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1∼10, 마태복음 5:1∼12

`하나님을 기쁘시게'라는 말 속에는 `내가 기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기쁨과 하나님 기쁨이 다르지 않게 산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타인의 절망과 슬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으로 바뀌어질 때 그것이 진정한 예배요 진정한 삶입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물질, 건강, 사람과 관계 등 이것을 많이 가진 자를 능력자라고 합니다. 고대사회는 육체의 힘, 농경사회에는 소유, 산업사회서는 기술을 거쳐왔습니다. 지금은 앉아서도 인터넷이나 여러 기술을 통해 저 뒤편을 보는 정보사회에 있고, 최고 과학수준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작은 흔들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힘의 사고에서 지금은 왜 그것을 추구했느냐, 그것으로 무엇을 가지려 하느냐 하는 `생명'이란 것에 화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 저 편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그들을 돕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의 마음이 있는 시대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으로 함께 살아갑시다. 생활이 예배입니다. 무엇을 보고 화를 내셨습니까. 그 내용이 기도입니다. 무엇이 넘어진 이를 일으켰습니까. 그 행동이 헌신이요 섬김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 이뤄져야 합니다. 꾸며진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신앙, 나와 너의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며 붙들어주며 한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독교 경전인 성서를 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내 생명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는 자이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십니다. 그 모습을 너와 나의 모습에서 봅시다. 성서가 우리에게 되묻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알고 모름, 가진 것과 안 가진 것으로 무언가를 판단하지 맙시다.


심고, 가꾸고, 거두어 나가라고 너와 나에게 인간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사람 같아야 합니다. 선악과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없이 자기 좋은대로 사느냐 아니냐를 상징합니다. 목사에게는 목사의 선악과, 장로에게는 장로의 선악과가 있습니다. 어떤 유혹이나 삶 앞에서 `하나님 못 본 체 해주십시오, 세상은 내 생각대로…'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선악과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평가는 어느새 걱정하게끔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바벨탑이었습니다. 하늘에까지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자기가 완성을 이루기에는 멀었는데 이미 거룩의 완전 단계에 있다며 교만을 떱니다.
 전도서의 기자 눈으로 보면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밥은 하늘'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쌀이 되게, 밥이 되게, 함께 입으로 먹는 것, 세상에 힘을 얻어 사는 것이 신앙이고 삶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식물을 먹고, 포도주를 먹으며 즐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기 위해 인간임을 잊지 말고, 너 돼야 함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나를 찾은 자로서 살아갑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살지 마십시오. 사람 자체로, 모자람 자체로, 실수 자체로 내가 영접받을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그런 삶을 지켜나갑시다. 신앙인의 눈은 자기 혼자가 아닙니다. 참고 견디고 나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에 더한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라는 것은 가난할지언정 천국을 향해 가는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이란 것은 하늘의 위로가 이 땅에 닿지 않는 것으로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이란 도처에 배부르고 잘난 자들이 많아 때로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못난 놈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동류로서 살지 못한다고 느낄 때 허전하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루 저녁 식사이면 어느 학생의 한 학기 학자금이 될 수 있고, 정치자금이면 한 가정을 일으켜 세울 것인데 라는 생각으로 애통하는 마음이 드는 곳에 하늘의 위로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도 부족하고 나도 보장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만났을 때 긍휼을 베풀 수 없어서 애통하면 그것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역사입니다.


네 진실한 신앙 때문에 재판에 부칠 것이라는 일을 겪을지라도 예수님의 진실함을 믿고 심령 속에 지키고, 그것이 기쁨으로 느껴지는 것이 주님의 축복입니다. 그것이 세상인들이 모르는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해결되지 않더라도 내가 눕고 일어나는 모든 것 속에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슬픔을 가지고 배고플지라도 하늘을 놓치지 않는 참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런 신앙으로 오늘을 삽시다. 현실을 삽시다.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주님을 품은 자로서의 기쁜 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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