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람되어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살자는 길을 제시하였다. 기독교의 기본 틀을 우리는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처럼 사는 길을 외면하고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고집 하다보니 기독교는 예수의 포부를 외면하는 거역자들이 되고 있다. 제1보에서 빗나갔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독교는 또 하나의 종교로 자리매김이 되어 그것으로 만족하는 종교들 중 하나일 뿐인데도 그저 살만한지 별로 이의를 제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나사렛 예수의 길(가르침)이 외면된 것이면 그분은 다시 와야 한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이 교회 안에 충만한 것이 아니라면 교회를 누가 교회라 하겠는가  모세의 미완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원했던 히브리의 요구는 그래서 아직도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유대인들도 기독교 방어용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들은 모세의 순수 후예라 하기 어려울 것이겠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고자 했던 그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이스마엘에 만족할 수 없는 아브라함은 한 가정의 반쪽을 포기하는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이삭을 얻어낸다. 이는 `약속의 성취'가 된다. 우리의 메시아도 마찬가지이다. 메시아는 오직 메시아이어야 한다. 메시아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임마누엘,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아들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 아들을 아는 자는 아들이 되어 사는 법을 안다. 아들들, 아들들의 아들들이 지녀야 하는 품위를 또 안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믿는 그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도 만족할만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의 완성을 자꾸만 기피하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오늘의 기독교는 자기 모습을 살펴보라. 자기 모습 속에서 예수가 보이는가. 아들이 보이는가. 아들의 삶을 전승시켜 오고 있는가. 그리고 오고 오는 날들 동안 그 시대를 전승시킬 자신감이 있는가. 무지가 인생을 망친다. 예수를 망친다. 기독교를 망친다. 예수의 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지구상 곳곳에서 충분한 자기 확인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날들 속에서 매우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역사공부를 해 보면 부끄러운 역사들의 대목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의 기독교, 한국의 경우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일이다. 정말 많다. 4명 중 1명이 기독교 신자이다. 두렵다. 이렇게 기독교 신자가 많은 데…. 신자가 많은데 기독교는 그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하기 위해서 기독교 숫자가 더 필요할까. 물론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또 나아가 비록 비천한 인간의 신분이지만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 처럼(神처럼) 살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해야 한다. 神처럼 살자. 하나님 처럼 살자. 표현이 조심스럽다. 믿는 너희를 神이라 했다 하였으나 이 말씀은 단번에 받아들이기가 조심스럽다.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망설이고 있을 수 는 없다. 아들이 있어야만, 아들이어야 하는 예수의 길인데 누가 마냥 망설일 수 있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거듭남의 길을 배운 니고데모처럼 그 거듭남이 무엇인가를 기독교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면서도 사람의 수준을 피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실패한 종교가 된다. 어디가서 보상을 받을 것인가.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되는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예수는 누구이며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되는가? 진정한 구원은 또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더구나 기독교의 노른자위는 모두 독차지 하고 있는 소위 성직자 계층이라는 이들은 그들이 터득한 수준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땅 대한민국의 경우 10만여명의 성직자 계급(?) 또는 5만 교회의 담임자 수준의 목회자 정도이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묻는다. 답변할 수 있으면 해보자. 우리의 이 질문에…. 기독교, 지나온 2천여 년. 우리들 기독교인들이나 그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더 얻을 것이며 또 잃을 것인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임마누엘은 예수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가. 예수의 구원에 참여하는 자들 모두가 임마누엘의 광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의 오늘은 그래서 밝은 내일의 약속이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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