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바알의 대결

 예수는 그의 가족들 앞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예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관리하기에도 힘에 버겁다.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막 3:20) 끼니를 찾아 먹지도 못하는 예수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소문은 예수가 미쳤다(막 3:21)는 내용이다.
 부모나 일가친족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리라.
 필자도 은혜의 초기에 집안 어른들이 `효근이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몇날 밤을 세우며 저 법석이겠어'라고 하시던 40여 년 전 아득한 날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집안 어른들이 나를 미쳤다고 했어도 나는 게의치 않았었다. 왜냐하면 나의 이성이나 영적 상태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었다. 나는 그때, 그리고 지금도 한때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고, 또 어떤 이들은 지금도 나를 미친놈이라고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예수께서도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지나치다 싶은 대목이 있어서 미쳤다는 소문에 휩싸였을 것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어떤 때는 잠 잘 시간도 없으셨던 예수의 생활을 눈여겨 보아 저 사람 미쳤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태의 글 10장 5절 이하를 읽으면 `예수의 제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집중적인 가르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는 더 정확하게는 `믿는 자' 또는 `신자'이다.
 성경이 요구하고, 하늘이 소원하는 바를 말해보자. `예수 가라사대…'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케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른 하늘의 천둥과 번개와 같다. 말씀만으로 두렵다.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신 분이 예수시고 또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주님이 하시고 있는 일이며, 문둥이를 깨끗케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예수께서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다.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나, 제자나 믿는 자들의 하는 일의 내용이 똑같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제자가 선생같고 종이 상전 같으면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마 10:24∼).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제자는 선생과 같아라, 종들은 상전과 같아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본문과 만나야 한다. 승부처가 바로 여기인 것이다.
 예수 제자는 또(예수의) 종들은, 믿음으로 예수가 내 생명이며 내 구주이심을 믿으면 예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 병든자여 고침 받으라! 죽은 자여 일어나라! 문둥이여 깨끗하라! 귀신들아 물렀거라! 이렇게 호령하는 것이다. 거침이 없어야 한다.
 이같은 권능이 주 예수의 사람들(제자들) 몫이지만 왜 이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본문에 의하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권능이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예수 이름으로 얼마간의 표적을 행하는 사람들 뒷조사를 해 보면 병자들로부터 돈을 챙기는 자들이 다수이다. 그러니 잠시 반짝하다가 권능의 은사가 사라진다. 사라진 뒤는 또 거짓으로 행동한다.
 또 있다. 무소유의 실천을 이루지 못해서 잠시 나타났던 권능이 곧 사라진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하셨으니 이 말씀을 지키는 오늘의 제자들이 있는가 살펴보라.
 또 있다. 박해를 각오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 10:17∼22)고 말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제자 곧 예수의 삶(인생)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예수와 동일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이 부분에서 오해가 생겨서 오늘의 기독교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는 아닐지라도 본문이 요구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신자라면 굳게 지켜가야 한다.
 돈 주머니 없이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않고 여행하는 제자들을 보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서 머물러 평안을 빌라. 그 평안을 받아들이거든 거기에 들며 거부하면 그 집이나 동네에서 즉시 나와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라, 하신 말씀에서 오는 느낌이 있다. 당당함이다. 자신감이다. 결코 비굴하지 않은 예수의 의연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이같은 자세여야 예수의 제자이다. 오늘의 우리는 예수 제자이기 위하여 두가지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영혼의 영원한 생명력이다. 세상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때에도 빌라도의 입을 통해서 예수의 목숨을 흥정했었다(요 19:10∼11, 마 10:28 참고).
 이제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가 보자. 마태, 마가, 누가가 공동으로 증거하고 있다. 성령과 바알 세불, 예수와 바알의 대결처럼 보여지는 대목이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이 화근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예수를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을 바알의 힘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에 불과하다고 과소평가 하는 부류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바리새인들의 정신구조를 알게 된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바 그대로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에 되는 일이 있겠느냐? 사단이 사단을 쫓아낸다면 그들의 나라가 어찌 서겠느냐? 그리고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자식들은 누구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느냐? 거푸 쏟아지는 예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로다.
 성령의 권능을 보라. 하나님 아들, 그 아들들을 통해서 계속 나타나는 권능을 보라. 또 오늘의 기독교는 예수의 권능을 주목하고, 또 우리가 권능이 동반된 신자 노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을 뼈아프게 해야 한다.
 성령의 권세를 말하자. 예수시대에는 아들(독생자)의 권세를 통해서 나타난 은혜였으며 오늘의 기독교 신자는 마태 10장에 나타난 제자훈련과정을 온 몸으로 익혀 오늘의 예수권세로 등장해야 한다.
 요즘 세상의 분위기를 보라. 누가 기독교인들을 겁내던가? 예수 앞에서 늘 두려움 때문에 먼저 시비를 걸었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쓸쓸한 기독교인들의 현장에 가보라. 그리고 슬퍼하라. 세상이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기독교라는 집단이 있기는 있지만 자기네들의 동류(同類)라는 정도로 치부하는 비극이 너무나 부끄럽다 해야 할 것이다.
 성령을 힘 입으라. 성령을 부르라.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요 7:37) 하신 이의 목마른 그 심정을 우리는 오늘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성령에 목말라야 한다. `성령'이 물이라는 뜻이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하늘사람이 되어 세상의 풍습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나라를 제시해야 한다.
 예수 말씀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눅 11:20)' 하셨으니 예수시대로부터 이 세상의 기반은 무너져 내리고 하늘나라 영역이 계속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 일을 결사적으로 해내야 한다. 제자의 신분을 가다듬어야 한다. 밤낮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자의 모습을 내 몸에서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와 보라(Come and See) 하여 말 아닌 우리의 넉넉한 은총의 삶을 세상 앞에 제시해야 한다.
 전대, 곧 돈주머니 없이 두벌 옷도 사양한채 지팡이나 신발도 벗어 던지고 걷는 제자이다. 돈주머니여, 두벌의 옷이여, 그대들은 나의 것이 아니다. 지팡이도 내 던져버리고 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맨발로 서서 노예나 종의 기본 모습을 갖춘 제자의 모습으로 하겠다.
 바알세불을 이기신 예수의 삶이었고 모습이었다. 그분을 스승으로 모신 제자인가? 그렇다면 스승만큼으로 뛰어 일어나라. 종인가? 주인이신 예수만큼 당신의 몸을 일으키라. 세상의 공갈이나 겁박을 두려워 하지 마라. 돈 주머니 텅텅 비어 있어도 울지마라. 단벌 옷에 맨발, 허름한 지팡이 하나 없어도 두려워 말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하신 주께서 어떤 어려움에서도 나를 지켜 주시니 성령의 사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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