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소리신문 제1차 터키 성지탐사

① 고난의 현장-갑바도기아
② 심판의 진행-소아시아 7교회〈1〉 
③ 실력-로마제국 기독교의 성쇠

# 이슬람 핵심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바울기념교회

지난주 신문(1154호)에 게재된 갑바도기아 일대, 그리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하루를 보낸 탐사팀이 끝도 없을 것 같은 드넓은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6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쫓기던 이고니온(콘야)이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시부터 연속해서 방문한 이 곳에서는 탐사팀 일행이 몇 일 동안 볼 수 없었던 십자가가 내걸린 ‘바울기념교회’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특히 몇 번째 이곳을 방문했지만 교회에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쉬워했다는 조효근 목사(본지 발행인)는 “이번 탐사팀은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한 주일에 2회 밖에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본인은 몇 번 찾아와서도 예배당 내부는 커녕 수녀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금번 순례단은 바울교회를 제대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99%가 이슬람 신자인 이곳에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가는 곳곳마다 세워져 있었고, 특히 이곳 이고니온은 소아시아 남부의 중앙에 위치, 터키 도청 소재지가 있고, 이슬람 평화주의 영성가로 아직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메블라나 루우미’ 세계 본부가 있을 정도로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교회가 이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으로 다가왔다.
현재 이 교회에는 가톨릭에서 파송된 3명의 수녀가 사역하고 있다는데, 수녀들은 수녀복도 입지 못하고(얼마나 조심스러운지 가늠할 수 있다) 갸날픈 몸으로 방문객을 화사하게 맞았다. 의사소통은 잘 되지 못하지만 일행들은 그 수녀님과 눈인사를 하며, ‘힘내세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기도할께요’라는 응원을 보냈다.

# 비시디아 안디옥을 가다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새벽 5시 기상과 계속되는 여행의 피곤함을 차안에서 달래고 (5시간 정도) 있는 사이 어느새 눈 앞에는 터키서 가장 장대한 협곡으로 알려져 있는 토로스산맥의 아슬아슬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한국의 한계령을 연상케 했지만 그것보다 5~6배는 위험하고 또 그 골짜기의 깊이, 산맥의 형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여행자는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보통 성지여행에서는 이 코스를 거의 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아찔한 순간을 뒤로한 채 도착한 곳은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 알려진 비시디아 안디옥(얄바츠)이었다. 저녁 7시 30분, 해가 아직 지지 않았음(한국 날씨와 비슷)을 다행으로 여겨 급하게 다가갔지만 철문은 닫혀져 있었다.
‘아, 이곳을 보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위험한 순간들을 거쳐 왔는데…’ 하며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관리인의 허락을 받아 철문을 넘어 들어가는 것을 겨우 허락받았다. 연세가 많은 분들도 꽤 여럿이었는데, 주저하지 않고 모두들 담을 잘도 넘었다. 한 분의 목사님은 엎어져 얼굴에 조그만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나 해가 서둘러 지기 전에 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저기 신전 및 원형경기장, 여러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유적들이 꽤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잔틴교회터 바로 옆에는 세례터가 어느 정도 복원돼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행은 회당자리가 있던 터를 향해 숨가쁘게 뛰고 달렸다.
 사도바울이 세웠던 교회 중 이번 탐사에서 제일 먼저 만난 바울교회터에서 우리를 반긴 것은 건물의 자취를 알려주는 나뒹구는 돌덩이들과 기둥들이었다. ‘아, 이렇게 처참하게 모두 무너져버렸구나.’ 이런 상태인 줄은 알았지만 막상 만나보니 마음은 한없이 처참하고, 착잡한 모습들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행은 잠시 바울교회터에서 한자리에 모여 사도 바울이 이곳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에게 선교했던(행 13:14~16) 것을 기억하며 46절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는 말씀을 함께 읽었다. 말씀 앞에 선 조효근 목사는 “바로 여기 이곳에서 이방기독교시대를 선언한 바울의 결단은 또 한 번의 메시아 선언이요 혁명보다 더 큰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디옥을 뒤로 하고 오는 길에 어디선가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뜨거운 기도의 소리가 들린다. 그 목회자는 ‘통성으로 기도하며 다시 한번 결단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이번 탐사를 처음부터 야심차게 준비해 온 조효근 목사는 성지문화원 원장 박용우 박사의 소개로 비시디아 안디옥 박물관장을 만나서 더 깊은 공부를 탐사팀과 함께 하려고 계획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저녁 8시 30분. 해는 거의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우리는 히에라볼리(파묵깔레)로 이동, 밤 늦게서야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 이틀에 걸쳐 돌아본 소아시아 7교회

