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 타락한 교회와 사회 갱신 위해 경건주의 회귀 강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신학이나 신앙보다 신뢰의 문제를 더 시급한 것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사회가 교회를 보는 시각에 대해 신뢰를 받는다는 자신이 없는 듯하다.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의 종교적인 교세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외형적 건물과 조직과 활동의 범위에서 한국 교회는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물량적인 교세가 신뢰를 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다.
신뢰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의 문제다. 종교는 한편으로는 제도와 예전,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체험과 신앙 인격의 성숙이다. 종교의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제도와 예전은 인격과 삶을 성숙하게 하는 데 그 쓰임이 있다. 인격과 삶의 성숙은 제도와 예전을 더 훌륭한 것으로 만든다. 이런 순기능적인 상호관계가 이어지는 것이 종교의 성숙이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가 역기능적으로 작동할 때가 있다. 제도와 예전은 세련돼 가는 것 같은데 신앙 인격과 삶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돕는 제도와 예전은 종교 권력과 연결되어 세속적인 정치 행위가 되고 만다. 신앙 인격과 현실의 삶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은 정치 도구가 되어버린 제도와 예전에 염증을 느낀다. 종교가 타락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 교회는 지금 그런 현상을 겪고 있다.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현상은 선교 초기나 성장기 현상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서 교회가 세워진 뒤 교세가 충분히 성장한 뒤에 나타나는 성장기 이후의 현상이다. 이천 년 교회 역사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때가 많았다. 그 가운데 17세기가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다. 특히 17세기 유럽 교회의 현상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상과 여러 가지 점에서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요한 아른트(1555∼1621) 목사는 당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변화가 없는 신앙을 비판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적다고 지적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그 능력은 부인하는 것이 당시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심 문제라고 보았다. 정교한 신학적 이론이나 교리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삶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무신론이 발생한다고 했다.
스페너는 참된 믿음이 교리와 삶의 실천을 포괄한다고 했다. 정통-신앙(ortho-doxie)이 중요하지만 정통-실천(ortho-praxis)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경건의 이론보다 경건의 실천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른트와 스페너의 생각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갱신과 사회의 갱신에 헌신했다. 참된 신앙은 교회와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참된 개혁과 변화는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과 영혼이 변하고 거기에서 솟구쳐 오르는 동력으로 된다고 했다.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크고 광범위하게 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길게 영향을 끼친 개혁 운동이 바로 이 흐름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 미완성인 종교개혁을 완성하려고 했다고 해서 이 운동을 ‘제2의 종교개혁’으로도 부른다. 경건주의 운동이다.
경건주의는 이천 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역동적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그 시대에 변증한 운동이다. 경건주의의 역사적 의의 가운데 가장 종요한 점은 바로 여기에 연관돼 있다. 바른 교리 또는 정통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토대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교리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강조점을 바른 교리 또는 정통 교리에서 정통 실천 또는 경건의 실천으로 옮겼다. 이렇게 하여 본격적인 의미에서 근대적인 기독교 신앙 유형이 정착되었다.
한국 교회의 기본 틀인 경건주의적 신앙 유형의 자리를 한국 신학 사상이나 신앙 유형 속에 제대로 마련하기 위해서 경건주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경건주의가 타락한 교회와 사회를 갱신하기 위하여 칭의만이 아니라 칭의에 근거한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외쳤던 것에서 벽에 부딪친 현재의 한국 교회와 신학의 출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한국 교회와 신학이 경건주의를 연구해야 하는 까닭이 될 것이다.
경건주의 운동은 한마디로 갱신과 개혁운동이다. 이 핵심을 중심으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2. 평신도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 3.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더불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4. 복음의 동력은 땅 끝까지 미쳐야 하며 동시에 사회의 전 영역에서 작동돼야 한다.
첫 번째 제안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이 제안에 다른 모든 제안이 연결돼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갱신의 동력이 나온다. 목회자는 설교와 소그룹 말씀 사역으로써 이 일을 이끌어간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보면 경건주의 운동에서 최초로 제도권 교회 안에 자발적인 소그룹 운동이 정착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 사역에서 이미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소그룹 방식의 성경 공부를 통한 제자 훈련’은 그 교회사적 뿌리가 경건주의에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 성경을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가? 성경이 그 내증에서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성경이 가르치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목회자 자신의 삶과 교계의 활동에 진지하게 적용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치열하게 읽고 묵상해야 한다. 더 강한 표현으로 하면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다보면 사람은 그 앞에서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중립적으로 놔두지 않는다. 가부간에 결단하도록 요청한다. 그 요청에서 슬그머니 피해갈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표현처럼 세상에 던져지는 불이다.
* 이 내용은 지난 16일 열린 한국목회자협의회 정책토론회에서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가 `경건주의 신학과 목회자의 정체성'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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