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봐봐! 이 신문! 광고난이 비어 있는거! 기자들이 바른말 한다고 주리를 트느라고 정보부에서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어 갖고 신문사에 광고를 못 주게하니까 신문사에서도 뿔따구 나니까 국민들에게 알리느라고 요렇게 백지신문을 냈당께로 봐봐!” 희락이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신문을 보여줬다. 영례가 보니 새까만 신문 군데군데 빈 공란이 많았다. “…” “이런 광고 해약회사는 상품불매운동을 해야돼!….” 희락이는 핏대를 세웠다. 영례는 희락이가 군에 입대한다는 소식에 밥맛이 떨어졌다. 밤잠 이루기가 힘이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니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근심은 마음의 병이 되는 것이다. 어느날 영례가 월전 큰집을 갔더니 동서가 영례를 보면서 “어따! 오랜만이네! 근데 자네 얼굴이 못쓰게 되었네잉!” 라고 말하면서 놀라워했다. “희락이가 군대 간단말요!” “오메! 언제 간당가?” “쫌 있으면 간다요!” “봉주말이 맞는갑구만!” “봉주가 뭐라고 헙디껴?” “데모한 대학생들은 군대에서 잡아간다 허드만! 근디 희락이도 영장이 나왔나 보네잉! 근데 뭔 데모를 해 갖고 이렇게 시끄럽당가?” “뭔 데모라우! 나라에서 뭔가 잘못 허니까 고치라는 것이제라우!” 영례는 이런 말을 해놓고 자신이 깜짝 놀랐다. 희락이를 변호하다 보니 엄청난 말을 한 것이다. 아들 때문인지, 아니면 나랏님의 처사가 못마땅해서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말을 쏟아냈던 것이다. “오메! 자네도 물들었는가?” “무슨 물이요!” “봉주가 그러데 빨갱이 물이라고!…” “내가 무슨 빨갱이 물이 들것소! 형님도 서운허게 별 소릴 허시요잉!그먼 희락이가 빨갱이 물들었단 말이요!” 영례는 이렇게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놓았다. 동서도 그 이야기를 해놓고 좀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아닐세! 빨갱이 물든 사람들을 가까이 허면 희락이까지 물들까봐서 그런 것이네! 오해 마소!” 하고 오해를 풀라고 말했다. 영례는 큰 동서와 서로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음을 느겼다. 그것은 높은 돌담같은 것이었다. 두 집안에 엄연하게 존재하기 시작한 이 돌담은 단단하고도 높게 느껴졌다. 두 집안에 돌담이 쳐진 것은 아마 봉주가 경찰서 앞 다방에서 희락이를 빨갱이 취급을 하면서부터 였을 것이다. “봉주가 그러든디… 데모하다가 군대 가믄 디지게 맞는다네! 얻어 맞어서 죽은 학생도 있다고 허던디… 걱정이네잉!” 동서는 우물가에서 빨래를 씻어 짜면서 영례에게 또다시 겁을 주는 말을 했다. 사지바지를 빠니까 검게 물들인 물감이 빠져 나왔다고 그 물감 물이 검게 흘러 내렸다. 영례는 그것을 보면서 “오메! 어째야 쓰꺼나!… 성님 난 가볼라요! 희락이 올때가 되어서…” 이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더이상 머물러 있을 마음이 없었다. “여기! 고구마나 좀 갖다가 얘들 삶아주소! 썩은 것들도 있으니께 추래갔고 쪄주소!” 돌아서는 영례가 측은해 보였던지 큰 동서는 광으로 들어가서 이내 고구마를 한소쿠리 내왔다. 겨울내 광에서 지낸 고구마는 썩은 것들이 태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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