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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동로마 심장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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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2.03.13  11: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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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은 우리들의 터전이 그립고, 또 안타까운 마음에서 찾아가기를 미루고 있다가 더 이상 내 마음 위로할 길이 없어서 거기에 갔다.  이름도 자랑스러운 콘스탄티노플, AD 313년 로마의 새 군주가 된 콘스탄틴은 기독교 박해 중지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AD 325년 니케야에서 기독교 세계 공의회를 열고 그 의장이 되어 박해시대의 산발적인 경향을 보이던 기독교를 조직 교회로 발전시키며 주요 교리에 대한 확정을 시도했다.  드디어 AD 330년 여러 주요 지방들을 검토하던 끝에 비잔틴 콘스탄티노플이라 이름하여 새 수도로 정하고 천도했다. 그날 이후 AD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터키 메흐멧 2세에게 제국을 내 주기까지 1천 1백여년 동안 새로마의 심장부였던 그 땅을 찾아 나섰다.  이제는 그 영광의 이름 콘스탄틴의 도시(콘스탄티노플)는 간데 없고 이스탄불 공항이 나를 반겨 주었다. 공항이 그리 화려해 보이지는 않아도 동서양을 이어주는 대륙간의 교차로가 되는 이 도시는 오늘의 터키 공화국 7천여 만명의 인구에 비해 도시 인구가 1천3백여 만명이었다. 전 국토가 한반도 전체의 3.5배 쯤 되고 보면 이스탄불은 인구 집중률이 대단한 도시가 된다.  방문 일정은 불루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은 물론 성 소피아 교회의 순서였다. 최고의 전성기 군주였던 유스티아누스가 소피아교회를 완성시켜 놓고 했던 말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소!'였던가. 화려 찬란한 복음의 터전,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 건물이다.  정복자 메흐멧 2세가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틴의 궁성을 열고 정복자의 이름으로 마에 높이 올라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성 소피아, 곧 하기아 소피아 였다.  소피아 교회 정문 앞에서 그는 말에서 내렸다. 안으로 걸어갔다. 그의 첫 명령은 소피아를 기독교 예배당에서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메흐멧 눈에는 교회당 안에 우상들이 그득했다. 그 순간 그를 수행하던 이슬람 사도가 단상에 올라가 `알라 외에는 신은 없다!'고 외치자 메흐멧 2세도 제단으로 가서 이마를 바닥에 되고 이슬람식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세속의 수장인 술탄(황제에 해당)이면서 이슬람 교주인 칼리프이기도 했다. 그러나 메흐멧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완전 장악했으면서도 기독교를 말살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정복자였으면서도 적대 종교일 수 있는 기독교의 총주교에 겐나기 오스 2세를 임명했다. 이슬람 군주가 기독교 수장을 임명했어도 꼭두각시가 아니라 겐나기오스는 그당시 그리스 정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신학자이자 논쟁가였다.  메흐멧 2세는 물론 콘스탄틴의 동로마 제국을 정복하여 다스리는 이슬람 지도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우호와 보살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한들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가. 오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부끄러운 후손들이다. 사도들이 순교를 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린 터전이 아닌가. 속사도와 교부들의 시대를 보라.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고,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고, 물개 가죽 속에 산 채로 집어 넣어 말려 죽이고, 산자와 죽은 자를 마주 보게 하여 두 사람을 묶어 죽이는 등 온갖 형벌을 다 당하면서도 복음의 씨앗을 줄기차게 뿌린 그 땅 그 믿음의 터전인 광활한 제국을 우리는 이방의 종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사도바울의 1, 2, 3차 전도 여행지와 그가 지키고 세운 교회들, 계시록의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터전 그 대다수의 현장을 가보았으나 잃어버린 옛터일 뿐이었다.  `해도 너무 했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이슬람에게 너무나 많은 지경을 잃어버렸다. 옛 이야기 하면 뭘 하나…, 그러나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함은 다시 또 그같은 패배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철저하게 반성하고 또 부족한 역량을 보충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동로마의 옛터를 더욱 철저하게 탐구하여 사도시대의 그 뜨겁고 간절하여 불같은 열정과 화려한 꿈의 시대를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물려준 터전을 다시 찾아야 하겠다는 열정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그 사랑 또 그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거듭 반성하고, 그러나 사도들이 이룩한 복음의 힘찬 포부를 이어받기 위하여 겸허하게 엎드려야 한다.  하나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또 하나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지키는 우리의 옛터에서 우리는 새로 만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위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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