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서의 선교현장 돋보기(16)

미국의 아프간 침략으로 이슬람 보수세력 결집

지난 2001년 10월 1일, 911테러 이후 미국 등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벌 준비에 파키스탄이 적극 협력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방글라데시에서는 총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선거를 통해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줄곧 집권해 오던 집권당인 아와미리그로부터 처음으로 등을 돌려버렸다.

아와미리그는 그동안 종교에서 분리된 세속실용주의 노선을 유지하던 정당이다. 이 선거의 결과로 방글라데시에서는 친파키스탄, 친이슬람 노선의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Bangladesh Nationalist Party)이 집권하고 방글라데시 전역에는 전례 없는 이슬람 열풍이 몰아쳤다. 이는 당연히 친샤리아 열풍으로 이어졌고, 강경 이슬람 정당 그룹으로서 BNP와 연립정부를 구성한 자마아트 에 이슬라미와 이슬라미 오이카 죠테 정당 등의 정국 영향력도 커졌다.

이 같은 선거 결과가 나온 원인은 이슬람 진영이 머지않아 전개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21세기의 십자군 전쟁'으로 몰아붙이는 선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의 침략에 맞선 이슬람 대단결을 주창하며 선거를 이끌어 나갔다. 방글라데시의 이 같은 정치상황 반전은 이 나라의 소수 종교 신자들에게는 심각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시스템에 의해 제도화되고 도무지 제어할 길이 없는 테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 신앙을 강요당하고, 성추행, 고문, 재판도 없이 살해당하는 일은 이들의 일상생활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항거라도 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호된 협박에 시달린다. 혹자들은 이를 체계적이고 자동적인 인종청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이슬람극단주의의 배경


방글라데시는 그동안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비교적 신앙에 대한 핍박이 덜한 국가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최근 이슬람 무장세력의 활동이 눈에 띠게 강화되고 있다. 또 정치 분야에서도 이슬람 강경주의의 목소리가 분명한 세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의 이슬람 무장세력의 위세가 최근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방글라데시를 둘러싼 국내외적인 정치적 환경이 불안정해지는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에 독립한 이후 끊임없는 정치적 불안과 유혈정변에 시달려 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19번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그 가운데 3번은 성공하여 군부에 의해 정권이 접수된 적이 있었다.

이 같은 잦은 정변과 비민주적인 정권교체의 결과로 어느 특정 정파도 분명한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가 벵갈족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변함없이 이슬람을 유일한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이외의 어떤 분명한 정치이데올로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외적인 작용도 방글라데시의 정치 불안과 이슬람 강경세력 발흥의 원인이 된다. 1970년대에 발생한 석유무기화는 중동의 몇몇 산유국의 국제정치무대에서의 발언권을 크게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중동의 몇몇 강성 이슬람국가들은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활용하여 각국의 이슬람 주장세력들에게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3년의 이스라엘과의 중동전과 이를 계기로 실시된 서방 주요 국가들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는 국제무대에서의 중동국가들의 발언권을 크게 신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79년에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혁명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세력이 소련 침략군에 맞서 벌인 이슬람 성전이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2,634명의 방글라데시 국적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반군들을 도와 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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