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왔는지 옆에서 영춘이 엄니가 영례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최센이 꼭 나오라해서 왔는디! 통 무신말인지… 못 알아 묵것소잉!” 이렇게 말하면서 영례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외양간에 있는 젖소에게 사료를 줘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몸은 당산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있는 것이다. 한참 동안 연설을 듣고 있다가 최센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니까 집에 빨리 돌아가야지 생각하고는 “난 갈라요! 소 사료를 안 주고 나왔단 말요! 시방!” 라고 말하면서 돌아서는데 “나랑 같이 갑시다!” 라면서 영춘이 엄니가 따라 나섰다. 그래서 둘이서 완전히 어두운 당산을 빠져나왔다. 전깃불은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11월 중순의 밤날씨는 꽤 싸늘했다. 동네 어른 몇 분이 이제사 당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당산을 끼고 대밭이 우겨져 있어서 대밭 속의 어둠은 더 어둡게 느껴졌다. “젖소는 많이 컸소?” 영춘이 엄니는 이렇게 물어왔다. “예! 근데 못 묵여서 잘 안 큰 것 같애라우!” “젖소는 사료를 많이 묵으니까 특히 암소는 운동을 많이 시켜줘야 한답디다! 그래야 새끼를 잘 낳는다요!” “큼메 말이요! 애들이 놀기만 하고 젖소 운동도 안 시킨단 말이요!” “어따! 희락이한테랑 시키시오!” “대학 공부 한다고 바쁘단 말요!” “희락이 엄니 혼자서 집 안팍 일을 다 맡아서 할려니까 허리가 빠지제라우! 애들을 때리면서라도 일 시켜야 한단말요! 그래야 에미 고생하는 줄도 안단 말요!” “우리 애들은 말 잘 들어라우!” 영례는 이렇게 말했지만, 화평이는 화평이대로, 희락는 희락이대로 이제는 말을 잘 안듣는다. 엉겁결에 나온 말이었지만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이 영례로서는 가슴이 아팠다. “화평이는 요새 안 보이요잉!” “공장에 댕긴단 말요! 취직 했어라우!” “어디 다니요?” “농 공장에 댕긴다요!” 화평이는 영렬이의 소개로 농방에 다니고 있었다. 시다였다. 요즘은 말썽을 안 피우는지 말썽을 피워도 영례가 모르는지 별 탈이 없어 보였다. 집에 돌아오니까 밥을 먹고 평상에 앉아있던 희락이가 “왜 벌써 와?” 라고 물었다. “무신 말인지 못 알아 묵것드라! 소 사료도 줘야 하고. 그래서 그냥 왔다!” “그 사람들 이야기가 뻔해라우!” 희락이는 또 영례의 말꼬리를 잡아서 자기 주장을 시작할 모양이다. 그래서 영례는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큰집의 성주가 왔드라! 아까 길에서 만났다!” “공수부대에 있다든디! 휴가 왔구만!” “군대가 좋다고 군대에서 말뚝 박았다고 허드라!” “그래도 제대 할라면 다 해라우! 사회 나와봤자 공부도 못해갖고… 머리에 똥만 들어갖고… 어디 취직이 되것소? 군대 가 있는게 더 나을지도 몰라라우!” 희락이는 이렇게 말하더니 공부한다면서 작은방을 들어갔다. 영례는 젖소에게 가서 사료를 주고 풀을 줬다. 많이 큰 것 같았다. 새끼 밴지가 벌써 4개월째다. 배가 볼록해져 있었다. 영례는 젖소의 불룩한 배를 만지면서 “암놈을 낳아라잉! 그래야 돈이 된단다!” 이렇게 말하고는 외양간을 나왔다. 11월 22일! 국민투표는 91.5%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제는 대통령의 연임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어서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들이 선출되었고, 장충체육관에서 개막된 통일주체국민회의전체회의에서는 박정희대통령이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일사천리였다. 그 많은 대의원 중에서 단 2명만이 반대표를 던졌을 뿐, 대의원총회에서도 압도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북한 김일성이와 똑같다고 혹평했다. 김일성이는 자기 혼자 후보로 나와서 자기 혼자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민족독재적 인물이다. 북한은 김일성이가, 남한은 박정희가 마르고 닳토록 두사람만이 행복한 총통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해 12월 27일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제8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체육관에서 간선제로 대통령에 선출되어 체육관에서 취임식을 가진 것을 본 국민들 일부와 야당인사들은 귓속말로 체육관대통령일세라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41 .얼어붙은 산하 ① 1973년 1월 27일! 미국의 패전으로 월남전이 종전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월남평화협정이 맺어졌다. 8년 5개월을 끌어온 죽은자도 강간하던 지루한 월남전이 종전된 것이다. 닉슨대통령과 미국은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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