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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들소리문학상 수상자 작품본상(수필),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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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6.05.02  11: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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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수필)-내가 깨어있는 새벽(이현주)

내가 매일 자리에 누워 맞이하게 되는
새벽은 시시각각 그 얼굴이 다르다.
새벽 4시의 얼굴은 아직 깊고 두껍다. 밤을 닮아 있다.
그러나 6시가 되면 그윽해진다.
이미 낮의 모습을 하고 있다. 창 밖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변화는
하루가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하루라는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

4시. 안방에서 새벽예배 시간에 맞춰 엄마를 깨우는 휴대전화 벨이 희미하게 울린다. 나도 그 희미한 울림 속에서 눈을 뜬다. 엄마의 부탁으로 내가 이 시간에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그 벨소리에 나도 잠을 깨야하고 한번 깨이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아 가끔은 짜증이 난다.
그러나 엄마에게 불만은 없다. 어차피 내가 늘 왼편으로만 몸을 돌아누워 자기 때문에 왼편으로 쏠린 팔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해 굳이 휴대전화 벨이 울리지 않더라도 보통 이때쯤이면 깨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맞춰놓은 이 시간에 매일 엄마가 깨어나 새벽예배에 참석할 수 있음이 오히려 마음 뿌듯하다.
더러는 4시 이전에 내가 먼저 깨어 있을 때도 종종 있다. 내가 눈을 뜨고 한참 후에야 휴대전화 벨이 울려 엄마가 어둠 속을 슬몃슬몃 추스르며 내 침실인 거실에 홀연히 나타날 경우가 더 많으니까. 뽀얀 어둠 속에서 엄마는 내가 깨어 있음을 모르고 내 몸을 바로 눕히며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 준 다음 거실 문을 조심스레 밀며 집을 나선다. 늘 그러하듯 나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조심스런 움직임을 지켜볼 뿐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엄마가 열고 나가는 그 문틈 사이로 푸르고 신선한 새벽 공기가 다가와 내 얼굴을 맑게 씻어준다.
엄마가 나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나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물론 낮에도 혼자이고 비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는 없지만, 이 시간만큼 내게 활력을 주고 낮과는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게 이 시간은 아주 신성하다. 또한 아직 거실 안 어둠에 잠겨 졸고 있는 모든 사물들 가운데 제일 일찍 새벽을 맞이한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다. 때로는 꼼짝없이 누워 어둠 속을 헤매는 내 눈동자가 음산한 기분마저 들게 하지만, 이 새벽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토실토실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마음도 가장 잘 깨어 있다.
어느 때는 자리에서 눈이 떠져 낮에 잘 쓰여지지 않던 글의 써야 할 주제와 잘 짜여진 문장들이 서슴없이 떠오를 때도 있다. 이런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대체로 아주 기분 좋게 깊이 푹 자고 깨인 날, 가끔 이런 횡재를 만난다. 그러나 이런 보기 드문 횡재를 만난 날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갓 구워낸 빵처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생각들을 이 시간에 일어나 싱싱한 활자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엄마의 수고로운 손길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런 엄마의 수고로운 손길이 내 몸에 닿을 때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다. 더구나 아버지 침실로 쓰는 사랑방에 컴퓨터가 놓여 있기 때문에 내가 새벽시간에 글을 쓰기란 매우 부담스럽고 곤란한 일이다.
나는 겨우 자판에 얼굴을 묵고 내 뒤틀린 신체 중에서 가장 날렵하게 움직이는 혀와 납덩이같이 무거운 손가락으로 힘겹게 더듬어 가야 비로소 한 글자를 완성시킨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마치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벽돌 한 장 한 장을 정성스레 쌓아올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새벽에 떠오르는 이 많은 생각들을 모두 컴퓨터에 옮길 수 있다면, 아마 나는 꽤 두꺼운 책 한 권을 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생각들을 성능 좋은 내 머릿속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낮에 컴퓨터로 차근차근 옮겨놓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벽에 막 걷어 올린 생각만큼 섬세하거나 신선한 맛은 아무래도 덜한 듯 싶어 약간의 서운함도 있지만….
