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이유로 `문화 유산' 나 몰라라 “문화유산은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이다. 유형의 문화재와 함께 무형의 문화재는 모두 민족 문화의 정수이며 그 기반이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유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재난을 견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일은 곧 나라 사랑의 근본이 되며 겨레 사랑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온 국민은 유적과 그 주위 환경이 파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 상태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안전하게 물려줄 것을 다짐하면서 문화유산 헌장을 제정한다.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은 주위 환경과 함께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은 그 가치를 재화로 따질 수 없는 것이므로 결코 파괴, 도굴되거나 불법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은 가정, 학교, 사회교육을 통해 널리 일깨워져야 한다. 모든 국민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찬란한 민족 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1997년 12월 문화재청이 제정한 문화유산 헌장 전문이다.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가져야 할, 지켜야 할 것이 `문화유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우리 사회, 학교, 가정 등에서의 문화유산 보존의 정신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최근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박목월(1916∼1978) 시인의 옛집이 아들의 빚 때문에 건축업자에 넘어가 철거되는 현실이 우리 앞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었다. 용산구 원효로4가의 박목월 시인의 옛집은 1965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가지인 12년동안 살면서 `어머니', `경상도의 가랑잎', `사력질' 등 많은 작품을 집필한 곳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건물은 5명의 자녀 공동명의로 돼 있었으며,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37평의 이 집은 사업을 하던 목월의 차남이 은행대출을 받기 위해 담보로 맡겼다가 2001년 경매에 넘어갔으며, 장남인 박동규(65) 서울대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 이 집이 넘겨지지 않도록 수억원의 빚을 져가면서 이자를 갚아왔는데, 더 이상 버티지 못하다가 2년 전 건축업자에게 3억원에 넘겼고, 2월 21일 다세대 주택을 짓기 위해 헐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소설가 현진건 선생의 생가가 철거된 뒤 이명박 시장의 지시에 따라 근·현대 문인과 예술인의 유적 보존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2월 2일 한용운 옛집을 포함해 6곳을 시 지정문화재로, 박목월 시인과 이중섭 화가 옛집 등 13곳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밝혔었다. 서울시의 이런 문화재 지정의 발표가 나간 지 불과 몇 일 안돼 박목월 시인의 옛집이 철거됐는데, 서울시는 철거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시는 구청에 협조공문도 보내고, 유족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등록 문화재는 법적으로 철거를 막을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재 등록을 앞두고 있지만 `문화재는 무슨 문화재?'라며 소유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서둘러 철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시 지정문화재나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건축은 전혀 할 수 없고, 집 값이 상승되는 것이 아니고 터무니 없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주변 지역의 집이나 땅값이 함께 추락한다. 소유주에게 주는 보상은 종합토지세와 재산세의 감면같은 세제혜택 뿐이다. 보존을 위한 내외부 수리 비용 정도는 시가 감당하지만 현실적으로 볼때 집을 보존하는 것 만큼 소유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는 것은 시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문화재 지정 구역이 되면 50m 까지는 개발을 하지 못하게 돼 있으니 주변의 주민들도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시의 한 관계자는 “소유주나 유족들을 향해 지나치게 비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혹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소유주들에게 돌아가는 피해 부담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지역의 주민들이나 문인협회 등에서 시의 이런 방침과 함께 문화재의 중요성을 알리고, 함께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 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소유주 개인의 부담이 큰 만큼 시민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등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내셔널 트러스트의 김금호 부장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현실성 있는 보상 대책이 이뤄져야 하는데, 관계 당국은 예산을 핑계 대면서 차일 피일 미루면 누가 보호하겠는가”라면서 “이런 소유주들의 애환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며, 문화재란 용어 자체로 싫증내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문화재로 등록되면 그 지역의 주민들은 자긍심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문화재란 이유로 집값이 하락하게 되니 소유자는 허탈감이 들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사유재산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상실케 하면서, 잘 보존해야 한다며 소유주에게 촉구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문화재청은 이런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 속에서 고유문화의 가치는 날로 높아만 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 국가는 경제 개발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달리고, 국민은 생활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사라져가고 훼손돼 가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선진국화 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잘 보존하고 소중하게 인지해야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적 얘기지만 국가 차원의 방안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인 `역사 명승·자연 경승지를 위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or Natural Beauty)가 이 시점에서 호평을 받는 것은 국가 기관이 가지지 못한 섬세하고 끈질기고 따뜻한 손길로 우리 문화 유산을 지키고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1895년 19세기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발전을 경험했던 영국, 물질 문명이 인간의 풍요와 존엄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환경이 사라질 즈음 시민들 스스로 탄생 시킨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영국 최대의 환경·시민유산단체로 성장했다. 300만이 넘는 회원과 미래세대를 위해 영구 보전할 전 국토의 1.6%를 국민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확보한 국민자산은 영원히 훼손할 수 없는 시민 모두의 자산이 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를 발족한 것은 2000년 1월 25일. 이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안운동의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멸실 위기에 처해 있는 강화 매화마름을 시민과 뜻을 함께 하는 기업 및 독지가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시민자연유산 1호로 보전하였고, 같은 해 12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옛집을 시민문화유산 1호로 영구 보전하는 결실을 이뤄냈다. 현재 `최순우 옛집'의 복원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내달 10일 개관에 이르게 된 것은 모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8억원에 매입하는 과정이 적지 않게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순우 선생의 딸이 보전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던 것도 보전할 수 있게 된 주요한 일이 되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부장은 “보존하고 싶어도 저당이나 담보가 잡혀있을 수 있고, 또 그 다음 세대의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는 과정에서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시민문화유산으로 확실하게 매입해서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0일 개관하는 최순우 옛집은 한국의 도자기와 전통 목공예, 회화사 분야에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를 전공했다는 김 부장은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세대와 세대, 인간과 인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사이를 허물어가는 운동”이라며 “과거의 업적과 삶의 방식 등 문화를 보며 선진들을 이해하면서 오늘의 우리와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 동시대의 삶은 아니지만 현실과 조화롭게 공감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화유산 보존은 우리의 정체성 확립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개발지상주의에 밀려 훼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과거를 잃는 것은 현재 자기 모습을 잃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철거된 현진건과 최남선의 고택이 철거된 것을 안타까워 했다. 역사적 조명, 홍보, 업적 등을 돔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역사적 가치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최남선 선생이 친일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국문학적인 업적을 평가 절하하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민들 스스로도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의 인물이 지역에 살았던 것을 역사적으로 내세울 수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식의 성장이 우리나라에서도 확대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다세대 주택 하나를 짓기 위해 문화적, 역사적으로 굵은 족적을 남긴 이들의 흔적이 고민 없이 허무는 세태를 방관하며 사는 오늘의 우리들, 언제쯤이면 바로 앞의 이익보다 후손들의 깊은 내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될수 있을까. 양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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