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기 탁발(托鉢) 기독교와 오늘의 한국교회 부유층 목사들을 비교해 본다. 탁발이란 동냥을 말한다. 고대의 종교가들이 즐겨 사용했으며 석가나 그의 제자들, 예수의 주변에서도, 특히 중세 기독교 수도사들이나 청빈 사제들이 즐겼던 탁발.

각설이들이 그러했고, 한국의 불교 승려들이 동냥을 통해서 끼니를 해결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먹고살기 위한 목적으로 탁발을 택한 것이 아니라 구도자의 청빈과 경건의 수업과정으로 탁발을 택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복을 빌어주면서 먹다 남은 밥 한 숟갈, 거기에 얹어주는 김치 조각들, 그것들이 뒤섞여 있는 밥찌꺼기들을 이리저리 볼성사나운 것들은 골라내서 다시 끓여서 먹기도 하는 수행자들의 낮고 낮은 몸과 마음 자세가 보일듯 하고, 그들의 감사기도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어떤 이들이 `중세 암흑기 1천년'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중세인들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중세 기독교 신앙은 오늘의 한국교회 수준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어떤 경우 중세교회도 사악한 교회 영주급들이 종종 있었으나 오늘의 한국교회 부유층 목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재물에 약한지. 예수님의 광야 40일 기도가 떠오른다. 금식기도 중 시장하실 때 사단이 찾아와서 돌로 떡 만들어 먹으라 할 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기적을 보이라 할 때, 그리고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내게 절하면 만국을 너에게 주마 하였을 때를 떠올려 본다.

예수께서는 사단의 그 시험에 단 한 건도 걸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감히 나는 결코 아니라고 자신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교회의 목사계급이 돈과 명예에 약하다. 또 상대적으로 가난한 목사가 많고, 무직목사가 너무 많아서 목사실업률이 매우 높다.

목사들이 돈과 명예에 약한 이유는 대속(代讀)의 법칙을 몰라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기초교리 확립에 실패하여 넘어졌기 때문이다. 돈을 왜 그리 밝히는지, 그리고 박사학위인데 아마 한국교회 목사들 절반 정도는 박사학위를 가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히 가난한 목사가 많은 것은 기독교가 시장경제 원리에 매혹되어 있거나 자유자본주의의 취약점인 분배법칙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는 자본시장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신명기 법칙의 조직체이다. 신약에서는 바울의 `지체론'에 따르고, 또 지역교회 법칙으로는 교구제도의 구조에 따르게 되어 있다. 이렇게 교회가 교회론의 기본을 따르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목사생활에 나타나지 않는다.

실업자 목사들이 한국에는 30만명쯤 된다는 통계 밖의 통계가 있다. 그렇다면 목사들 절반 이상이 실업자요 무직자라는 계산이 나온다. 목사 실업자 과다현상은 한국교회가 신약의 메시아이신 예수를 잘못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약의 법칙은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전문교사이고 교회의 리더일 뿐이다. 또, 생업을 별도로 가질 수 없을 만큼 일감(목회)이 많으면 최소한의 생계비를 교회가 보장하면 된다. 이 모두가 아니면 탁발에 나서는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이루어 가면 된다.〈無然〉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