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푸(Bapu=father) 함석헌의 삶

〈바푸〉란 힌두어로 `아버지'란 뜻이다. 1948년 간디의 암살 이후 인도인들은 물론, 네루의 정부까지도 공식 명칭으로 간디를 그렇게 불렀다.


`바푸'라는 호칭과 함께 또 하나 인도인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호칭이 있다. `마하트마',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고난을 생명의 원리라고 설파한 그는 `힘'에 미쳐버린 세계구원을 위해 마하트마로 와서 마하트마로 살았고, 마하트마로 갔다. 그가 있어 인류는 `네피림-아낙의 자손'이라는 추명(醜名)을 벗었다. 인도에 그 같은 `바푸' 간디가 있었다면, 한국엔 바푸 함석헌이 있다. 바푸 함석헌이 있어 우리 또한 미혹(迷惑)에서 깨어나 창조세계의 원형을 지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필자는 그 함석헌을 말해보려 한다. 새 역사, 새 종교의 길을 말이다.   〈필자 주〉


32,105일의 제단, 32,105일의 제사
 


필자는 함석헌의 일생을 쓰려 하면서 그 주제를 `그 32,105일'이라 했다. 그는 그의 탁상일기에 그날그날 자신이 세상에 온 날 수를 기록했다.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그 생의 끝날이었다. 1901년 3월 13일 세상에 온 그는 1989년 2월 4일, 이 지상의 살림을 벗었다. 보냄 받아 이 땅을 산 날이 32,105일이었다.


그는 실로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갔다. 일본 군국주의 치하에서 러시아의 군정, 인민자치위원회의 무법 포악 아래서, 1947년 3월 17일 월남 이후 자유당 독재 하에서, 1961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로부터, 전두환·노태우 정권 마감기(1991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반동자'로 `험구가'로, `유아독존'으로, 심지어는 `정신분열자', `정신이상자'로 32,105일을 살고 갔다. 그는 하늘로부터 받은 삶을 온 몸으로 살았다.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을 뿐이었다. 안으로부터 오는 음성을 맘을 다 모아 듣는 일, 그리고 받은 말씀을 몸으로 드려서까지 이루는 일이었다.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였다. 자신을 통째로 버려서였다. 그래서 그는 주장할 것도, 거부할 것도, 타협할 것도 없었다. 그저 듣고, 그저 받고 들은 대로, 받은 대로 살 뿐이었다.


32,105일, “그가 신체에 큰 해를 입지 않고 산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누군가 한 말엔 `그래!' 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01년 3월 13일
 


바푸 함석헌이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다. 실로 이 날이 있어 이 땅에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땅 위, 땅 아래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에게만이 아닌 모든 동식물들,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거기 그렇게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소위 `뜻'이라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 땅에 뜻을 전하러, 뜻을 이루러 온 사람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끊임없이 “네 삶에 뜻이 있느냐?”고 묻는다. 뜻 없이 존재하는 것은 실존(實存)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지를 가지고 놀 만큼의 신비한 능력이 있다해도 뜻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비록 세상의 윤리와 도덕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의 자식으로 낳았다 할라도 `뜻'이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성`서'(書)를 따름으로가 아니라 지닌 뜻을 따름으로 해서다. 그래서 함석헌은 뜻을 묻는다. “네 삶에 뜻이 있느냐?” 뜻, 뜻, 뜻….


함석헌은 그 뜻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너, 곧 네가 바로 역사의 주체다. 그래서 네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역사의 주체인 너,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인 너, 그 너를 함석헌은 `씨'이라고 불렀다. 수천 년인지 수만 년인지 알 수 없는 인고(忍苦)의 세월, 밟히고 차이며 묶이고 끌리며 축생(畜生)의 삶(?)을 살아온 것들에게 이름을 준 것이다. 그 바푸 함석헌이 세상에 온 날이 1901년 3월 13일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천하에 없는 `쌍놈'(常民)들이 이름을 갖게 되는 불원(不遠)의 미래가 약속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바푸'라고 한 것이다. 바푸 함석헌!

평안북도 용천군 부리면 원성동(일명 사자섬)
 


바푸 함석헌이 난 곳은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 일명 사자섬이라고 하는 곳이다.


함석헌은 그가 난 곳을 그의 전집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p 86)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난 곳 평안도, 상놈이 산다는  평안북도, 거기서도 용천(龍川), 용천에서도 맨 서쪽 바닷가다. 거기를 `사점'이라 불렀는데 그 뜻은 `사자섬'이란 말이다. 백두산에서 서남으로 내리닫는 맥이 끝에 와서 천마산(天摩山)을 일으켜서 삭주, 의주, 구성, 세 고을의 만나는 곳이 되니 그 산을 의주 천마, 삭주 천마, 구성 천마, 소위 삼천마(三天摩)라고 부른다. 거기서 내려와서 의주의 백마산이  있고 그 백마에서 떨어져 몇 십리 내려오다가 솟은 것이 용골산, 그 아래에는 평지가 계속되어 폭 5, 60리의 살진 들이 열리는데,  그것이 용천군이다. 일망무제(一望無際)라고 하고 싶은 마냥한 들이 이어 닿아 여름에는  푸른 비단이요, 가을에는 황금 바다다. 그러므로 인총이 배여 그 빽빽하기가 전라도와 같은 곳이다. 사점은 그 끝에 내려가 있는, 실이 십리도 못되는 조그만 섬이다. 그것이 가장 큰 것이고, 그 부근 십 리 안팎에  신점, 간염, 삽섬, 구염, 남겸 하는 졸망졸망한 섬 다섯이 있어 그것을 합해 사자육도(獅子六島)라 하는데 수백 년 전부터 동을 막아 육지에 대었으므로 이젠 이름만 섬이지 섬이 아니다. 땅은 살져서 곡식dms 많이 나고 바다의 고기잡이도 잘 되어 살기는 괜찮으나 워낙 교통이 불편한 곳인지라 사는 사람은 대개 가난하고 하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잘 것 없는 사람들” 속에 “하잘 것 없는 사람”으로
 


함석헌은 자신의 태(胎)가 묻힌 고향인들을 `하잘 것 없는 사람'들이라 했다. “… 사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고 `하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그러면서도 그는 그 하잘 것 없는 사람들 속에서 하잘 것 없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 `하잘 것'이란 세상에 자랑삼아 `내 놓을 것'을 말한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 내놓을 것 없는 바닥살이들 속에서 함석헌은 철저한 바닥살이로 살았다. 그는 세상에 오면서부터 `바닥살이의 맘'을 품고 왔다. 굶고 사는 아이들,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 하는 아이들을 보면 왠지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짓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인양….


후에 함석헌은 “나는 일생에 종이라는 것을 눈으론 본 일이 없다. 그것만은 참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 중에서도 제노라는 계급이 있었다. 김씨, 이씨, 장씨 하는 여덟 성이 있어서 소위 용천 팔대성(龍川 八大姓이)라 했다. 저 일본 동경제대를 졸업하고  한때 사사오입론(四捨五入論)을 내세워 유명한 장경근 씨도 그 팔대성의 하나인 긴무 장 씨다. 불행히(?) 감탕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나는 일생에 종이란 것을 눈으론 본 일이 없다. 그것만은 참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어릴 적에 듣기에 그 장씨네에는 종이 있었단 말을 듣고 종이란 뭐냐 묻던 생각이 지금도 선하다.”

함석헌이 말하는 참 하나님의 은혜, “나는 일생에 종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 문대골 목사의 함석헌 옹에 대한 연재는 매달 마지막 주마다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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