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 24일 동아, 조선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수호를 외치면서 신문제작보류를 잠정 결정했다. 11월 3일에는 청량리 대왕코너에서 큰불이 일어나 88명이 죽었다. 11월 15일에는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다. 북괴군들이 남방한계선까지 52미터를 파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어서 땅굴은 여러 개가 더 발견되었다고 보도되었다. 땅굴사건은 김일성의 호전적인 성품과 함께 여전히 남북은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국민들 일부는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가지게 되었다.  남한 정보부는 박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남북관계 이슈들을 뉴스로 보도되도록 공작하고 있었다. 해가 바뀌었다. 정부는 1975년 1월 12일 헌법개정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73%가 찬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이내 부정투표시비에 휘말렸다. 군인,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부정선거를 획책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써야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동아, 조선일보 해약사태로 인한 언론인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3월 17일에는 동아일보 직원들이 농성에 들어갔다.  이즈음 희락이는 군소집영장을 받았다. 희락이가 군대에 징집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영례는 정말 놀랬다. “증말이냐?” 영례는 정신이 멍해져서 물었다. “데모한 대학생들을 입영시켜 전방으로 보낼라고 한 짓이여….” 희락이는 감정이 많이 상해있었다. 그래서인지 말이 나온대로 쏟아놓았다. “뭐, 고로케까지 그러겠냐?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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