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아시아 역사 찾기 ②

실크로드라고 해야 알아듣는 이들이 많으나 이는 쉽게 말하여 중국의 비단이 주종목이 되어 로마로 팔려가던 그 길이다. 중국의 서안(장안), 난주, 돈황, 호탄, 카슈키르 그리고 파미르 고원을 넘거나 키르키스탄 길을 따라서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카스피해를 우회하여 페르시아 변경을 지나서 로마(콘스탄티노플)로 가고, 또 오던 길이었다. 참으로 긴 문명의 통로였다.
더 쉽게 말하면 중국의 공자, 노자, 붓다를 담아서 로마로 보내고 로마의 예수를 중국으로 가져가는 절차가 그들의 내면에 있었다.
생각하면 로마가 그레코 로망 문화라 하지만 솔직한 표현으로는 기독교였는데 그들은 기독교를 중국에 보급하는데 실패하였다.
좋은 기회가 많았었다. 바울과 같은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지도자를 계속 만들어 내지 못했고, 페르시아를 뛰어넘어 중앙아시아 사막과 초원을 돌파했으면 거기가 중원인데 천금같은 기회를 놓쳤다.
한무제가 서역, 또는 로마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하여 흉노세력을 제압하고 유럽에 손짓하였건만 무기력한 로마는 그 음성을 듣지 못했었다. 더구나 후한으로 건너가면서 중국은 사상적 공황기를 겪으면서 더더욱 유럽의 기운을 기다렸으나 로마는 화답하지 못했었다.
나는 아시아의 길을 반평생 골똘히 생각해 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의 현장이 복음인데 복음이 어찌하여 아시아에 이토록 메말라 있는가이다. 인도나 중국이 종교와 철학을 위하여 준비된 나라들인데 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환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제자들인 우리들 기독교의 잘못이라고 본다.
기독교는 동^서 로마 분열기 이전에 신학적 상호고립에 빠졌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로마 교구는 니케아 신학에서 자기 동일성을 찾지 못했다. `기독론'의 일치를 가져오지 못했으니, 기독교는 성공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의 세계기독교를 보면 상처 투성이다. 그러나 필자는 모든 역사를 가슴에 품기로 했다. 그리고 우선 에베소 세계회의(AD 431)의 파행이 부른 네스토리우스 파가 아시아 진출을 했는데 그들이 대략 1천년 가까이 중앙아시아, 중국과 몽골 등지에서 어떻게 활동했는가의 `역사찾기'에 나섰다.
1991년부터였다. 지난 15년 동안 고달픈 여행도 참으로 많이 했다. 이제 겨우 절반 조금 더 현장을 탐사했으니 아직도 험한 발길이 남아 있다. 몽골리아 주변, 그리고 중앙 아시아의 음지인 타지크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이란과 이라크, 아르메니아, 나제르바르잔,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2007년에 추가 방문을 할 것이다.
지난 달 9일 돈황과 서안을 둘러보고, 13일 밤 서안에서 우름치 행 비행기에 올랐다. 단체와 함께 5일 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다. 그들과 헤어져 우르무치에 내려 피터 황의 안내를 받아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참으로 순수한 인상을 지닌 황 박사와 1시간 반 가까이 대화를 했다. 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2시 30분.
잠결에 침대에서 떨어졌다. 가슴팍을 트윈 침대 한 가운데 있는 탁자, 전화통과 메모지를 놓는 자리에 가슴을 찧고 말았다. 아이쿠! 나는 가슴팍을 쥐고 쩔쩔 맸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자리끼로 준비해 둔 물그릇이 엎어져 전화기 위에 물이 엎질러지니까 합선이 되었다. 빽빽, 기기가 괴상한 소리를 몇분동안 지르더니 전화기는 먹통이 되었다.
열흘이나 더 남은 여행 일정인데 피곤하구나. 아침에 일어나 가슴팍을 살펴보니 퍼렇게 멍이 들었다. 체력관리를 어떻게 할까? 지난 9월에도 두주일이 넘도록 중앙아시아 카자흐, 키르키스, 우즈벡을 뛰어다녔는데, 금번의 나머지 여행은 체력싸움까지 해야 하겠구나.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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