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9∼10절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가장 많이 듣거나 쓰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입에 물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정도이다.

진정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주제인 것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 말을 쓰기는 하되 그 의도와 내용이 정당하지 못하면 아무리 그 말을 많이 쓴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어느 성도가 이런 말을 하였다. `목사님, 정말 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가봐요. 무엇 하나 제가 잘한 것도 없는데 제 잔이 넘치네요.' 그 말을 하는 이의 의도는 자기와 관련된 일들이 아주 잘 되어 가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하면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목사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성도의 일반적인 삶의 자세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서 아주 멀리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성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사도들이 말하는 차원의 `하나님의 사랑'은 아니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과 유업을 나누게 하여 주십사'는 어느 청년의 요청에 대해 매몰차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다”고 하시며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어느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하셨다(눅 12:13∼14).

물론 삶의 일반적인 조건이나 일들이 잘 진행되는 것이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고, 그 국면에 대한 하나님의 부어 주시는 은혜도 사랑도 감사하고 귀중하다. 성경은 아주 세부적인 삶의 모든 국면에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하시고 완전한 손길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본다면, 그 논리는 대번에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환난이나 고난, 아니 모든 지상의 인생들 모두가 거쳐야 할 죽음의 관문 앞에서는 그런 논리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런 때에 앞에서 하던 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할 수 있을까? 도리어 `내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버림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이 같이 지상적인 조건의 차원에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논리는 조금만 연장하여 보아도 힘을 잃고 만다.

사도가 요일 4:9∼10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적(救贖的)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도 요한 뿐 아니라 바울이나 베드로도 그 점에서 하나이다. 그런 차원의 사랑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런 경우라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일들이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런 수준의 것이라면 일반적인 섭리와 통치의 방식으로 해내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구속적인 사랑, 죄에서 구원하시어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잇게 하시는 사랑, 주님의 재림의 날에 영화롭게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중에 영원히 거하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영예롭게 하는 존재케 되게 하신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2∼13)고 하셨다. 그 사랑을 믿는 자가 하나님께로서 난 하나님의 자녀다(요 1:12∼13). 그 자녀된 자는 그 사랑을 증거하고 삶을 통해서 체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요일 4:11).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자. 그리하여 어떤 외양적 처지 속에서도 소망 중에 기뻐하는 사도적 믿음의 진수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보혜사로 우리 속에서 계시며 그 일을 도우시는 것이다. 우리를 죄와 그 영원한 형벌과 죄의 오염과 영향력에서 완전하게 구원하시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민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세우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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