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안수에 따르는 은혜

  내 모교회요 고향교회이기 때문에 정감이 있고 허물이 없는 목회생활이었다. 그런 면에서 목회사역과 교회활동에서 직원들과 어울리는 면이 훨씬 더 부드러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도사로 부임했지만 목사님 같이 예우했고 목회에 대한 신뢰심도 전혀 지장 받지 않았던 것을 지금도 고맙게 여기고 있다. 또한 교회 안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집사님으로 있었지만 나를 대할 때에 깍듯이 “전도사님”, “전도사님” 하면서 경어를 써 줘서 그분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은산면소재지 동네와 맞닿아 있는 신대리가 내가 태어난 동네였다. 그 신대리에는 우리 교회 신자가 많이 살고 있어서, 신대리로 심방을 가서 신자가 아닌 아버지의 친구들을 길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병돈이 왔나” 이렇게 인사하거나, “수고하네”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 사람들은 교회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인사였지만 나와 함께 심방하는 집사님들에게 교회 체면을 깎는 것 같아서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사는 오래가지 않았고 분위기가 쉽게 바뀌어졌다. 내가 은산고등공민학교 교장직을 갖고 있고, 또 은산교회 담임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6개월이 못 되어 믿지 않는 아버지의 친구들까지 “이 전도사님 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존대를 받는 것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교회 체면이 서서, 마음속의 한 가지 시험을 푸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도사나 목사는 성직이라고 하면서 내게 말을 놓았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연장자가 되시는 분들이 말을 놓거나 반말을 하지 말고 존대어를 해 주라고 권면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나는 고향 어른들에게 고마운 생각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고 깍듯이 예우하여 내 고향 목회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예수님도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고향교회는 교역자의 처신이나 대인관계가 자칫 잘못하면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은산교회 7년 동안의 목회는 더없이 내게 축복된 기간이었다.
부임하여 만 30세가 되어서 교단 헌법에 따라 목사 안수를 받는 해가 되었다. 목사고시를 위해 준비를 많이 했고 또 목사안수에 대한 기대도 컸었다. 그것은 대대로 목사가 목회 하던 교회에 전도사가 담임 교역자로 일하고 있다는 심리적인 부담도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목사안수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있었지만, 모든 성도들과 직원들이 나보다 더 목사안수를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목사안수에 필요한 모든 절차와 서식과 지방회까지 통과되어 안수를 받기 위해 총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때는 총회가 4월 총회였고 내가 안수 받으려고 했던 총회는 목포 북교동 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고 코트까지 맞추어 주면서 총회에 참석하게 할 정도로 교회분위기가 목사안수로 들떠 있었다.
그 해 따라 고시위원들이 목사 자격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여서 문제가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만 30세가 되는 해면 다 묻지 않고 목사안수를 해 주었는데, 그 해부터는 만 30세가 되는 생년월일이 총회 전에 지난 경우에만 만 30세로 인정한다는 결의가 가결되었다. 내 경우는 만 30세에 3개월이 부족했고 결국 목사안수는 취소되었다.
교회에서 코트 선물까지 받았는데, 안수를 받지 못한 채 교회로 돌아오는 내 모습은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30세에 3개월이 모자라서 안수를 못 받게 되었지만 신자들 앞에서 설명하는 데는 궁색한 변명같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토록 목사안수를 고대했고, 큰 잔치라도 벌리고 싶어 했던 신자들이었다. 나는 고시에서 낙방한 것은 아니지만 꼭 다른 결격사유가 있어서 목사안수를 못 받은 것 같이 느껴질 만큼 신자들을 보기가 미안했다.
그러나 이렇게 목사안수가 1년 연기되어서 오히려 내게는 더없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우선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안수를 그렇게 조급하게 받기를 원했던 내 생각에 대해서도 많은 회개를 하게 되었다. 목사는 안수예식을 거치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에서 담임목사에 대한 위임식을 거쳐 목사의 권한을 향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목사의 자격이 영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오히려 목사안수를 받은 것보다 1년 동안 목사안수를 바라보며 내 자신이 목회에 대해서나 영성에 대해서, 그리고 사명감에 대해서 많은 점검을 할 수 있어 아주 은혜로운 기간이었다.
신학교 졸업 후 6년만인 1965년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것은 교회의 경사 중의 경사였다. 목사가 된 당사자보다 성도들이 더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교회와 담임목사의 직임이 신자들에게는 의외로 큰 관심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교회 담임 교역자가 전도사인 것과 목사인 것은 성도들에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고, 목회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욕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전도사와 목사를 차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갖춘다는 점에서 그렇게 기뻐했던 것이다. 그래서 목사안수를 받고 돌아오자 교회에서는 담임목사 취임식이 아닌 위임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므로, 나는 은산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은평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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