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찬찬히 야그해 봐!” “희락이가 학교에서 데모하다가 감옥소에 갔다요! 아이고 남편복도 없는 년이 자식복이 있을라고….” 영례는 낙심 되어서 한탄조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공부나 하제! 무신 데모를 해! 밥묵고 배가 땃땃하니까 헛질 잘하는구만! 지금 데모하면 집안 망해 묵어!”  남편은 이렇게 말하고는 담배연기를 내품으면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영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진 듯 했다.  “망할 것도 없는 집안인디 더 이상 뭐가 망하것소! 남편복도 없는 년이 자식복이 있을라고!…”  영례는 이 말을 여러번이나 했으면서 또 이런 말을 했다.  “그만 가봐. 내일 가볼텡께!”  남편은 담뱃불을 끄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항상 이런 식으로 영례를 대했다.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아니! 홀엄씨는 어디갔소! 왜 인제 막 온 사람을 쫓아내쇼?”  “아, 거기까지 갈라믄 해 떨어져 캄캄해질 것이니까 그렇지!…”  진월리까지 가려면 해가 떨어져 캄캄해지니까 빨리 일어나서 가라는 말이다. 영례는 그 말이 서운했다. 그러나 영례는 일어났다. 더 이상 앉아 있어봐야 서로 싸울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길로 돌고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백운동까지 와서는 백운동에서부터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월전 큰집 앞을 지나면서 큰 집을 들리려다가 낮에 봉주가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냥 발길을 돌려 산등성이를 넘어 오는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다른때 같으면 그냥 쉽게 넘어올 산등성인데 식은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가까스로 재를 넘어 오는데 길가에 있는 교회가 보였다. 교회에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 영례는 자신도 모르게 교회로 들어섰다. 교회는 적막했다.  “오메! 교회도 안와 본지가 오래됐네! 뭐가 바뻐서 교회도 안와 봤을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교회문을 여니까 문이 삐그덕 열렸다. 영례는 신을 벗고 들어가서 강단 앞에 꿇어 앉았다. 오랜만에 교회에 와서인가. 아니면 희락이 때문인가. 눈물이 나왔다.  “오메! 아이고 하나님! 나 죽것소! 남편복도 없는 년이 자식복이 있것소? 우리 희락이 좀 살려 주시오! 우리 희락이를 살려 주시요! 희락이를 감옥소에서 꺼내 주시면 앞으로 예수 잘 믿을께라우!… 한번만 살려 주시요잉!”  영례는 이렇게 혼잣말하듯 말했다. 눈물은 계속 흘러나왔다. 이것이 영례의 기도였다. 영례는 미사여구를 구사해서 기도할줄 몰랐다. 어쩌면 이것이 가식없는 솔직한 기도가 아니겠는가. 한참 울다보니 주변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일어나서 교회 밖으로 나오는데 윤 목사가 물나무 아래 서서 월전, 돌모랭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사님! 그동안 안녕하셨는그라우!”  영례는 이렇게 말하면서 물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영례의 말에 윤 목사는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그동안 윤 목사는 흰머리가 더 많아진 듯 했다. 긴 수염도 은빛물을 들인 것처럼 새하얗게 세었다. 그 긴 수염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어쩐 일시요! 희락이 자당 아니시오?”  “예! 그간 평안하셨는그라우?”  “희락이는 공부 잘 허요?”  윤 목사가 물었다. 영례는 윤 목사의 말에 목이 메였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왜 무신 근심이 있소?”  “예! 실은 희락이가 학교에서 데모하다가 감옥소에 갔단 말이요!”  “나도 소문은 들었소! 세상이 하두 뒤숭숭허니!… 시방은 몸을 사려야할때요!… 세상이 악하단 말요. 말세요! 시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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