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례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윗샘가로 달려 가서 언덕위에서 풀을 뜯었다. 몇일 전에 샘물을 길러 와서 연한 풀들이 언덕 위에 있음을 봐둔 덕에 헤메지 않고서도 정신없이 풀을 뜯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벌써 산허리에 어둠이 깔려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례는 풀자루를 머리에 이었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벌써 골목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메! 저 짠한 것이 얼매나 배고풀까잉!…”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부엌으로 가서 그대로 풀자루를 송아지 앞에 쏟아놓았다.  송아지는 허기져서 허천나게 풀을 씹어삼키면서도 “음메! 음메!” 하고 계속 울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기에 풀을 먹으면서도 울까.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어디선가 놀고 있을 것이다. 영례는 쑥밥을 지으려고 가마솥을 씻어놓고, 부엌을 둘러보다가  “아이고! 어쩌꺼나잉!…”하면서 엉겁결에 가지고 있던 행주를 떨어뜨렸다.  밥을 지을 나무땔감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팍팍한 현실은 항상 반복되어 왔다.  땔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산에 구르는 가랑잎도 산주인이 지키고 있어 긁지 못하게 하고, 여름이면 풀나무를 베어 말려서 땔감으로 써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게 산지기가 지키고, 더구나 소나무가지를 꺾었다가는 산감이 불시에 나타나 집집마다 검사하는 시대인지라 땔감을 구하기란 어느집이나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영례는 더더욱 어려웠다. 집안에 사내가 있어야 땔감도 마련해 놓지, 오사당창할놈! 육실헐놈! 사지를 찢어죽일놈! 호랭이 물어갈놈! 영례는 이렇게 내뱉으면서 낫하고 새끼줄을 들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 올라가니 석양이 지고 이제는 어둠이 서서히 장막을 드리워 오고 있었다.  “어두워야 밤에 몰래 생솔가지를 꺾어서 집으로 가져가지!” 영례는 산등성이로 올라가서 하나 둘씩 불빛이 켜지는 동네를 바라보았다. 초가지붕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오르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그러나 영례의 집에는 평화가 없었다. 진월리 뒷산에 올라가서 보면 다 보인다. 앞으로 보면 월전도 보이고, 금당산도 보이고, 광주목포간 국도도 보인다. 옆으로 보면 점촌으로 올라가는 저수지도 보이고, 분적산도 보이고, 양지쪽도 보이고, 최씨제각도 보이고, 안국이네 집도 보이고, 꼬치께도 보이고, 학교촌도 보인다. 반대방향으로 돌아서보면 무등산자락 아래로 조선대학교도 보이고, 지원동도 보이고, 바로 앞으로는 사직공원도 보이고, 방림동도 보이고, 광주시내가 절반은 보인다.  “뒷산에 올라와 보면 저렇게나 사방이 훤하게 보이는데 어째서 내 앞길은 한치 앞이 안보일꼬?” 영례는 중얼거리다가 어둡기 전에 생솔가지를 꺾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생솔가지에 낫을 댔다. 그러나 낫이 무뎌서 가지가 잘 처지지 않았다. 그래서 맨손으로 생솔가지를 꺾었다.  무딘 낫으로 가지를 치는 것보다는 맨손으로 생솔가지를 꺾는 것이 더 잘 꺾어졌다. 그러나 생솔가지가 꺾어지면서 손바닥을 마찰해서 손바닥에 피가 터졌다.  순간, 영례는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던 미움과 한과 분노와 원망이 가슴속을 차 올라왔다. 부모에 대한 원망,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분노, 자식들에 대한 부담, 그리고 지나온 험한 인생길에서 얻은 피맺힌 사연들이 다 한이 되어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영례는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향하여 고래고래 소리쳐댔다.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있다면 이 년을 지금! 하늘에서 배락을 때려 콱! 죽여주시요! 나는 이 세상을 살기 싫소! 요로코름 험한꼴 당하면서 이제 살기 싫소! 죽고싶소! 누가 나를 나를 죽여주시요! 오메!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있다면 시방, 하늘에서 배락을 때려 콱! 죽여주시요! 오메! 죽것네!…” 영례는 소리쳤다. 부르짖었다. 잠재된 분노가 폭발했다. 그래서 하늘에다 대고 계속계속 소리질렀다. 브엘세바 사막에서 방황하던 하갈의 부르짖음이었다.  이때, 별안간 영례의 등줄기가 따뜻해지면서 그 따뜻한 기운이 이내 뜨거운 불덩어리로 변했다. 그 불이 영례의 등허리를 두세번 왔다갔다 했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다냐? 오메! 죽것네! 오메 뜨거워라 !나죽네!” 영례는 정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등허리에서 뜨거운 것이 두세번정도 허리까지 멤돌다가 사그라지면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영례는 어둠속에서 엉엉울었다. 마치 하갈이 브엘세바사막에서 방황하다가 통곡하는 것같은 방성대곡이 터져나왔다.  중매쟁이 말만 듣고,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시집보낸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가정을 팽개치고, 밖으로만 멤도는 남편이 미웠다. 남편이 아니라 웬수다. 그래서 영례는 처음에 어깨를 들썩이면서 원없이 엉엉 울었다.  마냥 날품팔이로 보내는 세월, 매일 같이 쎄가 빠지도록, 등골이 휘도록 남의 일을 해주고 초죽음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는 소새끼 깔을 뜯어 먹이고, 그 다음에는 애새끼들 풀죽이라도 쒀서 입에 풀칠을 해줘야 하는데 땔감이 없어서 이처럼 뒷산에 올라와 어둠속에서 생솔가지를 꺾어야 하는 신세에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영례는 이제 눈물속에서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서울로 도망가서 식모살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릴라요!” “남편 욕하고 아부지 원망하던 생각을 버릴라요!” “내일부터는 교회 잘 다닐라요!” “이 한 몸 으스러져도 새끼들은 잘 키워볼라요!” 영례는 이렇게 다짐하면서 밭고랑같이 패인 거칠어진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듯 어두운 사방을 휘둘러봤다.  “오메! 시간이 많이 되었는 것 같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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