  어느새 일행은 터기 중남부에서 서부쪽으로 이동해가며 순례하고 있었다. 히에라볼리에는 빌립 순교기념교회의 유적이 있다. 15분 정도 올라가니 우뚝 보인다. 사도 빌립의 무덤으로 주장하기도 하나 전도자 빌립 집사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 많다. 전도자 빌립은 히에라볼리에서 그 말년을 보냈으며, 처녀 예언자인 그의 딸과 함께(행 21:8~9) 이곳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빌립의 무덤은 약 54<&28094>의 넓이로, 사면이 작은 방으로 둘러져 있다. 직경 18m 이상인 8각형 방의 중앙에 있으며, 8개의 예배실과 회당이 방사형으로 통해 있다.
  올라간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들어서니 야외원형극장이 있는데,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곳이지만 마이크 없이도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공법으로 시공되어 있다고 한다. 그 부근에 흰눈 같은 절경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히에라볼리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파묵깔레다.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는 온천지대로, 여기에는 많은 양의 석회질이 오랜 시간 물 속에 침전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 높이가 약 100m에 이르는 백색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이 경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만발한 목화 송이로 뒤덮인 것 같이 보여 ‘목화성’이라는 뜻의 ‘파묵깔레’로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파묵깔레에서 시간에 쫓겨 그 좋은 온천수에 몸을 담가보지 못하고 발만 담궈보는 것으로 온천을 대신해야 했다. 그렇게 잠시의 여유를 부리고 그곳에서 8km 인근에 있는 사도바울에게 책망만 받은 라오디게아교회, 바울이 옥중에서 편지를 보낸 골로새, 로마제국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사대 도시 중 하나이며 수도였던 에베소, 폴리갑이 순교한 서머나(이즈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2)라며 책망을 받은 ‘사데교회’, 책망받은 일은 하나도 없고 칭찬만 받은 모범적 교회로 알려진 신앙의 도시 빌라델비아, 바울이 자주 장사를 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났던 두아디라, ‘온 아시아에서 가장 우상숭배가 성한 곳’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버가모를 차례로 순례를 했다.
  똑같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칭찬을 받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책망을 받은 교회를 돌아보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 바로 칭찬만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푸념이 일행들 속에서 고백되고 있었다.
  바울이 세웠던 소아시아의 여정을 따라 순례하던 일행은 두아디라교회에서(1호차), 그리고 에베소를 향해 가는 길에서(2호차) 각각 5월 15일 주일에 ‘성령강림주일예배(지난주 1154호 신문 참조)'를 드리며, 성령의 강한 임재를 열망하면서 그를 통해 목회와 신앙생활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했다.
양승록 기자

터키 성지 탐사를 다녀와서…/ 일행들의 고백 〉1〈

“ 가슴 뭉클, 부끄러움이 교차”

 먼저 필자는 ‘예수님의 발자취의 흔적이 있는 성지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선교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곳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라면 터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선배 목회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분으로 이번 선교지 탐방에 발을 내디뎠다. 출발 전에 “먼저 늦게나마 찾아보게 된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많은 은혜와 교훈을 얻어 돌아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공항에 내려서 초대교회의 선교의 본거지를 찾는 내 눈에는 도시 전체가 그 흔적들인 것 같아 기대도 컸다. 그래서 일정이 계속되는 동안 가슴이 뭉클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비록 주님의 발자취는 아니지만 사도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피의 흔적에서 채취를 느끼는 가운데 특히 갑바도기아의 예르지예스산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토굴을 만들어 생활하는 동안 앉은뱅이가 되고 곱추도 되고 장님도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는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부끄러움이 겹쳤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독일제 벤츠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편안히 달리면서도 피로를 느끼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감고 그 소리 속에서 사도들이 걸어서 다녔던 숨 가쁜 발걸음을 다시 한번 감격하면서 옆에 있는 아내에게 “여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지?” 하니까 아내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멘” 하였다.
 그러나 한편 실망과 도전을 받고 각오를 달리하기도 하였다. 즉 터키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십자가를 볼 수 없다는 것과 다만 이슬람교의 사원과 뾰족한 탑만 높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 곳곳마다 세워진 십자가의 종탑과 같았다. 필자에게 그 위대한 유물들은 신앙의 상처로 신음 하는 것 같고 복원 공사는 바벨탑을 쌓는 것 같은 의미로 보여졌다. 그러면서 필자는 이북 평양을 생각했다. 대동강 줄기를 타고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들이 세워지고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날 때 주일이면 평양도성에 있는 상가들이 문을 닫을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무신론주의자의 붉은 기만 펄럭이고 있지 않는가? 그 책임은 먼저 믿은 우리 모두의 것으로 삼는다. 그러나 막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믿고 전진하면 저 이슬람교의 사원에 높이 선 탑 위에도 평양도성에도 곳곳마다 십자가를 세우리라 믿는다.
 끝으로 들소리신문의 ‘조효근 목사의 종자돈’(선교의 씨앗)이란 색다른 말을 마음에 새기며 기자들 외 관계자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불같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도 선교사업의 책임을 통감하여 우리들의 몫으로 삼자. 임은찬 목사(대구 충일교회)

