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양편에서 대학생들이 공수부대와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사이, 한 쪽에서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양민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분노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임동 파출소로, 누문동 파출소로 편대를 나누어서 달려가는 것이다. 파출소에 달려가서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다.  “유신잔당 몰아내자!”  “선량한 시민을 학살하는 계엄군은 물러가라!”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소리치면서 누문동 파출소와 임동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화염병이 터지면서 불길이 파출소에 번지기 시작했다. 영례는 누문동 파출소를 방화하는 시민 시위대에 합류해 있었다.  겁이 없었다. 아니, 정신이 없었다. 아니 정신이 없었던 게 아니고 이것은 참을 일이 아니었다. 영례는 다짐했다. 희락이를 위해서라도 싸워야한다. 봉주와도 싸우고, 큰집 동서와도 싸우고, 공수부대와도 싸우고, 유신잔당과도 싸워야 한다. 영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옆에 있는 대학생에게서 화염병을 빼앗아 파출소에 던졌다. 그러나 영례가 던진 화염병은 힘이 부족했는지 파출소 앞 길가에 떨어졌다.  “엄니! 뭐해! 시방!”  “뭣하다니! 니가 시방 보면서도 모르냐?”  “안된당께!” “봉주 이놈! 내 조카도 아니다! 그놈은 나쁜 놈이다!”  “봉주는 동광주 경찰서에 다닌당께! 여기는 다른 파출소여!” “그놈들이 다 그놈들이다! 가만 놔두면 우리희락이를 붙잡아 갈 것 아니냐! 그러니께 파출소를 불질러 버려야해!”  “엄니? 이러다가 큰일 나것써!”  화평이가 영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대열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놔둬라! 불질러 버려야해! 저것들!”  영례는 화평이에게 끌려나가면서도 실성한 듯 소리쳤다. 그러나 대모대의 함성과 화염병이 터지는 살벌한 현장에서 영례의 소리는 묻혀버렸다.  “엄니! 우리 금남로 쪽으로 가! 거기 가면 형을 찾을지도 모르니께!”  화평이는 과격해진 영례를 이 살벌한 사건현장에서 떼어놓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영례는 즉시 동조했다.  “거기 있을지 모르것다! 어제는 거기 있었는디! 암튼 가보자!”  영례는 이렇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걸어가던 영례는 주변을 살펴보면서 놀랐다. 이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왔을까. 임동 네거리를 지나서, 북동쪽으로 가는 길목에는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저들을 몰아냅시다!”  “광주 애국시민들이여, 모두 일어납니다!”  “옳소! 선량한 애국시민들을 학살하는 저 공수부대 놈들 죽여 버립시다!”  흥분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저마다 분풀이를 하듯 한마디씩 해댔다. 영례는 앞서가는 많은 시민들을 따라서 화평이를 데리고 북동천주교회 앞을 지나 유동네거리를 지나서 금남로 길로 들어섰다. 영례는 분명히 임동 파출소 앞에서 화평이와 둘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동네거리에 왔을 때는 시민들 행렬이 불어나 있었다. 영례는 자신도 모르게 행렬을 따라서 온 셈이다. 유동 네거리에서 본 금남로 거리는 최루탄연기가 안개처럼 풀풀 내리고 있었다. 최루탄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한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공수부대들과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에는 돌멩이와 블럭 깨진 것, 막대기둥이 널부러져 있었다. 보도 블럭이 남아난 게 없을 정도였다. 경찰들과 공수부대들은 총과 대검과 곤봉과 페퍼포그 차량과 소방차까지 동원해서 학생들과 시민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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