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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10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자 - 김성영 시인“인간 근원을 찾는 길, 구원과 문학 다르지 않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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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호] 승인 2010.05.12  15: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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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들소리문학상 대상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누군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이 상과 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상을 받을 만큼 치열한 문학수업을, 글과 더불어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핑계이겠지만 교육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열매는 고사하고 우선 내가 글밭을 꾸준히 성실하게 갈아오지 않았음을 스스로 알기에 이 상을 받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성실하게 문학의 밭을 갈지 못한 나에게 이 상은 나 자신에 대한 평가나 격려이기 이전에 나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 인간적인 욕심이 발동하여 상을 받으면서 앞으로 나 자신을 새롭게 가다듬어서 글을 새롭게 쓰라고 하는 묵시적 메시지로 받아들여 그런 의미에서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력이 독특하신데요, 목사이면서 오랫동안 교육계에도 몸담으셨고, 또 겸손의 말씀을 하시지만 시인으로서도 중진의 위치이신 것으로 압니다. 언제 시에 경도되신 것인지요?

-처음 글 쓰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초등학교 때 작문 시간에 뜻밖에 선생님이 내 시를 보고 칭찬하셨어요. 교육에 있어 격려와 칭찬이 참 중요하다는 것은 저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칭찬은 나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인근 지역의 학교들이 참여하는 백일장에서 장원에 선정되었습니다. 시골에서 백일장에 나간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인데 장원을 했으니 노벨상을 탄 것보다 더 기뻤습니다. 문학이 마치 지병처럼 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도서관을 드나들며 소화도 해내지 못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었고, 감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문학으로 인해 열병 많이 앓았습니다. 더러는 문학의 지병에 걸려 폐인의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있을 만큼, 그것은 지독한 것입니다. 문학의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내가 죽지 않고 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청소년기에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됐고, 1972년 25살 되던 해에 현대문학 추천을 완료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등고시, 행정고시 패스하는 것보다 권위 있는 문예지에 추천 받아 등단하는 것이 더 어렵다던 때였습니다.

25살에 추천을 완료했으니 비교적 빠른 편이었지요. 소극적인 성격이 있지만 의미를 추구하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에는 목숨 걸고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하는 성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단에 나와 처음에 발표도 활발하게 하고, 문단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이쯤에서, 왜 시인의 길에 집중하지 못하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사실 문학에 빠져있던 내가 목사가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문학과 신학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어야 했지요.

목사의 길을 간 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 1때 낙동강 물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친구를 따라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물이 깊어지면서 한없이 몸이 빠져 들어가는 겁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죽음'을 감지했고, 그때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았습니다. 이번만 살려주시면 주의 종이 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 내가 가진 것 무엇으로도 목숨 값으로 지불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나를 드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서원하자마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를 삼키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고 물이 코 밑에서 가랑가랑할 정도가 되어 정신을 차리게 된 것입니다. 목사의 길을 걷기까지 두려움 때움에 끊임없이 주님과의 숨바꼭질 했지만 결국 하나님과의 약속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목사이자 신학자이면서 시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요?

-한동안은 그것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신학을 하면서도 내 안에는 고약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서원한 것을 지키는 의미로 신학은 하지만 주의 종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신학 한 후 돈 벌어서, 문학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 근저에는 내 안에 목사와 시인의 동거가 불편했던 겁니다. 성경적인 기독교 구원의 길과 문학이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고, 어떤 전선을 형성해서 적과의 대립관계인 것처럼 내 안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이 극복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의 희랍 사제이자 소설 〈25시〉의 작가인 버질 게오르규의 작품 중에 키랄레싸의 학살을 통해 깊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가톨릭 수도사들이 영혼의 호흡처럼 하는 기도가 `키리에 엘레이송(Kyrie eleison)', 즉,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뜻으로 키랄레싸의 학살은 신의 긍휼을 구하는 마을의 수난을 담은 것입니다. 작품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경험하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25시'라고 정의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인간성 회복을 통해서만이 가능함을 역설합니다. 이처럼 인간 삶의 근원을 소설로 풀어낸 게오르규는 유명한 작가이면서 성직자입니다. 그도 두 개의 길 사이에 굉장히 갈등을 많이 했지만 종교적인 구도의 길과 문학적인 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문학적 사고 속에서 성경과 신학 공부를 하면서 문학이 추구하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것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깊어졌고, 둘은 서로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화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신학함에 있어 문학이 도움 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바울은 어떻게 전하든지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문학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문학으로서의 지고한 가치를 가지면서도 때로는 한편의 작품을 통해 신의 임재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학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기여 하고, 좋은 면으로 충실한 서번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문학이 비판을 통해 종교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대상에 선정된 `내 영혼의 시편' 연작시와 시집 〈우산의 명상〉을 쓰신 배경은 무엇입니까?

