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에 앉자마자 봉주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희락이가 이번 데모를 주동했써라우! 그래서 못나와라우! 당숙모! 맘 단단이 잡수쇼잉!” “아니! 사람 죽인 일도 아닌데 감옥까지 간당가?” “김대중씨 지령을 받고 데모한 것인가 의심나서 조사하고 있으니까 곧 밝혀질꺼요!” “김대중씨가 누구당가?” “아! 김대중씨도 몰라요? 빨갱이 김대중씨를 몰라요? 그 사람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진 사람이랑께라우! 그동안 그 사람 한국서는 못 살고 일본 가서 망명생활하고 있었는디!…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디라우… 희락이랑 대학생들이 모여서 박 대통령이 김대중씨를 죽이라고 지령해서 정보부에서 납치했다고 떠들면서… 학교에서 데모했다요! 그래서 죄가 커라우!” 영례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다만 빨갱이라는 소리가 봉주의 입에서 나왔을 때 깜짝 놀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빨갱이 소리만 들어도 영례는 가슴이 뛰었다. 옛 기억 때문이다. “그먼 앞으로 학교공부도 못하것네! 학교는 다닐 수 있을찌 모르것네잉!”  “나도 모르것소… 윗사람들이 하는 일이니께!”  봉주는 냉정하게 말끝을 흐렸다. 영례는 갑자기 조카 봉주가 낯선 사람으로 보여졌다. 일제시대때 순사들처럼 강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니, 우리 편이 아니고 순사들 편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영례는 더 이상 대화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먼 감옥소가 어디 있당가! 아는가?”  “예! 약도를 그려줄텡께라우. 찾아가보시요잉!”  봉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약도를 그려줬다.  그러면서 “택시 타고 가시요! 그래야 안 헤맨당께라우!”하고 말하고는 일어났다.  영례는 봉주와 헤어져서 그길로 구치소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면회를 안 시켜 주었다. 이제 입소해서 어디가 있는지 모르니까 내일 오라고 했다. 영례는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눈물이 나왔다.  남편이 집안을 등지고 밖으로만 돌게 되면서 영례는 장님인 희락이를 의지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그 희망이 무너진 것이다. 희락이가 대학교를 졸업하면 선생이 되어서 집안이 가난의 때를 면할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졌다고 생각되자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남편 복도 없는 년이 자식 복이 있을라고!… 오메! 나 죽겄네!”  면회도 못하고 돌아 나오면서 영례가 이렇게 소리치자, 길 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영례는 그 길로 양동으로 갔다. 남편에게 알리고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남편은 집에 있었다. 담배를 마루에 나와서 피우고 있다가, 영례가 들어오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영례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역겨웠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홀엄씨가 담배를 방에서는 못 피우게 합디까?” 영례는 다짜고짜 마루에 걸터앉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또 뭐가 틀어져서 오자마자 시비하는 거야!”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아니 희락이가 감옥소에 갔는디 시방 고로크름 한가하게 담배나 필 때요? 어서 가보쇼! 이렇게 한가하게 있지 말고!” 영례의 말에 남편은 깜짝 놀라는 듯 했다. “희락이가 어떻게 됐다고?” “감옥소에 갔단말요! 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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