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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들소리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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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6.05.02  11: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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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종 소 리 명혜정(고흥중학교 국어교사)  달그락 달그락. 파도에 몽돌이 씻깁니다. 연이와 홍이는 밀물의 바다에 종아리를 담급니다. 파도가 종아리에 간지럼을 태웁니다. 찰박거리며 두 아이들은 몽돌 위를 걸어다닙니다. 발밑에 돌 부딪치는 소리만 작은 섬마을을 울립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습니다.  텅빈 섬마을에 연이와 홍이만 남아 파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빠는 오늘도 술병과 친구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빠는 참 이상합니다. 날마다 술병을 들고 있지만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친구들이 섬을 떠나자고 했을 때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만 마셨습니다.  일곱 살박이 연이는 선착장으로 올라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앉았습니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파래가 푸른 머리를 풀어 헤친 마녀처럼 물 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연이는 고개를 숙여 파래를 뜯어냈습니다. 연이의 손끝에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다섯 살 박이 홍이는 언니의 모습을 건너다 보고 있더니 바구니를 가져옵니다. 멀리 보성만으로 지는 해가 발간 노을을 만들어 연이와 홍이의 볼에 비춰줍니다. 쌀쌀한 늦가을 바람이 아이들의 볼을 발갛게 달구어도 아이들은 파래바구니를 채우는 것에 빠져 추운 줄도 모릅니다.  팽나무에 걸린 바람이 다가오는 어둠에 화가 난 모양입니다. 늘 불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내지 않고 윙윙거립니다. 바람이 윙하고 화를 내는 날엔 파도도 덩달아 높아집니다. 연이는 바람이 화가 난 날이 싫습니다. 그런 날은 팽나무 언덕 위에 빈 교회에서 밤새도록 종이 울립니다. 바람이 치는 종소리는 왠지 너무 슬픕니다. 지난 여름만 해도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는데 목사님도 떠나 버린 교회에 연이와 홍이도 가기 싫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파래 바구니를 낑낑거리며 팽나무 언덕을 내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늘엔 별도 모두 숨어버렸습니다. 아빠는 저녁 밥도 안 먹고 벌써 잠이 들었나 봅니다. 연이는 찬장을 뒤져 라면 두 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홍이에게 라면을 끓여 주었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라면은 맛이 없었습니다. 빨리 엄마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이가 몇 숟가락 뜨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자 홍이도 그만 수저를 놓고 졸기 시작합니다. 팽나무 언덕에서 매운 바람이 섬마을로 치닫고 한 가닥 불빛이 꺼지며 깊은 어둠에 빠져들었습니다.  부연 빛에 눈이 부셔 연이가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빠를 더듬어 보니 이부자리가 텅 비었습니다. 잠자리가 말끔히 개어 있습니다. 문틈사이로 바람이 새어듭니다. 짓궂은 바람은 여기저기 손이 닿는 데는 모두 찾아가 물건들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릇들이 달그락거리고 빨래가 팔랑거립니다. 연이는 아빠를 찾아 나섰습니다.  골목길을 돌아 팽나무 언덕에 서면 섬마을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지가 많은 팽나무에는 무수한 바람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연이는 팽나무 그늘 아래서 마을을 살펴보았습니다. 몽돌 해수욕장에도 안 보이고, 뒤안 채소밭에도 아빠가 안 보입니다. 그러다 눈길이 머무는 곳, 단 한 척 연이네 배만 남은 선착장에 아빠가 서 계십니다. 아빠는 배를 끌어올립니다. 혼자 힘으론 힘겨울 텐데 배를 모래톱 위로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연이는 후다닥 아빠를 향해 달렸습니다.  아빠가 밀어올리는 닻줄을 함께 잡아 끌어올리자 아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습니다. 연이는 아빠가 웃는 게 너무 좋아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닻줄을 당깁니다. 배는 천천히 모래톱으로 올라왔습니다.  “샛바람이 부는 것이 작은 태풍이 오려나 보다.”  아빠가 닻줄을 큰 나무에 묶으면서 말했습니다. 바람이 크게 불면 배가 부셔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덜 닿는 모래톱에 배를 엎어 놓아야 합니다. 연이는 오랜만에 아빠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홍이가 부스스한 머리로 마루 끝에 앉아 있습니다. 아빠는 찬장에서 라면 두 개를 마지막으로 꺼내 끓였습니다. 하루 종일 바람이 불었습니다. 오후에는 비도 뿌렸습니다. 그렇지만 연이와 홍이는 모처럼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아빠가 술과 친구하지 않는 날이었으니까요? 아빠는 안방에 앉아 선착장만 바라보았습니다. 선착장 너머로 금당도의 뒷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후두둑 창문으로 비가 들칩니다. 빗소리 때문에 팽나무에 걸린 바람 소리가 멀어집니다. 연이는 창문을 들추고 팽나무언덕을 바라봅니다. 노란 팽 열매가 바람에 다 떨어질 것 같습니다. 언덕엔 팽나무 이파리들이 날립니다. 꽃바람이 이는 듯 팽나무 이파리들이 바다로 날아갑니다. 후둑후두둑 빗소리에 가려 팽들이 떨어집니다. 뎅뎅거리던 교회의 종소리가 이젠 둥!하고 둔한 소리를 냅니다.  연이와 홍이는 창가에 매달려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지나가는 고깃배도 없어서 바다가 텅 비었습니다. 