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서의 선교현장 돋보기(11)

2001년 국왕 암살 사건


네팔은 우리나라의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을 정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언론에 전혀 보도가 되지 않는, 세계사의 변두리에 위치한 나라이다. 그런 네팔이 지난 2001년 우리 신문의 외신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네팔의 왕자가 총기를 난사하여 부모인 국왕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한 왕실 내부의 해프닝 차원을 넘어 네팔 선교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다.

국왕의 예기치 않은 사망으로 국왕의 동생인 가넨드라가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했다. 네팔은 힌두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사망한 전왕은 종교적인 면에서 역대 어느 국왕보다 다른 종교에 관대했으며 정치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진보적이고 온건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절대군주제도 하에서 국왕에 즉위한 사람이지만 ‘92년에 네팔의 정치체제를 절대군주제에서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개편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실제로 정치적인 실권을 상당부분 내각에 이양하여 네팔의 민주화를 상당히 앞당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종교적으로도 예외는 아니어서 '92년의 개헌을 통해서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의 선교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원래 '92년 이전까지 네팔은 힌두교 이외에는 그 어떤 종교도 금지되어 있었던 나라였다.

이처럼 정부가 기독교 선교의 자유를 제한적이나마 허용한데 힘입어, 개헌 당시에 계류 중이던 종교관련 소송이 취하되고 종교관련 수감자들의 대대적인 사면과 석방조치도 함께 취해졌다. 또 '92년 후 국왕이 사망한 2001년까지 네팔의 기독교 인구는 약 10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왕의 사망과 가넨드라 왕의 즉위로 선교환경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그것은 가넨드라 국왕의 정치적 종교적 성향의 문제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보다는 절대군주제를, 종교적으로는 힌두교의 권위를 강화하고 다른 종교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힌두교 유일종교 정책을 선호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


의회를 무력화시키고 전제군주제로의 환원을 꾀하던 가넨드라 네팔 국왕이 대대적인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여 의회의 복원을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국왕은 그 실권을 크게 잃어 버렸다. 의회의 복원과 함께 새로운 헌법 제정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신헌법은 그를 이름만 국왕이지 실제로는 평민의 한 사람 이상으로 예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사망할 경우에 대비한 후임 왕의 선정에 전혀 간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국왕제도는 소멸의 길을 걸을 운명에 처했다.

여기에 더하여 헌법 제정 협상에 마오쩌뚱 주의 공산 반군 세력이 가세하면서 가넨드라 국왕의 입장은 더욱 처량해 졌다. 마오쩌뚱 반군은 반군활동을 중지하고 합법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입지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개헌협상에 함께 참여하면서 아예 국왕제 폐지 쪽으로 헌법협상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결국 그는 2008년의 개헌과 함께 평민신분으로 전락하여 왕국에서 퇴거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네팔은 힌두교 국가이며 국민들의 95% 이상은 힌두교인이다. 그러므로 힌두교 성직자들은 여론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과거처럼 힌두교가 국교로서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론 역시 힌두교 국교화에 쏠리고 있다.

또한 힌두교 교리상 국왕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힌두교 국교화 여론은 왕정 복원의 여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힌두교성직자들의 부추김과 여론을 바탕으로 가넨드라 전 국왕이 칩거에서 벗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있고, 집권당도 여론에 민감하여 왕정 복위 개헌론을 솔솔 흘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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