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서의 선교현장 돋보기(31)]

아이티 vs 프랑스

프랑스 식민지시절 아이티는 생도맹그라고 불렸다. 생도맹그의 흑인 노예들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다.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프랑스는 계속해서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들을 수입해 실어 날랐다. 그 결과로 생도맹그의 전체 인구 가운데 수입노예의 인구가 90%를 육박하게 된다. 머릿수만으로는 노예들의 수적 우세가 확실한 인구구조가 만들어졌고, 노예를 부리는 입장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에 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운을 타고 아이티 노예들 사이에서도 반란과 독립의 움직임이 싹텄다. 우리가 흔히 나폴레옹이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정부는 이를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것은 신대륙의 패권 전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과 카나다라고 불리는 신대륙의 패권을 차지할 세력은 그 당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동부에서는 신생국가 아메리카합중국이 탄생했지만 변변한 힘이 없었고, 지금의 루이지애나주에 해당하는 지역은 여전히 프랑스의 영토였다. 나폴레옹은 아이티를 교두보로 삼고, 루이지애나를 전진기지로 삼으면 신생국 미국을 제압하고 신대륙 전체를 차지할 수 있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이티 노예들의 독립은 반드시 제압해야 했다.

당연히 프랑스군대가 파견되었다. 최고의 전술과 수준 높은 병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을 아이티 노예군이 상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황열병이 돌면서 프랑스군 병사 5만 명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병사한 것이다. 프랑스군은 퇴각했고 아이티는 독립했다. 그리고 루이지애나는 미국에 팔아넘겼고, 신대륙은 포기했다.


빚더미 속에서 독립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가 아이티를 독립하도록 선선히 놔둘 수는 없었다. 프랑스는 아이티에 대해 해상봉쇄조치를 단행했고, 여기에 미국이 가담했다. 당시로는 노예제도가 합법적으로 운영되던 나라였던 미국의 입장에서 노예들이 스스로 국가를 만들어 독립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또 이 사실이 미국 내의 노예들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아이티의 존재는 체제의 위협이었다. 어떻게든 아이티를 없애야 했다.

결국 협상이 이루어졌다. 노예들이 독립함으로써 노예를 부리던 대농장주들이 피해를 입었으니 신생독립국 아이티는 농장주들에 대한 피해 보상의 명목으로 1억 5천만 프랑을 프랑스에 지급하기로 하고, 대신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을 승인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이고, 굴욕협상이다. 그동안 실컷 노예로 부려먹은 반인륜적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나라인 프랑스가 반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받아 챙긴 협상이다. 결국 아이티는 수백 년에 걸쳐서 뼈 빠지게 노예로 일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꾼 적도 없는 거금을 빚으로 지고서야 나라를 출범시킨 것이다.

아이티는 독립한지 206년 된 나라이다. 206년의 역사 가운데 122년을 이 빚을 갚는데 보내야 했다. 1억 5천만 프랑이라는 돈을 현재의 환율로 계산하면 210억 달러에 이른다. 신생독립국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금이다.

여러모로 사정한 끝에 빚을 일부 탕감 받고도 122년이나 걸려서야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1900년도쯤에 와서는 1년 정부 예산의 80%가 빚 갚는데 지출되었으므로 나라를 변변하게 세우는 데 국력을 결집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켜 근대적인 국가로 성장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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