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살아있느냐?

그들의 상호 용서와 교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유대인과 예수의 거리가 천리 먼길이니
공생의 터를 마련하지 못할 수 밖에.

 기도 44년이라는 용어를 필자가 사용했다. 이는 주의 부름에 화답하여 복음 전도자의 길에 나섰던 출발점의 숫자이며, 바로 그 때 나는 사마리아의 비극을 성경에서 그리고 기독교 역사책에서 배웠다.
 특히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 대화하시는 예수의 열정과 그 여인의 만만치 않은 반격에 흥미를 가진 바 있었으며 `네 남편을 데려오라' 하시는 예수의 요구에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순순히 고백하는 진실에서 앞으로의 무한 가능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대화 중일 때 제자들이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왔다. 그들은 둘의 대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요 4장 참조).
 대화는 더욱 깊어지고 예수는 여인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임을 일러준다. 놀라운 일이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이 여인이 말하는 `남편' 또 예수께서 찾는 여인이 말하는 `남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요즈음 성경학자들의 견해는 육신의 남편을 말하는 것보다 여인의 종교를 묻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조심스런 주장이 있다.
 해석이 좀더 품위 있어 보인다. 예수와 수가성 여인의 대화는 그 수준이 상당히 높다. 야곱 우물의 역사, 선지자, 사마리아 예배냐 예루살렘이냐, 당신은 선지자 같다. 메시아를 기다린다 등의 여인이 탐구하는 진지한 자세는 그녀를 남편이나 갈아치우며 육탐에 젖어서 사는 탕녀로 보기는 쉽지 않다는 것. 오히려 `종교'의 상징어휘로서 `남편'이라 함이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시온의 여인아, 음녀야, 할 때의 `여성'을 주님은 `남성'으로 보아 그 상대가 된다. 그래서 시온의 여인아 할 때 그 여인은 이스라엘 남녀 모두를 말하는 것임, 음녀 또한 여인의 표기가 아니라 신앙의 정조가 없는 이스라엘을 말할 때 사용하던 어휘였음을 전제한다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을 요구하신 예수는 너의 신앙이 어디에 있느냐, 사마리아이냐 사마리아에 끼어든 이방의 잡신을 섬기느냐는 예수의 질문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여인과 함께 서로의 진실을 나누던 예수는 물동이를 내 던지고 앞서 가는 여인을 따라 사마리아 촌(지역)으로 가셨다. 넉넉한 시간 그들과 교제하고 복음을 전하셨다. 요한복음 4장의 분위기로는 사마리아가 예수를 영접했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필자의 궁금증과 연민, 그리고 분노가 있다. 예수를 영접한 사마리아가 왜 전향적인 변화를 하지 못했을까? 왜 저들은 유대인을 용서하지 못했고, 또 용서받지 못했을까? 하기는 그들의 상호 용서와 교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유대인과 예수의 거리가 천리 먼길이니 공생의 터를 마련하지 못할 수 밖에.
 사마리아를 향한 나의 연민과 기도는 이제 겨우 500여 명에서 700여 명내외의 `사마리아 인'들을 어떻게 보존하며, 저들의 마음을 넓힐까? 백방으로 생각을 해 봤다, 그래서 나는 우선 사마리아인들 몇 사람의 주소를 적어 왔고, 오는 5월 3일(월)이 사마리아 유월절 양 잡는 날인데 그날 잠시 다녀오든지, 아니면 어떤 통로를 찾아보고 싶다. 내게 따뜻한 인정을 남겨준 Cohara Cohen과의 사귐을 더욱 돈독히 하여 그 친구의 도움이면 나의 사마리아를 향한 연정(열정)을 받아주고, 폐쇄의 늪에서 벗어나 드넓은 평원(넓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사마리아의 해방이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사마리아는 이미 유대인들의 저주 속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또한 세켐지역 전체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세력에게 묻혀 있기 때문에 세상 생각으로는 절벽이고 절망이다.
 그러나 촌장인 이브라힌 코헨의 말에 나는 기대를 한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슬람 이 둘 중 어느 곳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사마리아 종교, 사마리아식 이스라엘 신앙에 대해서 더 공부하려고 `사마리아 성경'을 한 권 사왔다. 변형 히브리어인데 그들은 모세5경만 인정하기에 더 순수(?)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표현으로 하면 구속사의 계시언어인 메시아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메시아를 가르쳐 주고, 또 유대인들에게 받지 못한 사랑(하나님의 은혜)을 열심히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 대제사장을 만나볼 수도 있었으나 그의 집 앞에까지 가서도 성사되지 못했다. 나는 곧 가까이 사마리아에 다시 가겠다. 가서 그들과 함께 며칠 묵으면서 그들의 가슴 속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낼 것이다.
 이미 그들 사마리아인들은 의학이 손쓰기 어려운 질고를 가졌을 수 있으나 아직 그들이 살아 있다. 어른도 있고 착한 아이들도 있다.
 수가성 우물가를 찾았다. 야곱의 우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는 그 우물가에는 전보다 더 웅장한 예배당을 지었다. 수가성 우물은 반지하 층에 위치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의 지형 변화때문이다. 우물 깊이 34m. 물을 떠서 마셔보니 매우 청량하다. 사진 한장 찍으려고 했으나 `NO'였다. 다만 우리를 맞이해준 수녀가 기념 사진촬영에 동의해 주어 아쉽게 만족했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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