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그리스 성지 탐사 … 기독교 1차 심판 터키에서 보았다 ⑩

바울은 빌립보에서 시민권자의 힘을 빌기까지하여 로마관원들을 한 번 떨게 하였다. `로마 사람을 죄도 정죄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행 16:37).
로마 관원들의 버릇을 고치려고 작심하였다. 간밤에 감옥이 무너지는 기이한 일을 본 것 만으로도 두려움에 떨던 저들이 `로마 시민'이라는 말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상급자들이 나와서 잘못되었다고 빌었다.
바울은 또 가야할 길을 위하여 저들을 뒤로하고 떠났다. 물론 루디아와 빌립보 교회의 감격어린 전송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일정이 데살로니가에서 지녁 12시에 출발하는 아테네 행 심야열차를 탈 계획인지라 오후에는 베뢰와 데살로니가 현지를 둘러볼 계획이다.
지난 주에 소개한대로 에게해(海), 저 바다가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작년에는 일행들이 사양하는지라 나 혼자서 수영을 즐겼던 일이 있었다. 여행자의 컨디션이기에 이토록 유쾌할까. 드넓은 바다, 비린내도 느껴지지 않은 호반처럼 잔잔하다. 페루와 볼리비아 경계지점에 치치카카 호수가 있다. 재작년에 그 호수에서 배를 타보았다. 물론 치치카카의 접근지점은 원주민들의 수상마을 둘러보는 것이 주가 되지만 그 호수는 참으로 크다. 비행기로 상공을 둘러볼 때의 느낌은 대한민국 남쪽의 절반쯤 되겠다 했는데 실제는 경상북도 정도라고 하더라. 해발 3천2백미터 산간지대에 경상북도 만큼한 치치카카의 시각적 만족도는 그저 까마득이었다. 에게해는 지중해와 이베리아 또는 북해 발칸해협으로 연결되는 그리스 인접 바다가 되니 큰 바다의 한복판이다. 비록 모래사장, 그리고 몸조심 할 때까지만 수영을 하면서 한나절 놀고 싶었으나 우리는 베뢰아를 먼저 갔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야삼경이나 되었을 시간에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쫓겨간 곳이다. 그러니 데살로니가를 먼저 가면 베뢰아 다녀오기가 일정상 벅차다. 데살로니가에서 70km가 넉넉한 베뢰아를 살펴보고 다시 데살로니가로 가서 밤열차를 타야 하기에 그렇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복음을 가르쳤다. 연 3주일 동안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증거하였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부활하신 예수와 다메섹에서 만난 사건만이 예수와의 유일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활신앙에 관한한 바울의 신학과 신앙의 모든 것이었다. 그의 신앙은 부활에서 시작하여 부활예수와 나의 일체로 완성된다. 바울은 매우 투철한 이성주의 철학에 기초한 사람인데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면서 그의 신학을 새롭게 적립하였다. 그래서 그는 부활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기독교인이라 하였다.
그렇다. 오늘의 기독교가 기독교의 참면목이 무엇인지 모르고, 먹고 살고, 부자 되고 건강하면 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보다 먼저가 `부활예수'임을 망각하여 아주 조잡하고 품위가 없는 꼴이 되었다. 저게 신자인지 신자 껍데기만 둘러쓴 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 다수의 신자들이지 않은가.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하였다. 또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운다 하였던 바울이 진짜 바울이며, 바울처럼 사는 자들이 오직 크리스찬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나 신자되는 것 아니다. 도자기 굽는 곳에 가보라. 진품을 찾는 도공들에게 가보라. 100개, 200개, 300개 더 나아가 1,000개를 내던져버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 얻는다. 다시 말하면 10개 구워서 하나 얻으면 신(神)이고, 100개 구워서 하나 얻으면 천재이고, 1,000개 구워 하나 얻으면 보통일 것이다. 신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100명, 1,000명 중에 제대로 된 신자가 나오는 것을 알고 목회도 해야 한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모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경건한 헬라인의 큰무리가 몰려오고 귀부인들도 바울 주변에 찾아왔다. 그런데 불청객, 언제나 바울 주변에 찾아와서 눈을 번쩍이면서 노리는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에서도 나타났다. 깡패들을 동원했다.
야손의 집으로 뛰어 들었다. 바울 일행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및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소리 지르며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로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행 17:5~).
