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역사-네스토리우스, 기독교 아시아시대 〉17〈


                                       키질석굴 현장에서의 필자.

아시아의 길은 험난하다. 우선 아시아의 규정부터가 너무나 방대하다. 아마도 고대 중근동의 역사와 몽골, 투르크를 비롯한 북방 떠돌이(아마드)와 중국, 인도, 아라비아는 물론 남방 이동족까지 예루살렘을 중심하여 동북방의 민족들은 대다수가 아시아로 분류된다. 심지어 러시아마저도 페데르부르크 주변만 빼고는 아시아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앞서 한 번 인용했던 사도행전 2장 성령 강림기에 이를 경험한 사람들의 출신 지역을 다시 여기에 옮겨본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로기아, 본도 아시아 부르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행 2:9∼11). 한 지역 중에서 애굽, 구레네, 리비아에서 온 사람들만 유럽으로 분류할 수 있고 나머지는 아시아 또는 범오리엔트로 분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시대와 성령시대의 출발기의 기독교의 세계적 기반의 가능성으로 볼 때 아시아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직 몽골·투르크를 중심한 동북방계 세력들은 나타나지 않은 지역은 접어두고도 아시아는 유럽과 비교할 수 없다.

유럽의 경우 3세기부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동·서 고트족, 이른바 유럽과 기독교의 세계적 기반이 되어줄 게르만이 로마제국으로 달겨들기 시작한 5세기부터는 본격 기독교 기반이 되어주었다. 특히 게르만의 한 종족인 프랑크가 역사 위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예수의 기독교는 지중해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소멸해 갔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 성령강림기 예루살렘에 와서 성령세례를 선물로 받은 그 많은 아시아계 인물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아시아 기독교의 방향을 잡아가는 시간에 필자의 판단을 멈칫거리게 하는 궁금증이다.

근동, 고대 근동(Near East)이라는 용어는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다. `중동'으로 포괄한다. 고대국가 중 마티니, 히타이트가 있고, 히타이트 내에서 바빌로니아, 앗수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 볼 나라는 앗수리아 제국이다. 전성기 300년이면 아주 길다 할 수는 없으나 그 제국의 광대함은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 심지어 알렉산더의 헬라를 능가했었다.

BC 610년 멸망까지 그들은 이스라엘 북왕조 점령(BC 722), 남왕조 또한 못살게 굴면서 사실상 그들 직계 후발국인 신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이 BC 596∼586년으로 이어가면서 남왕조까지 멸망시키고, 아브라함식 대속사 정신을 짓밟았다. 앗수리아는 고대 메소포다미아 문명의 총아답게 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를 내놓았다. 이는 성경의 홍수이야기는 물론 함무라비 법전과 함께 상당히 큰 도발을 시도하는 것이다.

앗수리아 제국 이후 신바빌로니아가 잠시 역사의 맥을 잇다가 페르시아 고레스대왕 이후 그들은 바벨론 포로기 유대인들과 만나고,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본토 예루살렘 귀환을 약속하고 또 성전 복원까지 허락하고 재원까지 뒷받침해 주었지만 페르시아의 고유 종교인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쌍둥이 같아서 그 영향력은 페르시아, 인도, 히말라야, 힌두쿠시산맥, 곤륜산맥, 천산산맥 일대의 중앙 아시아까지 그 영향력은 심히 광대하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아시아의 가시밭길이 도사리고 있다.

기독교 아시아 선교의 과거와 현재, 또는 앞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아시아의 토양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한 예로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를 하다가 벽에 부딪힌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 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줄 알았으니…'(고후 1:8∼9)로 이어가는 말씀을 보면 바울사도의 절박한 현실을 알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복음 일선에서 최선의 경쟁력을 발휘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바울사도의 선교활동에 있어서 아시아는 큰 장애였던 것이다. 물론 사도행전 16장에서 `아시아로 가겠다'는 바울의 열망과 고린도후서 1장이 충돌하는 듯이 보이기는 하지만 바울의 글을 통해서 아시아 선교의 난해성을 살펴볼 수 있다.

아시아 기독교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필자의 시간이 21세기이다. 지난 2천년 기독교의 발자취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증빙자료의 한계 때문에 표현의 제한을 받는다. 50년 가까운 탐구 또는 연구기간을 가진 필자로서는 자료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안타깝다.

그러나 앗수리아까지 망원경을 끼고 바라보면서 범아시아 기독교 역사 탐구에 있어서 한 매듭을 짓고 싶은 의욕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선교(유럽·아시아) 현재에서도 기독교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안은 `기독교의 기독교다움'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증명했어야 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요 또 사람이신 분, 사람이지만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 본성이 일치하신 분임을 기독교가 확실하게 붙잡아야 했다.

한스큉은 이슬람이 어떻게 기독교를 공략했는가? 왜, 기독교는 이슬람 초기 공격에 그토록 무기력했던가에 대한 의문에 답변을 아래와 같이 간단히 말했다. 기독론과 삼위일체론 확립 실패라고…. 로마 가톨릭은 교리적 정통성을 지켜냈지만 아시아는 기독교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다. 현재까지 아시아 기독교는 한국까지 포함해서 실패의 연속이다.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로 이어진 기독교 아시아 시대는 물론, 도마의 인도선교, 바울의 아시아 선교, 네스토리우스 제자들의 아시아 선교, 알로펜 주교 선교단의 중국선교의 실패까지 좌절의 연속이다. 심지어, 언더우드 아펜젤러로 이어오는 한국기독교 선교 또한 좀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전문성을 가지고 진단한다면 현재시간 절반의 실패를 했다.

한국 기독교는 `입술의 기독론'에 빠져 있다. 그러니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영지주의(Gnostic)에 몇겹 포위되어 있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살아서는 못빠져 나간다는 자기 포기의 파격적 전략이 아니면 길이 없다.

자기 도취에 빠진 자들, 예레미아 시대,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했던 거짓 선지자들이 예레미아를 핍박하고 죽이려던 날들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지난 2000년 아시아 선교가 패배자들의 무덤 뿐인 점을 오늘의 한국교회는 깊은 반성의 공부를 먼저 했으면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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