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현재요 그 몸인 교회는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구체적인 구속사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값어치는 예수의 그 생명값이니 우리들 곁에 무한의 모습처럼 버티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신뢰와 절망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현재 인류의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교회는 정직하게 확인해야 한다. 환경파괴로 멀지않아 지구 공동체가 붕괴 우려를 하게 되어 있고, 극단 자본주의의 자본 착취는 절대수를 경제 노예화 하여 현실의 세계인 소득의 86%를 상위 20% 재력가들이 움켜 쥐고 있으니 14%의 소득을 80%나 되는 문명기 노예들이 서로 나누어 먹으려고 아귀다툼을 해야 하는 차등 인생의 비극을 감수해야 하는가.  인간의 이기심과 향락은 도덕성 함양이니 협동 정신의 장려 따위를 우스개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 이상 무엇을 하는가.  교회의 힘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교회가 예수의 현재라 했을 때 교회가 우리들 곁에 있음은 예수와 함께 하는 날들과 같은 의미가 되어야 하는데 예수를 통해서 나타나는 창조적 삶이 오늘의 교회에 있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19세기 공산당은 종교 곧 교회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진단했는 데 그 가치는 지금 유효한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의 교회는 교회가 예수의 현재를 대신, 더 분명하게 말하면 `부활 이후'의 예수는 `역사 교회'에서 그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예수의 현재를 말해야 한다. 우리는 저 옛날 모세의 뒤를 이어 요단강 건너 가나안 진군을 하는 히브리가 어떻게 요단강을 건넜던가를 여호수아에서 읽을 수 있으며, 금성철벽이라 할 강대한 여리고 성을 화살 하나 날리지 않고 무너뜨리던 히브리가 아이성에서 대패를 했던 기록도 여호수아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전술과 전략, 또는 질서나 조직의 힘,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진실한 믿음이 역사의 진보를 있게 하며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보라. 오늘의 교회에 질서가 있는가? 열두 지파의 열두 돌이 있으며, 그 돌들을 요단 강물 깊이에 놓고 그 돌을 밟고 지나기 위하여 흐르는 강물을 밟고 갈 수 있는가? 수십만명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아간'의 범죄 하나가 히브리의 갈 길을 막고 이방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한 사실을 놓고 지도자 여호수아가 통곡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수 7:7∼) 오늘의 교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교회여, 개인 소유물이 되어 있는 기독교 신교여, 너희들의 교회가 더 이상 사유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라.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안다'(요 12:49) 하시며 복종에 복종을 거듭하시던 예수를 따라 사유재산화 시킨 교회를 예수의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라. 기독교 신교가 수백개의 교파로 나뉘어 있는 것은 교회가 이미 개개인의 소유물이 되었음의 증거이다.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면 교회는 이미 예수의 열두 제자, 모세의 열두 지파, 야곱의 열두 아들의 조직 논리에 순응하여 하나의 공동체 조직으로 그 모습을 당당하게 갖추었을 것이다. 교회여, 특히 가까이에 있는 한국교회여, 시대를 어찌 감당하려는가? 우리 앞에 있는 교회가 예수의 몸(육신이 있는 하나님)을 대신할 그 모습인가? 그 힘과 진실을 가졌으며 그 능력이 되고 있는가? 예수 가시는 곳마다에서 귀신이 떨고 죄인이 무릎 꿇고 사탄이 권세를 포기 했듯이 오늘의 교회 앞에서 세상의 거짓들이 떨고 울면서 구원을 요청하던가? 교회여, 자기 모습을 살피라. 교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 몸으로 예수를 대신할 수 없다면 예수는 없다. 그 생명은 이미 끝났다. 예수의 생명은 그 모두가 오늘의 교회를 자신으로 하여 존재의 모든 것으로 삼고 있음이 만고의 진리일 진대 교회는 예수를 무덤에서 건질 책임이 있다. 종종 뜻있는 역사가들은 말한다. 교회는 예수의 무덤이라고. 예수의 시체를 담아 둔 무덤인가? 기념탑인가? 교회여, 이것이 오명이 되고 치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으라.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1천만 신자요 4만 교회라고 우쭐거리며 잠꼬대 같은 소리 지껄여 보아야 그것은 허망한 꿈, 역사는 이미 이 땅의 교회 양심은 죽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 땅에 1천만이 신자가 되었는데 향락과 거짓과 폭력과 위선이 온 국민의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과연 1천만 신자가 예수의 생명을 안다면 그들이 저 바닷가의 모래알들처럼 오합지졸의 꼴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라. 또 들어보라. 한국 기독교회에 조직이 있는가? 1천만 신자 가운데 있는 `아간'`하나'를 단숨에 잡아낼 수 있는 양심과 믿음의 열쇠가 있는가? 1천만 신자중 한 사람의 죄인도 용납지 않겠다는 여호수아가 있는가.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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