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서의 선교현장 돋보기(32)]

아이티 vs 미국

냉전시절 미국은 반소, 반공라인에 서 있는 나라라면 반인권, 반민주, 독재정부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제휴하고 지원해 주는 전략을 운용했다. 미국은 지금도 미국의 턱밑에서 계속해서 미국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나라 쿠바를 견제하기 위해 아이티 정부를 우군으로 삼아 관리하기를 원했다.

정부의 정통성, 국민들의 지지, 부패, 부정, 이런 것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반소, 반공이면 된 것이고, 지금은 반쿠바, 친미면 모두 오케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타난 최악의 정권이 뒤발리에 정권이다. 프랑소아 뒤발리에와 그 아들 장끌로드 뒤발리에로 이어지는 1957년부터 1986년까지 30년간의 독재 기간 동안 아이티의 경제는 재기 불능의 나락으로 빠졌다. 파파독, 베이비독이라고 불리는 이들 부자의 집권기간 동안 아이티의 대외 부채는 17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국가 부채보다 훨씬 많은 돈이 이들 부자의 스위스 은행 구좌에 예치된 것이다.

이즈음부터 아이티에서는 진흙으로 만든 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피폐해지고 산업기반이 붕괴되면서 아이티는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내다 팔아야 했다.

무분별한 벌목이 시작되었다. 울창하던 숲의 98%가 잘려 팔려나가고, 2%만 남아 있다. 무분별한 벌목이야말로 자연재해의 가장 큰 원인이다.

같은 허리케인이 아이티와 쿠바를 같이 덮쳐도 쿠바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반면, 아이티에서는 해마다 수천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벌목 때문이다. 대지진의 재앙에 대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책임, 가난의 책임과 원인을 내부에서 찾고 진지하게 반성하는 대신 모두 선진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진과 가난의 책임은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제국들이 져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더욱 더 진지한 마음으로 아이티 재건에 나서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티는 카톨릭 신자가 80%이고, 개신교 신자가 20%란다. 그런데 부두교 신자는 100%란다. 그만큼 부두교가 아이티인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1791년 당시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부크만이라는 주술사를 필두로 지도자급 주술사 수백 명이 모여 나라 전체를 걸고 부두신과 피의 계약을 맺었다. 이를 부크만 신탁이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13년 후 아이티가 독립했다. 그리고 독립일인 1804년 8월 14일,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 200년 간 아이티를 부두신께 드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현지의 순수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은 비록 그 규모가 수 천 명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나라의 부두교 사원에서는 주술사들의 영적 능력이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까지의 시세로 거래가 되기도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부두교와 가톨릭, 그리고 일부 개신교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합주의는 심각하다.

부두교의 교리나 종교의식을 살펴보면, 외양과 내면은 모두 악령을 숭배하는 형식과 교리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용어는 기독교적인 용어를 차용해서 쓰는 민망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부두교인들은 한손에는 성경을 한손에는 부두교 경전을 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부두교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부두교의 주술사들이 하는 일이나 복음전도자들의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냐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부두교는 아프리카의 주술 종교가 기독교의 영향을 가볍게 받아 변질된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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