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여 년 동안 유럽인의 노리개 감이 되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인이 지난 3일 유해가 되어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람의 존엄이 무엇인가를 뒤늦게 깨달은 유럽의 양심이 그 길을 열었다. 이름은 사르지에 바트만(Baartman) 1789년 남아공에서 태어났다. 1810년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영국인 의사의 꾐에 빠져 런던으로 건너갔다. 서커스단과 박물관 입장에서 바트만은 희귀한 `동물'이었다. 그는 코이코이족이었다. 이 종족은 튀어나온 엉덩이와 커다란 생식기가 특징이다. 유럽인은 여기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녀는 술집을 떠돌았고, 우리 안에 갇혀 벗은 체 춤을 추었다. 슬픈 야수처럼 괴성도 질렀다. 심지어 동물 조련사에게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경꾼이 뜸해지자 사창가에 넘겨졌고 1816년에 숨졌다. 그녀는 죽은 후에도 자유하지 못했다. 프랑스 의사들은 그녀의 시체를 석고모형으로 떴고 시체를 해부했다. 바트만의 뼈와 성기 뇌를 방부 처리해 지난 1974년까지 파리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했었다. 가슴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눈을 감은 바트만. 유럽을 고발하고 있었다. 아프리카가 도륙을 당하고 귀중한 것들을 빼앗기고 사람은 노예가 되어 유럽의 노리개가 되고 머슴이 되고 종이 되어 마치 짐승처럼 살아왔지만 바트만의 인생은 더더욱 처절하다. 그녀의 알몸 특징이 눈요기가 되고 말앗지 않은가 구경꾼이 뜸해지니까 사창가에 팔아 넘겼다고.  그녀는 28년 살았다. 구라파로 끌려가서 살기를 겨우 6년여 한마리 원숭이 꼴이 되어 온갖 치욕을 다 감수하면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도 많이 했을 것이다. 철창에 갇혀 구경꾼들의 눈요기가 되어있을 동안에 가끔씩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며 울부짓던 그 여인은 죽어서도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녀가 죽어 자기 수치를 모르는 동안은 하나님이 우셨을 것이다. 박재의 모습으로 알몸으로, 부끄럽게 감추고 싶은 성기까지 노출된 채 두개의 젖 무덤은 이즈러진 모습인 데도 감출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1994년 이후 남아공은 바트만의 육신을 반환하라고 했으나 프랑스는 반대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프랑스의 생각이 바뀌었다. 바트만은 5월 3일 그의 그리던 고국 고향집, 동족의 품에 안겼다. 남아공 정부는 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