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7장 32∼40절

신과 쥐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쥐야!” “예!” “너 지금 떨고 있니?” “예, 떨고 있습니다.” “왜 떨고 있니?” “예, 고양이가 무서워서 떨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너를 고양이로 만들어 줄까?” “예.”

그래서 쥐가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되더니 또 떨고 있어서 신이 물었습니다. “고양이야, 왜 또 떨고 있니?” “예, 개가 무서워서 떨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너를 개로 만들어 줄까?” “예.”

그래서 그 짐승은 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가 또 떨고 있습니다. “개야, 왜 또 떨고 있니?” “예, 호랑이가 두려워서 떨고 있습니다. 그럼 너를 호랑이로 만들어 주랴?” “예.”

그런데 호랑이가 되고서도 또 떨고 있어서, 신이 왜 또 두려워 떠느냐 물었더니, 포수의 총이 무서워 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너도 별 수 없다'며 `다시 쥐로 돌아가라' 명하여 그 호랑이는 결국 쥐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은 과학문명과 물질문명의 무한한 풍요와 혜택을 누리면서도 무엇인가 불안하고 쫓기며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 세상은 마치 골리앗과 같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고 험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순진하고 착하고 정직하며 악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더욱더 두렵고 떨리게 되어 있습니다.

1) 두려운 골리앗의 위용(4∼7절)

골리앗은 가드 사람인데 거인족이요 아낙 자손이란 뜻입니다. 신장은 무려 290 센티미터나 되어 보통 사람의 두 배에 가깝고,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는데 보통 사람이 그것을 들 수도 없을 정도며, 몸에는 어린 갑옷을 입었는데 놋 5,000 세겔, 즉 57.5킬로그램이나 되었습니다. 어깨에는 놋단창으로 무장하고 창자루는 베틀 체 같았으며, 창날은 600 세겔이며, 양쪽 다리에는 놋경갑을 찼으니 과연 이 세상의 어떤 영웅이나 장군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싸움꾼이요 장수요 영웅이며 목소리만 들어도 사지백체가 떨릴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사실상 사탄과 마귀는 성도에게는 두렵고 무섭고 떨리는 존재입니다만 단 한 가지 온 성도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만 한다면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 다윗(45절)

골리앗이 크고 높고 무서운 존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다윗의 눈은 천지와 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 성공과 실패 및 부귀와 영화를 한 손에 쥐시고 인류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역사의 주인공이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간 골리앗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하며 물맷돌을 던졌습니다. 그 물맷돌은 하나님께서 맡으신 것이요,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되고야 말았습니다. 이 물맷돌은 영적으로는 뜨인 돌이며 산돌이요 흰 돌이고 머릿돌이며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해도 무방합니다. 사울 왕이 자기 옷과 투구와 신발을 착용하라 해서 순종하였으나, 몸에 맞지 않아 훌훌 벗어던지고 다윗은 평소에 능숙하게 사용하던 물맷돌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사람들도 맞지도 않는 가면의 옷을 벗어 던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과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해야 성공의 지름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 경험자, 훈련자를 들어 쓰십니다. 다윗은 산전수전, 공중전, 해상전, 동굴전 등 쓴 맛 단 맛을 체험한 하나님의 그릇으로 성장해 나간 인물인 것입니다.


3) 성도여! 두려움을 극복하자(50절)

마귀나 사탄은 성도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불어 넣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말에는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사 41:10). “여호수아야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수 1:6). 예수님께서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마 28:20) 하셨습니다.

아프리카의 영적 아버지 리빙스턴은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맹수와 식인종과 자연과 싸워 가며 선교의 주역이 되었으며, 사명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고 크게 외쳤습니다.

어린 다윗은 골리앗만 이긴 게 아니고 곰이나 사자가 양과 염소를 물어갈 때 달려가서 윗턱과 아래턱을 붙잡고 여호와여 힘달라고 기도했더니 곰도 사자도 찢어 눕히고 양과 염소를 도로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다윗은 또 간절히 호소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시 23:1∼2).

골리앗과 같은 이 세상을 절대 두려워하지 맙시다.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옥 불로 쓸어 넣으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또한 일흔 번 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좁은 마음을 버리고 넓은 마음을 가지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산이 산이 된 이유는 흙이나 모래나 바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바다가 바다 된 것은 도랑물, 개울물, 시냇물들을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내어 쫓고 주님과 함께 동행합시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