앞바다 가득 고깃배가 드나들던 때가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홍이는 언니와 함께 창문에 흘러들어온 빗물로 그림을 그리다가 방바닥에 다시 누워 버렸습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날 엄마가 계시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실 텐데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마루 끝에 앉아 계십니다. 엄마가 떠나던 그 여름날이 떠오릅니다. 그날 바다는 아주 말갛게 개여 있었습니다. 은빛 물비늘이 반짝이던 바다는 아주 큰 보석을 깔아놓은 듯 했습니다.  그 전날 섬마을에 있던 모든 배들이 녹동항으로 나갔습니다. 연이와 홍이도 유치원에 나가지 않고 아빠의 배에 올랐습니다.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마이크 소리가 웅웅거리는 광장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어른들은 떠들었고 꽹과리 장구 소리가 찾아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모여든 아이들은 그 사이를 뛰어다녔습니다. 엄마의 얼굴빛은 어두웠지만 홍이는 어린 친구들이 보여서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 사이로 뛰어 돌아다니자 연이 언니가 쫓아와서 못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빠를 어민회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새로 만들어져 아빠와 이웃 사람들의 배가 고기잡이를 못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물코를 늘여서 작은 물고기들이 빠져 나가고 큰 물고기만 잡을 수 있게 하는 법이 새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연이의 주먹만한 그물코가 아빠가 사용해야할 그물이랍니다. 그런데 연이의 주먹만큼이나 큰 그물코로는 못 빠져 나갈 고기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아빠가 잡은 것은 고기가 아니라 낙지여서 더더욱 잘 빠져 나간답니다. 낙지들은 미끄러워서 작은 그물코에서도 살살 빠져나가기 일쑤인데 그렇게 큰 구멍으로 못 빠져 나갈 낙지가 없겠지요.  그래서 어민들이 모인 거라고 합니다. 아빠가 연이를 무등을 태우고 낙지잡이 어장을 만들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따라 외쳤습니다. 엄마만 걱정스레 홍이 손을 잡고 담벼락에 서 계셨습니다.  검은차를 탄 사람들이 한 무더기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안에 낙지를 잡을 수 있게 좋은 소식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빠 앞에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집에 돌아가 있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신이 나서 마을 사람들과 대책회의를 하러 갔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배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돈을 벌러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낙지를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발표되어야 아빠는 바다에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가 없기에 엄마는 금당도에 있는 김공장에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엄마가 떠났습니다. 작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나룻배를 탔습니다. 은빛 물결 사이로 엄마가 떠나고 연이와 홍이는 눈물이 나왔지만 소리 내어 울진 못했습니다. 아빠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회의를 한다고 자주 읍내에 나갔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이삿짐을 잔뜩 실은 배가 선착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사람들은 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배를 팔아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고기를 잡아 살 수 있는 세상은 갔다고 합니다. 그동안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서 이제는 고기를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다도 쉬어야 물고기가 살아남을 수 있다나요.  가을이 오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섬마을을 떠났습니다. 엄마는 전화에다 대고 아빠보고 배를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금당도로 이사를 해서 김공장에 막일을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배를 팔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바닷속에 잔뜩 있는 낙지를 못 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물고기를 잡지 않아도 낙지는 잡을 수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일은 뿌리가 뽑히는 일이라 했습니다. 식물이 뿌리가 뽑히면 살 수 없듯이 사람도 뿌리가 뽑히면 기를 펴고 살 수 없답니다.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텅 비었습니다. 유치원생인 연이와 홍이만 남았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읍내에 있는 유치원으로 보내라는 통고와 함께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깨끗했던 운동장엔 제 세상 만난 듯 잡초가 자리를 잡고 올라왔습니다. 잡초 속에서 몇 개의 동상만이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바다가 아픈 듯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를 품어 올리며 뒤척거렸습니다. 아빠는 마루 끝에서 먼 바다만 바라보았습니다. 홍이는 밖에 나갈 수 없어서 하루가 더욱 길게 느껴졌습니다. 사방이 물기를 머금은 흐린 빛으로 덮여서 바다도 산도 흐릿하게 보일 무렵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빠는 전화를 받으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오랜만에 껄걸 웃었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놀라서 아빠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가 오는 줄 알고 잔뜩 기대에 차서 아빠 입에서 말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왔어. 드디어 왔다고. 내일 낙지를 잡을 수 있게 발표를 해준대. 이젠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살 수 있어.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야 해.”  