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모든 뼈로 `시'라 쓰고 싶다”
 
 
 ▶ 제8회 들소리문학상 대상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제가 상을 받는다는 것보다 어떠한 연계도 없이 찾아온 상이라는 것, 100% 순수한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이 기쁩니다. 시를 위해 목숨 내 놓고 매진했지만 자생란처럼 해온 터라 상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숨겨져 있던 제 시를 발굴해 상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시인은 사라져도 작품은 자기 힘으로 생명력 있게 뻗어나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해 온 작업인데 드디어 제 시가 글 힘을 가진 것이 확인되었다는 기쁨이 큽니다.

▶ 시는 언제부터 쓰셨습니까.
- 시에 일찍 경도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졌고 중학교 2학년 초입부터는 아예 풍덩 빠졌지요. 학과공부도 뒷전이었고 작품을 읽고 쓰고 하는 것으로 중학시절을 다 보냈어요. 가계가 넉넉지 못한 상황이어서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아예 시에만 매달렸어요. 군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살림하면서도 한시도 시를 놓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 땅에서는 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스승이신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추천으로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미당 선생님과 또 한 분으로부터 10년 동안 철저하게 시론 수업을 받으며 스스로 공부해 오던 방식을 바꾸고 펴낸 시집이 7번째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 입니다.

▶ 문학적 소질은 가족배경이 있으신가요.
- 어머니께서 특별한 배움이 없으셨지만 노래와 시를 참 좋아하셨어요. 16살에 시집오실 때 심청전과 춘향전 등 이야기를 붓글씨로 베껴 오셨어요. 밭일을 하실 때면 노래와 시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지요. 어머니가 부르시던 노래들이 어찌나 가사가 예쁘고 그 뜻이 깊은지 어머니가 76세 되시던 해에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하나씩 적어주시도록 부탁드렸는데 그것을 가끔씩 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어머니는 “우리 숙자 좋을 글 쓰게 해 달라”시며 매일 아파트를 탑돌이 하듯 도셨어요. 문학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재능이 딸들에게 발화된 것 같아요. 6남매 중 딸이 넷인데 첫째 언니 정춘자는 소설로 등단해 〈따뜻한 창〉을 출간했고, 동생 둘도 소설과 시를 씁니다.

▶ 대상에 선정된 〈열매보다 강한 잎〉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제목이나 작품에서는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 제 인생관은 ‘맑고 따뜻하게’ 입니다. 맑다는 것은 ‘곧다’ ‘바르다’는 것이고, 따뜻하다는 것은 측은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주만물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자세로 하다 보니 종교와 통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진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궁극은 선한 본성 추구입니다. 궁극에 가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은 수평을 유지하게 되지요.
자연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보니 열매만 수확되고 잎새는 떨어지고 밟히고 썩습니다. 인생도 ‘열매’보다 ‘잎새’가 더 많습니다. 저도 잎새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요. 잎새가 열매보다 나은 점을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씨앗에 있었습니다. 열매 안에 씨,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두 장의 잎새, 즉 떡잎이었습니다. 감을 쪼개고 씨를 깨면 떡잎이 합장한 듯 단단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잎새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무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두 장의 잎, 그것이 바로 세상을 버텨가는 힘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잎새 인생들이 정직하게 삶을 살아낼 때 희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약하니 약한 것을 두둔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잎새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쓴 것입니다.
성경은 세기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독했는데 성경 전체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글은 전도서 1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삶의 헛됨을 노래한 것인데 이것은 인생을 관통한 사람이 쓴 것임에 분명합니다.

▶ 심사위원들은 “사물의 겉모양보다 내면의 치열한 창조과정에 보낸 건강한 시선이 범상치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시 작업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 감상 없이 바로 스스로 발견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철학을 수렴한 관념시이면서도 현실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요. 유령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에 철저하게 뿌리박고 있어야 공감을 끌어내고 감동을 줍니다.

