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얘기를 하자. 욕심도 정도껏이어야지 지나치면 언제나 탈난다는 얘기다.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문 개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물을 내려다보니,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개가 보이질 않는가.

욕심이 났다. 으르렁거리며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주둥이 주변 근육을 위로 올리며 허연 이빨을 드러낸다. 사납게 눈꼬리를 찢는다. 그런데 물속의 개도 조금도 지지 않고 같이 으르렁거리는 게 아닌가. 이 개, 고깃덩어리 하나 더 차지하려고 무섭게 짖는 순간 ….

뽐내고 뻐기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선을 넘으면 큰일 난다는 얘기도 있다. 하늘을 날고 싶은 개구리가 있었다. 얼마나 날고 싶었으면 이름까지 `날구리'로 했다. 하루는 좋은 생각이 났다. 멋진 날개를 가진 학에게 부탁했다. 나뭇가지 한쪽을 학이 물고 날아오르고 다른 쪽을 자기가 물겠다는 것이다. 학이 날아올랐다.

아, 이렇게 멋질 수가! 만날 팔짝팔짝 뛰기만 하다가 창공을 나니 환상적이었다. 무섭기도 했지만 날구리는 나뭇가지를 꽉 물고 비행을 만끽했다. 그런데 더 감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저 아래 연못과 물웅덩이에 있는 개구리들이 하늘을 나는 날구리를 보고 모두들 찬탄하는 것이다.

어느 개구리가 큰 소리로 물었다. “야, 그 멋진 생각을 누가 했니? 너니, 학이니?” 이 개구리, 아니 날구리, 신이 나서 금방 대답했다. “나지, 나!” 그 순간 …. 성경의 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驕慢)에서 `교'는 말 마(馬)와 높다는 뜻의 교(喬)가 합친 말이다. 말이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한껏 힘을 과시하며 뽐내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거만(倨慢)에서 `거'는 사람 인(人)과 차지한다는 거(居)가 붙은 말이다. 자기 몫이나 자리가 아닌 것을 떡 하고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나, 자기 자리라고 해도 남을 아래로 깔아보면서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교만이 무서운 까닭이 있다.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교만하면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기가 보는 게 다인 줄 안다. 남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통찰력과 분별력이 약해진다. 정신적 약시 현상이다. 사안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둔해진다. 역사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다. 역사적 근시 현상이다.

교만이 깊어질 때 나타나는 가장 무서운 현상은 자신과 남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남 얘기가 들리지 않으니 남을 알래야 알 수 없다.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있으니 자기 내면이 보일 리 없다. 내면을 성찰하면서 가꾸고 다듬지 않으면 못나고 설익은 마음이 필시 말로 나오게 된다. 입이 늘 문제다. 눈과 귀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다. 많이 보고 많이 듣는다고 문제될 일은 별로 없다. 입은 다르다. 입에서 욕심과 자랑이 나오고, 이게 사람과 삶을 망친다.

교만 얘기를 하니까 신앙적인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 걸린 얘기다. 일견 가장 멀어 보이는 게 신앙과 정치다. 그래서 교만을 정치에 걸어 얘기해 보자. 정치에서도 교만하면 꺾인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재집권 실패의 원인을 386세대의 교만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어느 정부든 집권 2년을 넘기면서 자기 과신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교만이다. 이걸 다스리지 못하면 실패한다. 최근 이명박정부와 여당에서 나오는 `말 실수들'이 이런 것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완전히 밟고 누르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일반 역사의 교훈이다. 누구도 다 가지지는 못한다. 완벽한 승리는 없다. 절대 권력은 없다. 상대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주도권을 잡을 뿐이다. 종교적인 확신으로 말하는 것을 빼면 이 땅에서 절대 선은 없다. 절대 선이 아니라 최선의 연속도 가능하지 않다.

차선으로 만족하는 게 지혜다. 반대되는 집단이 서로를 용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산다. 지나친 욕심과 도를 넘은 자랑은 공든 탑도 무너뜨린다. 성경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있는 말씀을 기억할 일이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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