내가 매일 자리에 누워 맞이하게 되는 새벽은 시시각각 그 얼굴이 다르다. 새벽 4시의 얼굴은 아직 깊고 두껍다. 밤을 닮아 있다. 그러나 6시가 되면 그윽해진다. 이미 낮의 모습을 하고 있다. 창 밖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변화는 하루가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하루라는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
나는 그 현장에 꼼짝없이 누워 있다. 어린아이가 귀엽듯 막 태어난 하루 역시 귀엽기 그지없다. 새벽은 어린아이 같다. 어둡고 짙은 혼동의 한가운데서 어스름 모양이 잡혀가다가 갑작스런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으로 뛰어나온 아이 같다. 어둡더니, 나지막한 숨소리 같더니, 언제 이렇게 웃음처럼 밝아졌는가?
지난날 내게 이 새벽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와락 덤벼드는 어둠과 적막감속에서 절망부터 앞서는 불투명한 내 미래와 존재의 이유를 찾을 길 없어 베개를 흠뻑 적시도록 눈물 흘린 적이 많았다. 그리고 밤새 풀리지 않는 긴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려운 하루가 시작될 때가 있었다. 내게는 새롭게 태어나는 하루가 두려울 때도 있었고, 또 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 참혹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죽어 가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죽어 가는 날들 가운데 신비로운 푸른 옷을 갈아입고 찾아온 새벽은 차츰 나를 새로움으로 깨어나게 했고, 먼지처럼 내 마음에 켜켜이 쌓인 오래된 슬픔은 어느새 이 새벽빛에 가볍게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또한 이 새벽은 내게 잔잔히 참 평안이 흐르는 기도를 가르쳐 주었고, 그 참 평안이 흐르는 기도로 하나님과 좀더 신실한 만남을 누리게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거친 어둠을 부드럽게 밀어내고 서서히 동이 터 옴을 바라보게 되었다. 언제나 묵묵히 긴 밤 어둠을 견디고 찬란하게 동이 터 오듯 내 인생길이 아무리 외로운 밤길일지라도, 내가 생명이 있어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찬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찾아온 오늘을 전쟁의 날이 아니라 축제의 날로 여겼다. 아침마다 태양의 축포가 동산에서 터지고 저녁마다 서산에는 아름다운 영상이 나를 위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런 귀한 마음을 얻게 된 후부터 나는 이 새벽에 깨어나 가만히 누워 창밖에 동이 터 옴을 지켜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새벽을 사랑한다. 어둔 밤을 견뎌야 빛난 새벽이 찾아오듯 고통을 통해 기쁨이 오고, 갈등을 통해 안정이 오며, 불안을 통해 평화를 얻고, 구속을 통해 자유를 알게 된다.
그러기에 내가 지닌 장애를 통해 나는 하루하루 이렇게 특별한 행복과 감동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게 주어진 이 하루 동안 즐겁게 웃고 떠들기에도 짧은 시간인데, 왜 내가 어리석은 분노와 민망한 욕심과 약간의 불만에 매이겠는가? 오직 나를 위해 탄생한 오늘은 이미 오늘로 아름다운 것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엄마가 새벽예배 마치고 찬송가를 콧노래로 경쾌하게 부르며 천진스런 아침햇살과 손잡고 거실에 들어선다. 나는 여전히 자리에 누워서 엄마와 손잡고 들어온 아침햇살을 반갑게 맞이하며 아침햇살처럼 투명한 미소로 엄마에게 인사한다.
“엄마 잘 다녀왔어?”
*이현주 씨는 실제로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갖고 있다

신인상(시)-폐품 수집상(이현주)

온 동네를 마당으로 삼은 집을 발견했다
삼거리 공터에 단단한 나무뿌리처럼 박힌 컨테이너 반 칸
원형 탈모증 걸린 머리 꽃무늬 장판으로 가리고
풍화작용 거친 손으로 낡은 해 이끌고 일터 나간 노파
굽은 등을 나비처럼 나풀거릴 때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얘기며 버려진 고양이,
오래된 흑백텔레비전, 우편배달부의 스무 살 꿈,
야쿠르트 아줌마의 첫 사랑, 문짝만 남은 쓸쓸한 공간,
신문지로 포장된 주정뱅이
모든 버려진 것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고추 말리듯 널어놓으면 버석거리는
건조한 기억을 매운 눈물과 함께 버무려
기억을 찾는 배고픈 이들의 눈을 붉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워하는 것도 배고픈 일이다)
머리위에 뽀얗게 하얀 꽃으로 피어나는
지나간 생에 대한 아쉬움,
노파에게 폐품 같은 일생만 남았지만
부끄러움 없이 공개된 시든 젖가슴에서
묽어진 하얀 생이 한 두 방울 흘러나오는 것이다

*한경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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