모스크바 하늘 밑 노숙자
 장장 9시간 30분! 잠자리 타고 날아왔다. 그 먼 길을…. 모스크바 하늘 밑, 또 하나의 기다림. 6시간(모스크바에서 비행기 바꿔타기 위한 시간) 몸 둘 곳은 그 어드메인가? 신문지 위에 등을 붙이니 여기가 노숙자의 천국이라. 사도바울의 여정 따라잡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서문명을 비벼놓은 이스탄불! 어떤 핍박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카타콤! 화려한 전성시대를 다 보내고 지금은 돌멩이만 뒹구는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잔상들…. 사도바울이 복음 들고 걸었던 산맥, 강줄기…. 로마의 살벌했던 통치의 흔적들! 골목마다 세워진 이슬람 사원의 종탑들. 그 역사의 뒤안길에 내가 서 있다.
 땅 끝까지 복음 전하라 하신 주님의 음성, 주여! 이곳이 땅끝이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그렇게 몸부림치며 걸었던 길들…. 이 작은 몸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사명 이어받게 하옵소서. 그 바쳐진 생명을 나도 바치게 하옵소서. 다시 이 땅에 돌아오렵니다. 중동 선교의 복음을 들고….
 모스크바 하늘 밑, 돌아오는 길 백야의 백미인가? 밤 10시인데도 환하다. 바울의 여정따라 사명을 깨달으니 하나님께서도 기쁘신가 보다. 끝까지 빛으로, 잠자리가 구름 위로 날으니, 두고 온 교회와 성도들이 가까워진다. 이 감동 전하리라, 이 사명 전하리라. 주님 명령에 순종하자고….배요한 목사(예일교회)

초대교회 성도들 열정이 돌무더기에서 금방이라도 되살아날 듯
 들소리신문사에서 공고한 이번 성지탐사 여행을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나를 위한 여행이 마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있었다. 첫째는 들소리신문의 메인 칼럼을 쓰시는 無然 조효근 목사님이 직접 현지를 함께 돌아보면서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꾸준히 들소리 신문을 애독해 오면서 칼럼 내용에 매료되어, 칼럼의 필자와 삶의 얘기를, 신앙의 얘기를, 그리고 진리에 대한 얘기들을 꼭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선교의 동역자 한 사람이 이미 4년 전부터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그를 만나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이 동역자는 필자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가르쳤던 제자요, 후배이기도 하면서, 반면 필자에게 선교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 준 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마음속으로 한번 찾아봐야 한다는 ‘빚진 마음’을 갖고 있었다. 세 번째 이유는 직장에서의 업무가, 일년 중 그런대로 숨을 돌릴 만한 시기가 바로 5, 6월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서 7시에 출발, 밤 10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오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곳을 다 보여주고 싶은 기획자의 절박한 의도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무려 3,500km를 내달렸다. 마치 2천년 전 복음을 들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면서까지 자신을 드렸던 사도 바울의 마음을 담아내는 여정이기도 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했던 사도 바울과 빌립 집사 등 초대 교회 성도들의 열정이, 쇠락해진 고대 도시의 무너진 돌무더기 위에서 금방이라도 되살아날 것 같은 숙연한 마음도 가졌다. 엄청난 거리인 사도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 코스를 되밟으면서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하는 놀라움의 마음도 가졌고, 그동안 평면적으로 이해했던 성경의 내용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보는 눈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쇠락해진 찬란한 문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짧지만은 않은 8일간의 일정이 마치 꿈같이 지나갔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그 땅, 터키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에게해 연안의 쪽빛 바닷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배동석 집사(연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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