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중심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였으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라 말씀하신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다' 또는 `하나님이 사람 되시다'가 되며 `독생자'는 홀로 하나인 자이시기에 다시 해석하면 독생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메시아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신 것과 그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믿는 자(받아들이는 자, 자기 안에 계심을 믿는 자)들을 신자라고 한다.


바로 이들은 자기 안에 기꺼이 함께 하시며, 오직 나의 주(주인)이신 이가 메시아 예수인 줄 믿어 `예수처럼' 인생을 사는 자들이다.


그러나 한국 신자들은 위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는다. 제목에서 말했듯이 이웃집 아저씨 정도의 대접을 예수께 하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예수가 없더라도 교회를 사업처럼 잘 해낼 수 있는 목사(목회자)들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교회에는 계시사(啓示史)적 측면에서 볼 때 `아직' 메시아 예수가 오시지 않았다. 대다수의 교회나 신자들은 `성전 시대'를 살고 있다. 성전 시대는 모세 시대를 말하고 율법 중심 시대를 말한다. 한국의 성전 시대는 율법 시대, 제사장 시대, 십일조를 제사장 몫으로 챙기는 목사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메시아 예수는 한국에 있어서 구세주는 물론 하나님 노릇은 하기가 힘들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정도의 대접에 만족해야 한다.


예수께서 주도하시는 교회는 공동체교회이다. 공동체란 전체가 하나를 위해서, 또는 하나가 전체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조직체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교회 공동체는 한국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더러 있기는 한 것 같지만 그들 또한 아직은 힘을 쓰지 못한다.


한국교회는 신자가 1천만 명이라는 소리를 30여 년 전부터 하고 있으나 `신자 효과'는 10여 명 정도의 기량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교회가 그들의 덩치대로 실력 있는 교회요, 예수께서 교회의 주인(주님) 노릇을 할 수 있다면 한국은 남북한 통일을 이미 이루어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유럽 수준, 또는 최소한 일본 수준으로는 올렸을 것이다.


며칠 전 신문을 읽으니 지난 달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코리아 2010' 국제 학술대회에서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컴퍼니 글로벌 회장은 `한류는 성공적이기는 하지만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대목을 읽다가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듯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수치심을 느꼈다. `한류' 어쩌고 하면서 우쭐대거나 2010 G20 의장국이요 개최국이라고 뽐내는 이들이 있지만 한국의 경제나 문화 수준은 `패스트 푸드' 수준이다. 정크 푸드(junk food)라면 더 이해가 된다. 햄버거 수준은 아닐까? 고급 레스토랑의 프랑스나 중국식 정식이 아니라 5$ 정도이면 되는 햄버거가 되겠고 한국식으로는 컵라면 수준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배신하는 한국교회가 화려해 보여도 그 수준은 컵라면이나 햄버거로 저녁식사를 대신하는 수준인거 같다는 것이다. 도미니크 바튼의 지적에는 얼마간의 해학성이 있어 보이기는 해도 나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만은 숨기고 싶은 내 약점이 들통나버렸을 때처럼 수치스럽고 극심한 낭패감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이 이토록 험악해졌을까? 이웃집 아저씨라니, 하늘 같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를 감히 이웃집 아저씨 대접 한다고 함부로 평가하다니, 이건 내가 아무래도 지나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래도 어찌하는가. 다시 생각을 해도 한 번 쯤 각오해야 할 괴로움 아니겠는가. 누군들 이런 소리 들먹이기 좋아서 이러는 줄 아는가?


누가 날더러 이런 말 골라서 지껄이면 칭찬해 주마 하는 것도 아닌 데 나는 왜 이러는가.


예수가 불쌍해서 그렇다. 천하 인간들 중에서 제 대접 못 받기로는 예수께서 첫 번째일 것이다. 특히 한국에는 고유 토착사상인 `운명론'이 있다. 그런데 칼빈의 예정론이 한국에 들어와서 운명론과 마주치다가 동무하였고, 다수의 기독교 사람들 또한 `예수께서 내 죄 대신 짊어졌다'고 하니 `좋아라' 하면서 가책 없이 그걸 넙죽 집어 삼키고 있으니 나와 함께 죽어 대속이고 또 함께 살아 내 속 살림 해내시려던 예수의 그 뜻은 허공에 붕 떠버렸다. 복음의 요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식이 되었다.


예수의 복음을 욕되게 하는 자들, 돌팔이들이 `면허장' 세 내놓고 장사하듯이 교회 간판에만 예수 이름 붙여놓고 거짓을 꾸며대는 이들이 많이 있다. 좀 더 지능적인 자들은 종교 개혁기나 청교도 시절에 교회 강단으로 사용했던 성찬대, 그 성찬대는 예수 시신을 담았던 관(棺)을 형용했던 것임을 알고도 죽은 예수를 담아 둔 관을 강대상 삼고 있다. 그 강단에서 신자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목사들이 다수인 대한민국의 기독교라면 예수님을 이웃집 아저씨 정도이라고 해서 크게 억울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같이 무엄한 말을 계속 해야 하는가. 당장 집어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그만두자. 이제는 정직으로 하자. 더 이상 허물하지 말자. 이 땅의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구세주 예수 앞에 무릎을 꿇자. 겸허하게 회개하고 자복하자. 더는 위선을 하지 않겠노라고 서둘러 용서를 빌자.

아니다. 아니야, 우리는 회개를 모른다. 무릎 꿇는 법을 모르고 있다.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이 방식의 글은 써 본 일도 많이 있지 않은가. 그럼 무엇으로 할까. 입을 다물고 필을 꺾어버릴까?


그러나 나의 양심은 `그래봐야 (너희들은) 패스트 푸드(fast food)야' 하는 누군가의 비웃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4천 5백만 명 인구에 신자가 1천만 명이고 교회가 5만 교회요, 세계에서 집회율이 최고인 한국교회가 대한민국에 상당수 있다. 비율로 말하면 한 사람의 신자가 5명 씩만 관리하면 대한민국은 역사 이래 유일한 100% 기독교 인구를 가질 수 있고, `선진 문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fast-food식이라니 분하고 억울하다.


기독교여, 유럽에 본토를 두고 있는 한국기독교여! 분노하자. 분발하자. 반성하자. 그래도 기독교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내 민족 대한의 앞날을 진정한 선진의 대열에 이끌어 올릴 수 있는 신자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스스로 의인 행세하지 말고 예수 안에 있는 자신을 날마다 발견하고(갈 2:20)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갈망하는 자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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