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립은 교황권에 도전한다는 것을 일찍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어느 누구도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며 또 그로 말미암아 자신이 겪어야 할 불행을 감안할 때 이는 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교황권과 대결하는 꼴이 되었다. 하는 수 없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의 신앙의 중심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의도된 순교를 찬미 한다던가 또 그렇게 함으로 현실을 피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위클립은 일이 크게 번져 영국왕의 범위를 벗어나자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으로 갔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도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 그 시간이 두렵지 않다면 사실 양심을 속이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도 겟세마네 기도의 시간에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이 내게서 피해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지 않던가.  위클립은 마음을 단단히 정돈하였다. 어떤 경우가 오더라도 비겁해서는 안 된다. 불더미 위에서 타 죽더라도 당당하게 죽자. 어떤 타협도 불가함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나님은 위클립을 사랑하셨다. 그의 입에 진리의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온 백성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을 더하여 주셨다. 그는 마치 세례자 요한과 같이 특별한 사명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진리의 숨은 부분을 발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증거하려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진리의 체계는 그 후 개혁자들이 등장했으나 그들이 미치지 못할 만큼의 경지에 있었으며 통일성과 완전성이 있었다.  즉, 위클립은 곧 양심과 지성을 해방시켜 주었고, 질속과 속박 속에서 신음하는 여러 나라들에게 진리의 해방을 선물하였다. 생명수처럼 흘러내리는 말씀의 진리를 목마른 구라파 신자들 가슴에 흘러 넘치게 하였다.  위클립은 그의 신앙자세가 바로 순수함 그것이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엄격한 교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모든 것들로부터 되돌아 말씀 앞에 거짓 없이 서기를 원하였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권위는 교황의 그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당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 시대는 더 이상의 목마름이 필요 없을 만큼 신앙은 철학적 보증까지 되어 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이 교황의 이름으로 지상세계의 세상을 떠나는 저 세상에 이르기까지 교황의 권위 아래서 다 해결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저들 구라파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에 대한 갈망이나 공부가 필요 없고 마치 구라파가 천국이나 된 것처럼 그렇게 믿고 사는 때였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의 날에 인간에게 부어주신 '생령'이 바로 영혼의 진수다. 인간은 영혼의 요구가 하나님의 진리와 만나는 그 동작이 생명의 모습이며 그 때 비로소 생명이 무엇이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신자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위클립의 신앙과 성경, 그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법을 배웠다. 그가 만약 성경을 통하여 십자가를 앞둔 예수의 고뇌의 다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의 개혁은 실패했을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그가 무슨 수로 거대한 로마 교황권과 싸워서 이기겠는가. 그는 보았다. 예수가 고뇌의 극점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그는 성경을 들고 그 백성들에게 나아갔다.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어려운 일이 닥쳐온다 하여도 그리스도 예수의 바라는 바의 삶을 이루어가기 위하여 성령을 붙들고 또 말씀의 순간들마다 나타내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았다. 위클립은 교황의 요구 앞에 지극한 겸손과 온유로 예의를 갖추면서도 성경은 끝까지 지켰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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