-〈우산의 명상〉은 성결대학교 총장 임기를 마치고 안식년으로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에서 2006년부터 2년 간 머물면서 외로웠던 생활 속에서 쓴 것으로, 시애틀은 젊은 날 유학의 꿈을 품고 경유지로 잠시 밟았던 곳을 26년 만에 다시 찾게 된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고독과 명상, 지난날의 회한과 그리움, 앞날에의 모색과 기도,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의 만남을 노래한 것입니다.
`내 영혼의 시편' 연작시는 내 인생에서 숙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시편 150편이 있듯, 내 신앙·영혼의 고백을 150편의 시편으로 쓰려고 마음먹고 현재까지 40편 써놓은 것 중 일부입니다. 이번 들소리문학상을 계기로 더욱 분발해서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져봅니다.


▶작품을 쓰실 때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존재에 대한 의식입니다. 그것이 지금도 나에게 어떤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존재에 대한 의식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때로는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말씀에 의지해 기쁨과 평화 가운데 나를 의식하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존재에 대한 의식을 시로써 풀어가는 것입니다. 예민한 내가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시를 쓰지 않았다면 존재에 대한 지나친 의식이 강박관념이 되어 스스로 견디기 어렵게 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폴 틸리히는 하나님이 주신 존재에 대한 자각과 의식을 `불안'으로 봤습니다. 인간은 불안을 통해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신학적으로 보면 아담의 원죄, 즉 인간의 죄성이 불안이라는 의식으로 존재를 자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 너무 지나친 자의식 때문에 질식해 죽기도 하는데, 신앙이란 날마다의 삶에서 끊임없이 주님께 나를 맡기는 훈련이고 연습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글은 나의 숨통이 열려있는 창문입니다.

▲좋은 작품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요?


-지난 20년 간 신학도들과 같이 공부하고 가르쳤는데 현재는 백석대 석좌교수로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좋은 글을 위해 늘 강조하는 것이 많이 읽고(다독), 많이 쓰고(다작), 많이 생각(다사)하라는 이 세 가지입니다. 특히 구원의 문학, 생명의 문학을 쓰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요?


-올 가을까지는 `내 영혼의 시편' 연작시를 마무리하고자 계획하고 있고, 또 하나 욕심 내는 것은 베토벤의 생애를 서사시로 쓰는 것입니다. 운명을 거부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그의 영혼의 절규가 나로 하여금 자꾸만 그의 흔적을 찾게 만듭니다. 특히 그가 피델리오 서곡을 초연하다 청각을 완전히 잃은 후 좌절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음악세계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 등 그의 생에서 신의 섭리하심을 시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들소리문학에 대한 제안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들소리문학이 10년 동안 좋은 작가들을 많이 격려하고 발굴하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압니다. 세속화 속에서 생명의 문학을 꽃피우는 들소리문학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기독교문학이 시들어 생명의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들소리문학이 더욱 영역을 넓혀 세계 속에서 성경을 중심으로 구원의 노래를 하는 작가들을 부지런히 발굴해내야 할 것입니다.


■ 시인 김성영 목사

   ·전 성결대학교 총장, 교수, 전 워싱턴 주립대학교 연구교수
   ·전 한국신학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 초대 본부장
   ·〈현대문학〉 추천(1972)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PEN크럽 회원
   ·'대한민국문학상-제1회 흙의 문학부문' 수상(1977)
   ·'제18회 기독교문화대상-문학부문' 수상(2004)
   ·'국민대상-자랑스러운 신학자상' 수상(2005)
   ·시집 〈흙〉 〈가시나무새〉 〈나의 그리움에게〉 〈우산의 명상〉 외 다수
   ·장편서사시집 〈백의종군〉 〈아하바트 아도나이〉
   ·저서 〈기독교문학론〉 〈영암의 신학·I, II〉 외 다수
   ·편저서 〈완벽 성경성구대전〉 〈조직신학 성구사전〉
   ·역서 〈성 프란시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N.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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