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을 들어서면서 낯선 집 같이 생각되어졌다.“어디 갔다오는가! 자네?”큰집 동서가 개밥을 주고 있다가 영례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무표정하게 말했다.“나, 시방 광주 갔다가 오요! 나 봉주 만났써라우! 근데 조카가! 조카가! 그럴 수가 있소! 희락이를 잡아가려고….”영례는 격한 감정 속에서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없었다.“무슨 소린가! 하나도 난 못 알아 듣것네!”“봉주가 희락이를 잡으러 다닌단말요!”“봉주가 왜 희락이를 잡으려 다녀? 희락이가 먼 죄졌당가?”큰집 동서는 아직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영례가 숨을 돌리고 나서 마음을 진정시킨 뒤, 아까 사건을 설명해줬다. 그랬더니“죄를 졌으니께 그라제잉! 봉주가 생사람을 잡을라고!”“희락이가 뭔 죄를 졌것소!”“나라에서 잡아들이라 허니께 그러제잉!”큰집 동서도 봉주와 같은 논리를 폈다.“성님도 서운허요 잉! 내가 시방까지 꾹 참고 살아왔지만 이번 일만큼은 봉주나, 성님이 잘못헌 것 같소 잉! 집안끼리 이 무슨 일인당가!”영례는 큰집 동서에게 불만을 토로하다가 나중에는 혼자서 독백을 해댔다. 이 무슨 일인가. 집안끼리 이 무슨 일인가. 한동안 서먹서먹 말이 없었다. 갑자기 큰동서와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영례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큰집을 나섰다. 큰 동서도 힐끔 쳐다 보더니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닭이 소 보듯 소가 닭 보듯 한 묘한 광경이었다. 벌써 해는 옥녀봉으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진월리로 돌아오면서 영례의 눈이 갑자기 옥녀봉에 멈췄다. 오늘따라 옥녀봉 하늘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아름답게 보였으련만 오늘은 마치 핏빛 같이 섬뜩하게 보였다. 낮에 공수 부대원들의 곤봉에 맞아서 금남로에서 대학생들이 흘렸던 핏빛 같았다. 이놈의 군대가 어느 나라 군대냐! 나쁜 놈들! 영례는 욕을 하면서 동네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오니까 화평이가 라디오를 켜놓고 돼지막에서 돼지똥을 치워내고 있었다. 영례가 들어가자 화평이가 고개를 들면서“엄니! 형은 찾았어?”라고 물어왔다.“니 형을 봤다만 이야기는 못했다!”“어디서 봤어?”“금남로에서 데모하고 있더라! 이러다가는 뭔 일 나것다!”“자세히 말해봐!”화평이는 몹시 궁금한 듯 연거푸 물었다. 영례는 죄다 이야기 해 줬다. 화평이가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놀라는 것보다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봉주형이 악독한 형사라고 동네 청년들 사이에 다 소문난 지 오래 됐어! 내 그럴줄 알았어! 엄니 인자부턴 절대 큰집 가지마! 알았써?”화평이는 꾸짖듯 영례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옛날에 아버지 때부터 해결되지 않는 유산문제에서부터 잘사는 큰집으로부터 어린시절 박해 당한 일 등 줄줄이 과거를 엮어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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