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는 상당한 분량으로 말해야 할만큼 비중이 큰 인물이다. 인문주의의 리더이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가 만나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단호한 결단이 부족한 인물이다. 휴머니스트라고 할까. 그는 기독교의 지식을 재생시켰을 뿐 아니라 어느 면으로는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는 산상보훈의 그리스도는 우주적이며, 본질적으로 윤리와 도덕의 수준이 탁월함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보다 훨씬 더 실천적인 인물이 있다. 제롬 사보라 롤라(Jerome Savonarola, AD 1452-1498)는 마르틴 루터가 출생하기 전에 독일의 아이슬레벤에서 출생한 인물이다. 그는 종교개혁의 봉화를 올린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풍모는 진정한 예언자였으며, 또 그는 마음껏 자기 소명을 다 행한 인물이다. 그는 1475년 가정을 떠나 도미닉파 수도원에 들어가서 경건생활을 훈련하였다. 그는 다시 1481년 플로렌스로 가서 학문에 전념하고 경건한 생활에도 힘을 더 했다. 사보나 롤라는 에라스무스와는 비교되는 직설적이며 단호한 성품이었다. 교회의 죄악을 단호하게 규탄했고, 당시 교직자들의 죄악을 통박하였으며, 심지어 자기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의 비행이나 비리에 대해서도 추상처럼 예리한 단죄를 하였다. 그의 강직한 설교는 플로렌스 백성들의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 이같은 그의 신임은 그를 시의 행정관으로 추대하여, 플로렌스를 과감하게 개혁하도록 하는 동기를 만들었다. 드디어 사보나 롤라의 도움으로 플로렌스는 공화정을 실시하는 도시로 바뀌었다. 교황은 사보나 롤라와 플로렌스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다가, 한 사람의 수도자가 당차게 해내는 결단력은 물론 그를 따르는 플로렌스 시민들을 예로서 대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교황은 사보라 롤라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보나 롤라는 `나는 추기경의 모자를 받지 않겠다. 그 대신 붉은 피로 물들여진 순교자의 모자를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교황을 사정없이 비난하였다. 추잡한 인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 자기 탐욕을 위하여 성직을 매매하는 자, 무신론자라고까지 규탄하였다. 일이 이렇게 전개되자, 교황의 추종자들은 사보나 롤라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자비하게 학대하였다. 그리고 그를 잡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죽였다. 그를 죽이는 자들은 그러나 사보나 롤라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자기들이 하는 일이 잘못임을 깨닫게 된다. 종교개혁의 거대한 혁명이 오기 직전, 또 하나의 거룩한 인물이 희생되었다. 사보나 롤라를 교회사는 신비가로 분류하지만 그는 진리를 위하여 온 몸을 던져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신비가라면 어떤가. 12세기부터, (성)프란시스 때부터 중세의 하늘에는 신비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였고, 겸허하게 하였고, 기도하게 하였으며, 가난한 자를 돌보게 하였음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교황권의 마수에서 빼앗아 냈다. 르네상스가 정치, 철학, 문학의 운동으로 인간의 양심을 다시 일으키는 중세의 운동이었다면 곧바로 이어가는 종교개혁, 그 큰 뜻을 위하여 믿음의 성도들이 일어나 종교개혁의 길을 열었다. 우리는 영국의 위클립, 보헤미아의 후스는 물론 오늘의 사보나 롤라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사람이 이론을 말할 수는 있으나 큰 뜻 앞에서 자기를 던질 수 있는 희생을 배워야 한다. 자, 개혁의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본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