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신도 더럽네! 어째야 쓰꺼나!” 영례는 길을 걷다가 고무신이 더러운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면서 길가의 질경이 풀섶에 황토흙이 묻은 신을 이리저리 문댔다. 그러나 더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신만 더러운가. 낡어가는 남색저고리 동정에는 땟물자욱이 얼룩져 있어 옷도 꾀죄죄했고, 그것마저도 조붓하게 덧붙인 헝겁오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옷은 저고리나 치마나 쭈글쭈글했다. 언제 숯불다리미로 다려입을 겨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숯불다리미도 없는 살림이니 이웃집에서 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숯불다리미를 빌리기만 하면 뭘하나, 숯도 없었다.  영례는 친정집으로 가면서 홍분님, 친정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찔금찔금 흘리며 걸어 갔다.  영례가 듣기로, 광산군 학예동 홍씨가문에서 맏딸로 태어난 영례어머니는 나이 스물에 남씨가문에 시집을 와서, 소처럼 머슴들과 함께 일하면서 딸 셋을 낳아 시집보내고, 환갑이 넘도록 살았다. 그러나 남씨가문에 아들을 못 낳아 줘서 그것이 죄요, 그것이 한이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정말, 매운 시집살이를 시켰다는 것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자, 출산때마다 토라져서 말도 안했었다고 들었다. 첫 딸 때에도 그랬고, 둘째딸 낳을 때에도 그랬고, 셋째딸 낳을 때에도 아예, 산모방에는 얼씬도 안했다는 것이다. 미역국은커녕, 머슴들이 산모 방에 불을 때고 있는 것을 보면 “놔둬라! 얼어 죽든지 말든지! 고추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는 년은 미역국도 끓여주지 말아라!”하면서 역정을 내고, 모질게 대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 등살에 못이겨 남편 남도령이 씨받이 여자들을 보기 시작한 것이 둘째딸 영례를 낳고서였다니 얼마나 한이 맺혔겠는가.  재를 넘어서니, 꿈에도 잊지 못할 풍암리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천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은 유한한 것이다. 고향 하늘, 고향 들녘이 바라다 보이자 가슴속에서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다시금 복받쳐 왔다. 그래서 눈물을 훔치면서 들길 논뚝 길을 걸어갔다. 이윽고 풍암리 마을입구, 감나무가 많은 낯익은 친정 집의 골목길에 닿았다.  “이제 오냐! 김서방은 같이 안오냐?” 지산동에 사는 큰 언니가 먼저 와 있다가 영례가 오는 것을 봤는지 골목까지 마중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각시 집에 있는디 기별 안혔소!” “썩을 인간!” 지산동 언니는 남편을 썩을 인간이라고 한마디했다. 같이 안 오냐는 물음이 영례에게는 곤혹스러웠다. 남편이 양동 홀엄씨를 얻은 것은 이미 친정식구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엄니는!” “시방, 오늘 낼 한다! 돌아가시것다!… 어서 들어가 봐라!” “오메! 어째야 쓰꺼나!” “어쩔꺼시냐? 인명은 제천인디! 앗따 이 애들이 니 애들이냐? 많이 컸다잉!” 지산동 큰언니는 화평이와 양선이를 보면서 물었다. 얼마나 오랫만인가. 같이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자라나서 서로 다른 곳으로 시집가 버리니까 만나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을, 예전에는 미쳐 몰랐었다. 같이 자랄 때는 여자의 운명이 이렇게 한 핏줄을 타고난 형제들과 헤어져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줄 미쳐 몰랐었다.  “큰 이모한테 인사드리야제! 지산동 큰 이모다! 얼른 인사드려라잉!” 영례는 두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임곡에 사는 셋째는 왔소?”라고 물었다.  셋째가 궁금했다. 같이 자랄 때 사사건건 영례를 귀찮게 하고, 가끔 거짓말을 하면서 영례를 당황하게 만들던 셋째였다. 지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 영례에게 매맞게 한 이가 앙증맞은 셋째였다.  “와서 시방 있다가 최서방하고 둘이 잠깐 나갔다! 어서 들어가 봐라!” 큰 언니의 말을 뒤에 두고, 영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호랑이만한 개 두마리가 낯선사람의 출현을 경계하면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들은 묶여 있었다.  원래 아버지나 어머니는 개를 싫어했는데, 호랑이만한 개를 키우고 있다니 웬일인가. 개짖는 소리에 방문이 열리면서 아버지 남도령이 나왔다.  “오니라고 수고혓다!” “아부지! 엄니는 좀 어쩌요?” 영례는 아버지 남도령에게 어머니 안부를 다시 물었다. 이것이 아버지 남도령에 대한 완곡한 인사표현이었다.  “들어가 봐라!” 남도령은 이렇게 말하고는 마루를 나섰다. 예전보다 하얀 수염이 더 길게 늘어지니 까칠하고 더 늙게 보였다.  어머니 홍분님이 아랫목에 누워 있었다. 모습은 초췌했고, 눈동자는 이미 흐려 있었다. 영례를 본 홍분님은 누운 자세에서 꺼져가는 소리로 “오냐! 왔냐?” 하고는 영례가 데려온 화평이, 양선이를 올려다 보았다. 딸이 낳은 자식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이다.  “인사드려라! 외갓집 할머니다!” 그러나 화평이와 양선이는 홍분님의 모습이 자기들 보기에 좀 이상했던지, 부끄러워서 그런지 아무 말도 안하고 딴짓을 했다. 그리고는 영례의 양쪽 옷소매만 잡고 늘어졌다.  “니그들은 밖에 나가서 놀아라!” 영례는 이렇게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놓고 주저앉으면서 “엄니! 엄니는 왜 예수도 안믿고 돌아 가시요?” 하고는 홍분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영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너 예수믿냐?” “예! 믿어라우!” “잘혓다! 너는 예수 잘 믿어라! 난, 니그 아부지땜시!니그 아부지와는 교(敎)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기로 혓기땜시, 이날까지 요로코름 살아왔는디…. 죽을 라고 봉께 시상이 요렇게도 허망하구나!” 홍분님이 눈물을 흘렸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