분위기가 험악하다. 십자가에 예수 매달아 죽일 때도 저들 유대인들은 가이사가 자기들의 임금이라 하더니 데살로니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들 악행자들이 하는 말 바울 일행을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라 하였다.
요즘 예수 믿는 신자들 가운데 천하를 어지럽힌다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으면 한다. 천만명이 산다는 대한민국에 신자가 없다. 달라이라마는 혼자서 떠돌면서 티벳불교를 수십년 동안 전하고 있지 않던가. 한국같은 나라는 중국 무서워서 많은 사람이 만나고 싶어하는 달라이라마에게 입국비자를 못주고 있다.
그저 달라이라마 만큼한 기독교 지도자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민중을 선동하고, 그들 가슴에 하나님의 불을 지르는 바울 같은 인물이 아니면 예수 제대로 배운 자, 천하가 들썩거리지는 않아도 좋으니 인물다운 인물들이 몇명 나왔으면 좋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하시지 않던가. 예수의 길을 가는 목사나 지도자가 처자식 뒷바라지 하느라고 돈, 돈, 돈…하거나 어리석은 학위 탐하고, 목숨이 두렵다 하여, 또는 교회에서 쫓겨날까봐서(장로들 무서워서)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목사가 얼마나 많은가. 바른소리 하고, 신자에게 예수 제대로 가르치다가 대책없이 쫓겨난 목사들이 100여명 쯤 노숙자 생활을 하는 정도이면 대한민국에도 하나님의 바람(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터인데….
바울은 깊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을 쳐야 했다. 긴급작전이다. 밤중에 베뢰아로 갔다. 아마 로마군이 긴급 이동할 때 타는 네마리 또는 여섯마리가 끄는 수레를 탔을 것 같다.
로마의 군용도로를 이용했었을 것이다. 80km가 넉넉한 밤길을 달렸으니 쉽지 않은 이동거리이다. 바울이 나귀나 말을 탔으면 가능하겠는가. 다수의 학자들이 바울은 그 밤에 군용마차를 탔을 것이라고 한다.
`적지 않은 귀부인'(행 17:4)들이 바울이 베뢰아로 야반도주 하는 길을 도왔을 것이다.
중과부적이면 전략상 야밤에 도망도 친다. 당시 새로운 종교의 등장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바울은 베뢰아에서 예수부활을 가르쳤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달랐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행 17:11~)라고 기록하는 사도행전 기자의 마음을 또 우울하게 하는 것은 17장 13절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행방을 알아냈다. 베뢰아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바울을 또 괴롭힐 계획을 세우고 몰려왔다. 쫓기면서 싸우는 바울을 생각하면 멋진 투쟁(?)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쫓겨다니는 바울의 수고를 멋지다라고 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어휘 선택이다. 투쟁이라는 용어 또한 적절치 않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가 좀 멋있는 교회운영을 해주고, 때로는 타인, 타종교, 정부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견제하며 각을 세우는 위엄을 보이는 날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사용하는 어휘, 곧 멋진 투쟁이다.
바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 `2006들소리 성지탐사'팀은 베뢰아에 남아있는 바울 기념시설에서 사도행전이 소개하는 바울을 떠올리며 기도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바울이 무한히 사랑했던 빌립보에 이어 또 하나의 교회가 자리한 데살로니가. 그 도시에 갔다. 예수 재림에 민감했던 교회, 알렉산더를 출세시킨 마케도니아의 수도 데살로니가로.
우리는 해가 진 후로 역으로 갔다. 대합실과 주변의 공간들을 이용. 삼삼오오, 모여서 그동안 숨가쁘게 살피고 온 지역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번 여행은 대충 알게 되고 거듭하다보면 성지의 윤곽이 드러난다.
아이고, 평생에 한번도 감지덕지구먼. 그렇게 생각하면 하는 수 없지만 최소한 이스라엘과 터키 또 그리스쯤은 목회자일 경우 다섯번은 오갈 수 있어야 더 깊은 은혜를 받는다.
저녁 11시 30분 조금 넘어서 기차에 올랐다. 4인실 침대칸. 그러나 모두들 답답해 한다. 그러나 기차가 달리면 시원한 바람, 하늘의 별, 그리고 우리 처럼 5시간 정도에 데살로니가에서 아덴으로 가지 못하고 5일은 걸렸을 바울 사도의 그 발걸음도 생각하며 우리는 아테네행 기차에서 휴식과 묵상의 시간을 얻는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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