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는 7년 동안의 목회였지만 몇 십 년 목회한 것만큼이나 바쁘게 살았고 목회생활에 푹 빠졌을 정도로 은혜롭고 행복한 목회였다. 직원이나 교회 안에 갈등이 전혀 없었고 내 능력이나 역량껏 목회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목회였다. 목회자도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었고, 교회도 모든 성도들이 담임 교역자를 어떻게 도울까만 생각했을 정도로 좋은 교회였다. 은산교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을 담당해준 교회여서 더 잊을 수 없다.
은산교회를 떠나던 날을 회고해 보면 은산교회 성도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목회자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수원으로 이사하던 날 이삿짐은 트럭에 실어 수원교회 집사와 함께 먼저 보내고, 우리 가족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려고 올라서자 버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150여 명의 성도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버스 입구까지 완전히 막고 대 여섯 명의 나이 많은 여집사들이 내 바지와 다리를 끌어안고 매달렸다. 그 바람에 버스 문을 닫을 수가 없어서 차장과 기사가 고생했던 일이 눈에 선하다.
그 뿐 아니라 50대 여집사 세 명이 버스 앞 도로에 누워서 버스가 움직일 수 없게 길을 막던 일들은 부족한 사람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물론 그렇게 여러 사람이 떼를 쓴다고 나를 끌어내릴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버스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성도들 마음속에 보내고 싶지 않은 목사에 대한 마지막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성도들과 신앙으로 얽힌 정을 새삼 뭉클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힘겹게 성도들을 떼어내고,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자리에 앉지 못하고 차창 밖을 내다보며 마음에서 우러난 고마운 표현으로 손을 흔들며 은산을 떠났다.
자리에 앉아 눈이 벌겋게 되도록 울며 눈물을 닦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한 교회에서 평생 목회하면 좋으련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벌써 몇 교회를 목회하다 헤어지는 이런 경험은 목회자가 겪어야 할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정든 교회, 정든 성도들과의 불가피한 이별이 목회자가 겪어야 하는 힘든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담임 교역자와 성도 간에 이루어지는 친분은 단순한 정으로 맺어지는 친교가 아니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사람과의 친교는 대화를 많이 해도 정이 들고, 많이 만나 교제해도 정이 들고, 어려운 짐을 서로 나누어 질 때 정이 든다.
그러나 성도간의 교제는 이러한 과정 위에 영적인 친교가 더해지기 때문에 교제의 깊이가 더 깊은 것 같다. 생명을 살리고 은혜를 받으며 삶과 인격을 변화시키고 새 사람이 되게 하는 일들이 세상 사람들이 나누는 정분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적인 교제나 성령체험이나 영적 치유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또 담임목사와 성도간의 교제는 헤아릴 수 없고 계산하기 힘든 성령의 역사로 하나 된 사귐이기 때문에 헤어질 때는 정말 힘든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은산을 떠나 그 날 오후에 수원교회에 도착하니 이삿짐은 이미 와 있었고, 성도들이 50여 명 가량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교회는 내분이 일어나 네 군데로 갈라져 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부임하였다. 그러기에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만류하면서 수원교회에 가지 말도록 권고했다.
 이는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또한 나를 돕는 마음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기도 중에 수원교회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영감이 앞섰기에 거절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상처받은 교회의 성도들을 치유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목회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에 수원교회에 대한 애정을 느낀 것이 수원교회를 선택한 조건이 되었다. 내려갈 대로 내려간 교회에 가서 목회 하는 것은 이제 오를 수 있는 길만 남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소망스러운 조건이 되었다. 또 일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즐기는 마음으로 수원교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식을 갖고 부임한 목회지여서 이사한 첫 날부터 성도들을 보자 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사랑으로 보살피는 마음이 앞서게 되었다. 큰 교회에 있다가 50여 명 밖에 모이지 않는 적은 교회에 왔다고 그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우쭐대는 마음이 내 마음에 전혀 없었다. `여기서 이들과 함께 또 한번 교회를 키워 봐야지’ 하는 마음이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사하는 날도 그 교회 출석교인 중 몇 명을 빼고는 다 나왔다는 것을 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수원교회 집사가 은산교회를 떠나던 날 150명 이상의 성도들이 교회 안팎에 장사진을 치고 전송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내 사기를 돋우어 주기 위해 내가 수원교회에 도착하던 날 구역장들을 통해 전 교인을 동원하였다는 것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수원교회 목회가 시작되었다.

/은평교회 담임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