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맴을 알아줄꼬? 내 멍든가슴에 남은 것은 홧병 뿐이로구나! 난 홧병땜시 죽는다!” “엄니! 무슨 말씀이요” “니 애비가 눈이 퍼렇게 떠 있는 날 놔두고 씨받이 여잘 네명씩이나 보고. 난, 인제까지 겁나게 징글징글한 시상을 살아왔다! 이제 죽으면 서방이고, 웬수고 안보이니께 저 세상은 편하것제 잉!” “엄니! 옛날 일이니께 다 용서하시쏘잉! 아부지도 사실 생각해 보면 불쌍하당께라우!” 영례의 말에 홍분님은 말문을 닫았다. 영례는 내가 어머니를 너무 심하게 대했나 생각했다. 사실, 친정 아버지 남도령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골육지책으로 씨받이 여자들을 봤다는 것을 영례는 시집가고 나서야 깨달아졌고 비로소 이해가 된 문제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아 주지 못했던 홍분님에게는 그것이 홧병이 된 것이다. 그 억울한 원한이 안 풀려서인지 홍분님은 눈꼽이 낀 눈가로 연거퍼 눈물을 흘렸다.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낀다더니 죽어가는 순간에 가슴 깊은 곳에 누가 알까 깊숙히 숨겨놓았던 빛바랜 한 많은 사연을 영례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엄니! 편히 가시려면 용서하시요잉! 그래야 좋은 곳으로 간당께라우!” “….” 그러나 홍분님은 말이 없었다. 어미의 말을 알아주지 않는 딸이 야속했기 때문일까. 그리고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홍분님이 별안간 경련을 일으키더니 숨쉬기가 곤란한 듯, 몇번이나 몸을 전율하면서 “꼬꼬르르르. … 꼬꼬르! 쉬이!” 숨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갑자기 이 모습을 본 영례는 무섬증이 와락 들었다. 인간의 허망한 목숨이 끊어지는 종말의 순간을 처음 보고 있는 것이다.  “엄니! 엄니! 엄니이! 엄니가 돌아가시면 난… 어떻게! 나, 난… 어찌살라고!… ” 영례는 홍분님의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엄니를 마구 불렀다.  “꼬르르륵! 꼬르르 컥! 컥! 꼬르르…” 그러나 홍분님은 끝내 더 이상 말을 못하고는 영례가 보는 앞에서 안타깝게 꼬르륵 꼬르 컥컥! 하더니 숨을 거두었다. 한 많은 세상을 육십삼년 삼월십구일을 살고 마감한 것이다.  영례가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노라니, 아버지 남도령과 지산동 큰 언니가 들어왔다. 지산동 큰 언니는 눈물을 찔끔 흘리다 말았다. 눈물이 안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엄니 그렇게 가시요! 우리는 어쩌라고!” 라고 하면서 소리쳤다.  남도령의 지시에 따라 김센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장례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머슴은 김센뿐이었다. 그렇게 제 세상 만난 듯, 빨간 완장을 차고 거들먹거리면서 세도를 부리던 만득이는 UN군들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자, 인민군들을 따라 북으로 넘어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영례는 이미 들은 바였다. 그리고 남도령을 인민재판에 세웠던 윤씨도 풍암리 마을에서 못살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25 전쟁 통에 사촌오빠 남상화도 인민군들에게 맞아 죽었다. 영례를 그렇게 이뻐해 주던 오빠였다. 영례가 결혼하던 첫날밤, 신랑이 신방에 들어오기 전에 이야기 벗으로 영례와 같이 있어준 계순이는 광주 불로동으로 시집을 잘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옆집에 살았던 향순이는 송정리로 시집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풍암리의 자연은 그대로 였지만,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많이 변해 있었다.  영례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초라함에 부끄러웠다.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먼 일가 친척들이 오거나 하면 앞에 나서기가 꺼려졌다. 부엌에서만 일을 했다. 그러다가 마당에 나서거나, 집밖에 나서면 영례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영례는 몸을 사렸다.  “남편은 안왔소?” “진제 김서방은 뭘하오?” “왜, 애들하고만 왔소?” 이렇게 물어보는 질문이 매우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례의 동생은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임곡 최씨문중 장손 집으로 시집을 가서 잘 살고 있었기 때문인가. 제부 최서방도 종가집 장손답게 아버지 남도령을 대신해서 능숙하게 이것 저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준비시키거나 지시하거나 솔선하며 바빴다. 그러니자연 모든 시선과 힘이 그 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성님! 빨리 전 부쳐야제! 뭐하고 있소잉!” 마당 한귀퉁이 장독대 옆에서 일꾼들 밥그릇을 씻고 있는 영례에게, 셋째가 이렇게 말했다.  “응! 이것 마저 해놓고!” “아니 빨리 해야 쓴당께라우!” “….” 그래. 넌 부잣집 맏며느리가 되어서 일도 척척 잘 해 나가는 구나! 이제는 언니인 나까지 시켜가면서. 부잣집으로 시집가니까 거칠 것이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집가서 맏며느리로 살더니 친정에 와서도 맏딸노릇하려고 하는가.  “성님! 어째 얼굴이 안좋소잉!” 셋째가 영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는디! 왜 얼굴이 아퍼보이냐?” “어째야쓰꺼나! 성님 얼굴이 부황난 얼굴이요잉! 살기가 어쩌요?” “지금은 좀 고생시러도 앞으로 괜찮아 질 것이다!” “최서방한테 한번 가보라 그럭끄라우?” “어딜?” “양동 그 홀엄씬가? 검둥이년 집에요!” “인력(人力)으로 안 될 일이여! 그런 일은!” “그 년을 쥐어 뜯어놔야제, 성님! 그냥뒀소?” 셋째는 자꾸 귀찮게 물어왔다. 그러나 또 상갓집에서 그런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빼놓고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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