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양동 홀엄씨네 집 방화사건 ⑥ “내일새벽에는 동네사람들이 다 나와서 울력한단말요! 동네 길을 넓히는데 집집마다 한사람씩 나오기로 했으니께 새벽에 상젯문 앞으로 희락이라도 보내쇼잉!” “나가야제라우! 또 어느 길을 고치시오?” 영례는 먼지 묻은 장독대를 물로 씻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제 시작인지라우! 앞으로는 매일 울력 해야한단말요! 상젯문 앞에서부터 쩌기 동구밖까지 길을 넓힐라고 허요!” 최센은 새마을운동 모자를 다시한번 벗었다 눌러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례가 장독을 닦다가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펴느라고 일어서면서 문득 최센을 쳐다보는데 아, 최센은 어깨에 새마을 운동이라고 씌여진 노랑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영례는 그 완장을 보자마자 마음속에서 강한 거부감이 일어났다. 6·25때 몸서리치게 본 완장이었다. 친정집 머슴이 붉은 완장을 차고 아버지 남도령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호령하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아버지 남도령은 웬일인지 얼마전까지 자신이 부리던 머슴이었는데도, 그 완장 앞에 덜덜 떨고 있었던 것이다. “뭐시 묻었소? 왜 빤이 쳐다보시오?” 최센은 이렇게 영례에게 말하면서도 완장 찬 어깨를 보란 듯이 흔들면서 폼을 잡았다. “아니라우! 아무것도!…” “난 바쁘니께 가요! 내일 새벽에 꼭 식구 한사람 보내시요잉!” 최센은 이렇게 말하고는 사립문을 나갔다. 그런데 조금있으니까 큰집 조카 봉주가 찾아왔다. “당숙모? 뭘 하쇼 여기서!” “어따! 자네 왔는가? 근데 자네 순사 됐다던데 참말로 됐는가?” “예! 발령받고 동네사람들헌테 인사 하러 왔소 시방!” “그런가? 우리 집안에도 순사양반이 생겨서 인자 누가 함부로 못할 것이네! 장하네잉! 든든허네 인자!” “…….” “어따 장하네잉! 쩌기 마루에 올라오소! 고구마 술한잔줄텡께!” “무슨 술을! 그냥 갈라요!” “아니당께 고구마 술은 술이 아녀! 달짝지근헌디 묵으면 든든허단마시!” 영례는 그냥 가겠다는 조카에게 억지로 고구마 술을 큰사발로 한사발 주었다.사양하던 봉주는 먹어보더니 맛이 달짝지근하니까 꿀꺽꿀꺽 잘마셨다.고구마 술을 마시고 있는 봉주를 보면서 영례는 마음이 뿌듯해졌다. 봉주가 장하게 보였다. 든든하게 보였다. 우리 집안에도 순사가 생겨나다니 가문에 좋은 일인 듯 싶었다. 봉주는 영례가 준 고구마 술을 한잔 먹고는 잘먹었다면서 바쁘다고 서둘러 사립문을 빠져 나갔다. 그런데 저녁에 희락이 한테 내일새벽 울력이야기를 하면서 큰집조카가 순사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희락이는 별로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순사가 아니랑께! 형사여라우!” “형사가 뭐다냐? 니가 어찌께 아냐?” “다 들었단말요! 그런디 형사들은 경찰과 같지만 하는 일이 좀 달라라우!" “뭐가 다르다냐?” 영례는 궁금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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