▶ 시 공부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 특히 현대시는 정말 공부해야 해요. 공부가 없으면 감상에 그칩니다. 소질은 있었지만 개발되지 않아 붓을 바꾸는 데만 10년이 걸렸어요. ‘시적 허용’을 남발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한 문장이어야 해요. 문장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강도 높은 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말 어려운 것이 시예요. 인간과 신의 ‘조화로운 교감’이 필요합니다. 시는 그렇게 정확한 것입니다. 언어를 계산하고 저울에 재듯이 해야 해요. 시 한 편에 컴퓨터 작업을 제외하고 퇴고용지가 100장이 어렵지 않게 넘어갑니다. 중국 채근담에 ‘문장이 극에 달하면 기교가 없고 다만 알맞다’고 했습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 독서습관은 어떻습니까.
- 시골에서 책이 흔치 않았어요. 어려서 읽은 방정환 선생의 동화책 〈사랑의 선물〉을 100번도 넘게 읽었고 상상력과 자아 형성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안데르센, 신데렐라 등 착한 마음을 갖게 하는 세계명작 10편을 소개한 이 책은 제 뼈에 ‘착한 코드’를 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르지 않으면 차라리 기권하는 성격도 그때부터 되어 진 것 같습니다. 돈을 벌면서부터는 책은 반드시 사서 읽습니다. 주로 오랜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고전을 읽습니다. 중요한 문장은 줄을 긋고 별도의 노트에 옮겨 적고, 개념만 알고 있는 단어는 정확한 뜻을 찾아 단어정리를 합니다. 나만의 공부 방법이지요.

▶ ‘무료한 날의 몽상’에서 모든 뼈마디를 동원해 ‘시’자를 쓰겠다는 대목에서는 시에 대한 행복과 고뇌가 함께 느껴집니다.
- 20년 넘게 반포동 아파트에서 살며 두 아이를 키웠어요. 공간이 부족해 내 책상 따로 놓을 엄두를 못 내고 앉은뱅이책상이 작업장이되었는데 앉은뱅이책상을 너무 가까이한 탓에 무릎이 다 닳아 이제는 식탁에서 시를 씁니다. 고뇌라고 하면 헤아릴 길이 없지요. 예술의 궁극은 새로움입니다. 글은 마음에 걸림이 있어야 쓸 수 있는데, ‘진화된 시’를 쓰기 위해 고통은 자양분이 되지요. 작품을 통해 인류에게 유익을 줘야 하는 시인에게 고통과 고뇌는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들 모두 분가하고 시골로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순간순간 뇌를 새롭게 닦아내야 하는 시인에게는 도시의 치열함이 더 도움이 됩니다.

▶ 자연 사랑이 각별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것과 시 작업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저는 자연주의자예요.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 방법으로 우선 내 집에 들어온 것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겁니다. 손빨래는 물론이고, 종이봉투도 반대로 다시 접어서 사용하고, 노트도 세금고지서 빈 면을 모아 스프링으로 엮어 재활용 합니다. 이것은 돈을 아끼는 것과는 관련이 없어요.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그래도 귀하게 대하는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이 밖에 나가 `정숙자 상 줘야 한다'고 운동이라도 벌였기에 ‘들소리문학상’이 저에게 돌아온 것 아닐까요(웃음).
작은 것도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노라면 한 번 더 관찰하게 되지요. 사물을 볼 때 정확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생활 속에서 스치는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자꾸 뇌를 괴롭히다보니 소재가 궁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모·변신을 꾀할 것입니다.

▶ 들소리문학상과 기독교 문학에 대해 제안 부탁드립니다.
- 문학을 종교로 한정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순수문학은 문학을 위한 문학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시문학은 기독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신체시는 서양의 찬송가와 함께 들어온 것입니다.
들소리문학상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작품을 선정해 격려함으로써 문학의 지평을 넓혀간다면 기독교를 빛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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