈었다. 나 자신도 박신호 선교사(프랑스 미술선교사, 고신교단 파송)의 간절한 부름에 응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아 대여섯 명의 기독미술인이 함께 가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 예수의 마을’(마르세이유 엉 보베지 소재, 대표 최현숙 권사)의 벽화 작업을 하고, 파리에서의 박신호 선교사 사역을 돕고 오자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부름의 편지’에 대해 놀랍게도 기독미술인 30명의 헌신이 이어졌다. 미술인들이니까 불란서에 대한 동경 때문이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을 눈물로 회개한 것은 그들과 함께한 선교 여행 도착 예배 때부터였다. 새벽 기도회에 고백되어지는 그들의 뜨거운 기도와 찬송은 나날이 더욱 심오해졌다. 서로 감정에 들뜬 고백은 할 필요도 할 여유도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 가운데 충만하신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있었다. ‘예수의 마을’은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아름답고 한적한 마을에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불가능한 불란서 유학생들이 집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겨우 얻을 수 있는 숙소는 2~300년 된, 냉난방이나 목욕시설이 없는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지붕 밑 좁은 방이다. 성적이 안 나오면 퇴학을 해야 하는 불란서 대학교육제도로 인한 스트레스와 춥고 더운 지붕 밑 방의 구속으로 유학생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들에게 복음 안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가 되어주는 곳이 바로 예수의 마을이다. 최현숙 선교사의 눈물의 기도로 준비된 7천여 평의 땅에 이제 겨우 바람이나 막을 정도의 백여 년 된 헌 공장을 수리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닷새 동안 머물며 60×60㎝의 캔버스를 아크릴로 채웠다. 처음 계획은 벽화였으나 개개의 작품이 너무 충실하고 좋아서 예배당 옆의 50평 정도의 빈 공간에 ‘Jesus village Gallery’를 꾸미기로 했다. Gallery 현판식과 헌납예배를 드릴 때, 30명의 화가들은 그들의 소명을 확인하며 감격했다. 배타적이고 조용한 보베지 마을에 낯선 동양인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주민들과 시장님, 그리고 그곳의 영적 지도자인 사백년 된 성당의 주임 신부님을 초대하여 개최한 보베지 시청 문화회관에서의 ‘생명의 빛’ 전시회 베르사쥬(오픈식) 에서는 잡채, 불고기, 김밥, 한과 등을 준비하고, 문인화가 이성순 목사와 김혜린 권사가 직접 한지 위에 제작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다. 시장 부부는 두 세 시간을 머물며 문인화를 선물 받았고, 신부님은 아름다운 노래로 응답하고 포도나무 그림을 받아갔다. 오직 평화와 화해, 그리고 사랑만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1572년 카드린스 드 메디시스(왕비)라는 독살스러운 한 여인이 휘두른 칼날에 위그노(불란서 개신교도) 지도자들 2천여 명이 한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던, 강같이 흐른 순교의 피에도 불구하고 바람 앞에 촛불같이 연약해진 복음의 능력이 불란서 땅에서 다시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는 보베시지를 떠나 파리사역을 위해 길을 떠났다. 수채화가, 진흥아트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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