아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연이와 홍이도 기분이 들떠서 쉬이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배를 타고 일을 하게 되면 엄마는 김공장에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빨리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꿈에 부풀었습니다.  다음 날 아빠는 오랜만에 양복으로 갈아 입고 배를 타고 읍내로 갔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선착장에서 아빠를 배웅했습니다. 아빠가 떠난 섬마을엔 연이와 홍이만 남았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섬마을은 아주 말끔하게 씻겨서 맑은 가을 바람이 불었습니다.  연이와 홍이가 이파리가 다 떨어진 언덕위의 팽나무에 올라가 하루 종일 아빠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노을빛이 발스그레 얼굴을 내밀 무렵 선착장에 통학선이 닻을 풀고 있습니다. 늙은 신사 한 사람이 트렁크 몇 개를 배에서 내려놓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배 기관소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착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두 손에 트렁크를 든 할아버지가 연이와 홍이를 보며 묻습니다.  “교회가 어디니?”  연이와 홍이는 달랑거리며 언덕으로 올랐습니다. 늙은 팽나무 곁에 교회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스럭거리며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열쇠를 꺼냈습니다. 열쇠는 녹이 슬어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큰 가방에서 톱을 꺼내 열쇠통을 자르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배실에는 거미줄이 잔뜩 얽혀 있었습니다.  “너희들 할아버지와 재밌는 놀이 하지 않을래?”  할아버지는 팽나무 그늘아래 부서진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고 끝에다 화장지를 말아 주었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매미채를 잡듯이 나뭇가지를 들고 거미줄을 걷어 냈습니다. 긴 의자 위에 올라가 거미줄을 걷는 일은 신이 났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너무 신이 나서 손이 닿지 않는 천장까지 의자를 쌓아 놓고 올라갔습니다.  “할아버지 여기 어떻게 오신 거예요?”  “여기에서 살 건가요?”  두 아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신이 나서 종알거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창고에서 사다리를 가지고 나와 종대로 올라갔습니다. 수건으로 잘 닦인 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습니다.  “데엥 뎅 뎅 뎅”  고요한 섬마을에 교회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으아리 넝쿨 속에 숨어 있떤 참새떼들이 종소리에 놀라 푸드덕거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팽 열매들도 고개를 갸웃하다 그만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데엥 뎅 뎅 뎅”    어민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아빠는 갑자기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물고기를 보호하는 법은 이제 변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빠는 더 이상 연홍도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발표를 듣고 너무 슬펐습니다. 이제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배를 팔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아빠는 교회 종소리도 너무 슬퍼서 선착장에 배를 대고 누워 버렸습니다.  뎅뎅, 종소리가 찰싹이는 파도와 더불어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남들이 다 떠나도 오로지 연이네 가족만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었는데 이젠 방법이 없었습니다. 뎅뎅! 바람이 불면 저절로 치던 종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또렷이 들려옵니다. 아빠는 눈을 감고 종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연이와 홍이가 선착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빠는 인기척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목사님이 왠일이세요? 여긴 어떻게…”  연이와 홍이도 눈이 동그래져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가 벌써 아이 아빠가 되었구만.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 이 섬을 떠난 지도 벌써 이십 년이 넘었지. 그땐 자네가 중학생이었으니까. 이젠 나도 목사직에서 정년을 했어. 작년부터 목사직을 떠나 시골에 묻혀 있었는데 여기에 교회가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 사람도 한 가족이 남아 있고. 자네 가족인 줄은 몰랐구만. 이곳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이곳에서 해야지.”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섬마을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연이와 홍이의 손을 잡고 다시 언덕을 올랐습니다. 아빠도 천천히 따라 올라왔습니다.  “억지로 마을을 떠날 필요는 없지. 원하지 않는다면 여길 뜨지 말고 살 궁리를 찾아 보게나.”  할아버지는 먼 수평선으로 눈을 돌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연이와 홍이라고 했지. 내키지 않으면 아이들을 이곳에서 공부시켜도 되지. 도시로 나간다고 공부가 제대로 되는 건 아니라네.”  아빠는 금당의 뒷산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습니다. 연이와 홍이는 할아버지가 온 게 너무 신이 나서 언덕배기를 신이 나서 달렸습니다. 그리고 텅 빈 학교와 텅 빈 집들에 담긴 이야기를 실컷 해 주었습니다.  ‘그래, 봄이 오면 엄마도 돌아오실 거야.’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속삭이며 깊은 미소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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